해 질 녘 거제도 성포리 겨울바다
군산에서 함께한 9월의 쓸쓸한 가을이 지나고
어느덧 12월의 시린 겨울이 찾아왔다.
가을여행 이후 긴 고민 끝에
본업이었던 무역회사 이직을 위해
혼자 집에서 공부하며 열심히 준비했지만
연달아 면접에 떨어지며
좀처럼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점점 몸과 마음이 지쳐갈 때쯤
열심히 운영 중이었던 블로그를 통해
거제도 여행 체험단의 기회가 왔다.
단! 평일여행이라는 조건이 있었다.
그 조건이야 나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늘 시간이 많은 백수였으니까!
평일여행의 조건은 한창 일을 할 때는
연차를 써도 날짜를 좀처럼
맞추기가 힘들어서 늘 가기 힘들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평일에 시간도 있겠다.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마침 엄마가 거제도에 놀러 간 지 오래되어
늘 다시 가고 싶어 하셨다.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엄마를 모시고
둘만의 12월 겨울 거제도여행을 떠났다.
부산 가덕도와 거제도를 잇는
거가대교의 기나긴 해저터널과
거제바다가 반겨주는 웅장한 사장교를 지나
바다 향기가 가득한 거제도에 도착했다.
우리가 거제도에서 지내게 될 숙소는
거가대교가 끝나는 지점부터
통영 방향으로 한참이나 더 들어가야 하는
서북쪽 끝자락 사등면 성포리에 있었다.
숙소에 도착하여 창가 테라스에서 보이는
바다풍경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주변이 온통 바다에 둘러싸여
푸른 청량함으로 빛나고 있었고
바다를 보며 산책하기 좋은
성포해안산책길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날씨도 좋고 바닷바람도 시원했다.
마치 거제바다가 즐거운 여행되라며
맑은 하늘로 우리를 환영해 주는 듯했다.
아침 일찍부터 2시간 가까이 운전했던
피로가 단숨에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바다구경을 잠시 뒤로하고
예약한 시간에 맞춰 점심을 먹기 위해
숙소에서 운영하는 횟집으로 갔다.
부산 살며 바닷가 횟집은 자주 갔지만
성포리 횟집에서의 해산물 한상차림은
그야말로 거제바다를 통째로
상 위로 옮겨온 듯 푸짐했다.
석화굴과 게장, 조개미역국
전복, 해삼, 멍게 등 천연 해산물
신선한 모둠회와 전복죽 갈치
가리비, 석화구이에 마무리 매운탕까지
맛있는 해산물이 연이어 나왔다.
정말 입이 떡 벌어질 만큼 굉장했다.
이제 해산물로 든든하게 배도 채웠겠다.
다시 청량하고 푸른 성포리 바다를 보기 위해
숙소 앞 해안산책로에 뛰쳐나갔다.
성포리가 관광지가 아니어서 인지
아니면 추운 겨울 평일여행이라 그런지
해안산책로 전체가 인적 없이 고요했다.
오직 철썩이는 파도소리만 울려 퍼졌다.
마치 이 넓은 바다를 엄마와 나
우리 둘이서 통째로 빌린 듯한 기분이었다.
추운 겨울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시원한 바닷바람을 만끽했다.
가슴속 깊은 곳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푸른 바다를 보며
걷기만 해도 즐겁고 행복했다.
숙소에서 잠시 휴식한 후
엄마가 평소 가보고 싶어 했던
통영의 미래사까지 다녀오니
어느새 성포리의 잔잔한 바다에
일몰이 시작되고 있었다.
해안이 주황빛으로 잔잔하게 물들고 있었다.
테라스에서만 보기 아까울 정도로
그림같이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바닷바람 쐬며 성포리 일몰을 보며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이어폰과 핸드폰만 챙겨 들고 밖으로 나왔다.
노을을 보며 노래를 듣기 위해
거가대교에서 거제 바다를 볼 때부터
줄곧 나와 함께했던 예성의 미니 5집
'Unfading Sense'를 재생했다.
이어폰 너머로 앨범의 1번 트랙
'Scented Things'이 흘러나왔다.
'아직도 나의 시간은
너의 향기가 배어서
주저앉은 소파처럼
편하지 않은 것 같아
Everything you left behind
The scent never goes away
And I'll remember you forever
The scented thing is you'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보며 산책로를 걷다 보니
주황빛으로 시작된 노을이 붉은빛으로
서서히 바다 끝으로 내려앉고 있었다.
하늘이 온통 붉은빛으로 물들어가며
잔잔한 바다 위로 쏟아져 내렸다.
바다는 노을 머금으며 반짝이고 있었다.
해 질 녘 성포리 해안가는
세상에 나 혼자 남은 듯 고요했다.
그저 들리는 거라곤 잔잔한 파도소리와
뺨을 스치는 겨울바람 바람소리,
그리고 예성의 목소리만이 귓가에 울려 퍼졌다.
붉은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 아래
빛나는 바다와 노을을 닮은
예성의 노래를 듣고만 있어도 좋았다.
'Scented Things'는 내가 보고 있던
노을빛으로 물든 고즈넉한 바다 풍경을
그대로 표현해 주는 듯했다.
노을 지는 바다를 보며 걷다가
해안데크에 있는 벤치에 앉아
그저 하염없이 해안풍경을 바라보며
이 노래만 반복해서 들었다.
사실 거제도여행 당시에도
내 상황은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다.
군산여행 이후 다시 원래 하던 일은
무역회사로 이직을 준비했지만
연이어 면접에 떨어지며
막막한 현실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도 성포리 해안에서만큼은
마냥 마음이 무겁지만은 않았다.
힘든 상황은 조금도 더 나아지지 않았는데도
불안한 마음을 울컥 쏟아내고 싶었던
9월 군산에서의 마음과는 달랐다.
고요한 해안산책로에서의 노을풍경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듯 어우러졌던
예성의 'Scented Things' 함께해서일까
내 마음은 마치 눈앞에 보이는
고요한 바다처럼 그저 잠잠해졌다
그때 들었던 'Scented Things'는
점점 잦아들어가는 내 마음처럼
붉은 노을빛으로 물들어가는
성포해안에 서서히 녹아드는 듯했다.
이 평온함을 조금이라도 더 느끼고자
최대한 산책로에 오래 머물렀다.
예성의 노래를 들으며 눈앞에 펼쳐진
겨울바다의 붉은 노을과 함께한
순간을 최대한 오래 간직하고 싶었다.
얼굴에 스치는 차가운 겨울 바닷바람과
인적 드문 해안가에서 들려오던 파도소리,
해 질 녘 하늘을 가득 물들였던 붉은빛 노을,
잔잔한 물결에 반사되어 반짝였던 바다,
빛나는 일몰을 보며 평온함을 되찾을 때까지
함께 해준 예성의 'Scented Things'까지.
12월 겨울, 성포리 해안산책로에서
아름다운 노을 풍경을 볼 때 느꼈던 감정을
'Scented Things'에 꾹꾹 담아두었다.
성포리 바다노을과 함께 이 노래를 들으며
비로소 내 마음이 편안해졌던 순간이
그리울 때마다 언제든지 꺼내볼 수 있도록.
그래서일까
해 질 녘 성포해안산책로에서의 추억이
'Scented Things'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마치 내 마음속 깊이 배어들어
평생 시들지 않고 남아있는 그날의 향기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