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하얀 눈세상 나만의 겨울왕국
새하얀 눈이 내리는 계절이 돌아오면
항상 애정하며 듣는 겨울노래가 있다.
예성 일본 정규 1집 Story 앨범
타이틀곡 'Because I love you'이다
뮤직비디오에서 체코 프라하의
포근해 보이는 분위기와 더불어
눈 내린 숲의 낭만적인 장면 때문일까
그래서 이 노래만 들으면 언제나
온 세상이 눈으로 가득했던
나의 소중한 겨울왕국이 떠오른다.
부산이 고향인 나에게 겨울의 눈은
평생 구경 하기 힘든 환상에 가깝다
이 지역에서 첫눈이 오면 만나자는 말은
곧 헤어지자는 의미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눈은 구경도 못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 내가 겨울이 오면 유일하게
눈을 볼 수 있었던 곳이 스키장이었다.
추운 겨울, 시즌이 시작되면
항상 보드를 챙겨 들고 스키장으로 향했다.
사실 나는 운동신경이 눈곱만큼도 없어서
보드실력도 빠르게 늘지 않았다.
시즌이 거듭되고 연차가 쌓여도
늘 남들보다 천천히 내려가는 거북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드를 계속 탔던 건
스키장에서만 볼 수 있었던
아름다운 설경 때문이다.
슬로프를 포함해 산 전체가
하얗게 물든 모습을 보는 게 행복했다.
매년 이 설렘을 잊지 못해
시즌이 시작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온 세상이 눈으로 가득해지는
새하얀 겨울을 너무나도 사랑했다.
장비를 챙겨서 슬로프로 가는 입구를 나서면
눈앞에 새하얀 설원이 펼쳐진다.
시즌이 시작될 때면 언제나 연말이었기 때문에
한편에는 루돌프와 썰매, 트리도 있었다.
슬로프의 눈 풍경과 함께 동화 같은 장식을 볼 때면
내가 있는 마치 여왕이 썰매를 타고
바람을 가르며 내려올 것만 같은
온 세상이 눈으로 된 나라에 와있는 것만 같았다.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눈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영하의 날씨에 피부 속까지 시린듯한
차가운 공기마저 신경 쓰이지 않았다.
뽀득뽀득 눈을 밟으며 걸어가면
그제야 비로소 내가 사랑하는
눈 내린 겨울 속에 왔음이 실감이 났다.
진짜 눈 세상 별천지는 이제부터다.
보드를 타기 위해 리프트에 몸을 싣고
꼭대기로 향해 올라갈 때면 그때부터
설원에서의 공중산책이 시작된다.
리프트가 출발하여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하면
눈이 내려앉은 슬로프 전경이 보인다.
비록 인공눈이 더해진 눈이지만
햇빛을 머금어 은빛으로 반짝이는
하얀 세상은 언제 봐도 빛이 난다.
슬로프 탑으로 올라가기 위해 한번 더 갈아타고,
출발지점이 아득히 보이지 않게 될 즈음
설경으로 가득한 숲 풍경이 펼쳐진다.
밤새 내린 함박눈이 소복이 내려앉아
마치 솜사탕을 몽글몽글 얹어놓은 듯
새하얀 눈송이로 가득한 나무들로
빼곡히 채워진 설산의 숲길이 나타난다.
수많은 눈꽃이 맺혀있는 겨울의 소나무가
줄지어 서있는 숲길로 올라갈 때면
환상적인 눈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하늘 높이 솟아있는 나무로 가득한
좁은 숲길 사이로 들어갈 때면
손만 뻗으면 닿을 것만 같은 거리에
하얀 옷을 입은 나무들을 스쳐 지나간다.
눈송이가 주렁주렁 매달린 나뭇가지가
보드 끝에 닿을 듯 말 듯 옆으로 다가오면
그 눈이 만져보고 싶어서 늘 손을 뻗어보곤 했다.
때론 숲길 안쪽까지 길게 뻗어 나온
눈이 소복이 쌓인 나뭇가지를 지나칠 때면
오른쪽 발 바인딩에 걸쳐져 매달려있는
데크와 타닥타닥 소리를 내고 부딪히며
눈송이가 탁 터지듯 흩날리곤 했다.
눈꽃이 화사하게 핀 숲길이 이어질 때에는
오직 귓가를 때리듯 스치는 바람소리와
나뭇가지가 데크에 부딪히는 소리만
울려 퍼지는 고요함이 감돌았다.
솜사탕 같은 눈으로 가득한 숲길이 지나면
하늘엔 구름 사이로 햇빛이 비치고,
햇살 아래로 순백의 옷을 입은
산의 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눈을 흠뻑 머금은 겨울나무들이
하얀 꽃을 가득 피운 채 끝없이 이어진다.
마치 발을 뻗으면 하울과 소피처럼
눈꽃 위로 깡충깡충 걸어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한 스키장은
눈은 볼 수조차 없는 곳에 살던
나에게 그야말로 겨울왕국이었다.
슬로프 입구에 도착하면 눈 위에 앉아
부츠 다이얼을 조이고, 바인딩을 고정시키고 나면
한참을 서서 눈앞의 설산을 눈에 담아두었다.
꼭대기에서만 볼 수 있는 절경이었다.
보드를 타고 내려가기 시작하면
좁은 숲길의 평지와 경사로가 나온다.
사람이 없을 때면 눈꽃으로 가득했던
숲을 즐기기 위해 천천히 내려가곤 했다.
눈과 나만 있는듯한 고요한 순간이 좋았다.
새하얀 눈으로 가득했던 설산의 스키장은
항상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던
나만의 행복한 겨울왕국이었다.
오후와 야간 보딩까지 마치고 난 후
저녁시간이 되면 테라스 너머로
스키장의 눈 내린 야경을 볼 수 있었다.
그럴 때마다 야경으로 빛나는
설경을 보며 나만의 겨울송인
예성의 'Because I love you'를 들었다.
'나 떨리는 마음으로 I like you
나 아무런 조건 없이 I love you
많은 사람들 속에서 당신을 만난 그 순간
첫눈에 느꼈죠 우린 운명인 걸
Because I love you everyday
Cause I love you everynight
한결같은 내 사랑 느껴질 수 있다면
Because I love you
니 곁에 행복만 머물 수 있게
Because I love you baby you'
그저 눈에 푹 빠져서 보드를 타러 다니는 동안
다른 건 도통 관심조차 없었던 나에게도
겨울의 눈처럼 잠시 머물다 간 인연이 있었다.
가사만큼 운명적인 사랑은 아니었지만,
아픈 이별 후 긴 시간 마음이 굳게 닫혀
아무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했던 때에
잠시 추억이 되어준 사람이 있었다.
겨울에 만났던 사람이라 그런지,
노래를 들으며 스키장 설경을 떠올리면
그때의 기억이 가끔 스치곤 한다.
보드를 타며 알게 된 그 사람과
강원도와 부산을 오고 가는 차 안에서
4시간 반동안 얘기하며 이동할 때엔
그 시간이 지루한 줄도 몰랐다.
스키장에서 같이 보드를 탈 땐
속도가 비교적 느렸던 나를 항상 기다려주고
밑에서 내가 타는 영상도 찍어주곤 했다.
오후에 보드를 탄 후 야간개장시간 전까지
숙소를 왔다 갔다 하기 귀찮을 때면
허브 내부 구석진 기둥 옆 바닥에 나란히 앉아
야간개장시간 전까지 신나게 대화했다.
노래 가사처럼 행복한 추억으로
내 마음에 물든 운명의 사랑이면 좋았겠지만,
꽁꽁 얼어붙은 추운 겨울이 영원하지 않고
따뜻한 봄이 오면 눈과 함께 잠시 떠나가듯
그 사람과의 인연도 그렇게 끝났다.
그 사람은 내가 사랑하는
눈 내리는 겨울의 스키장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도록
곁에서 즐거운 추억을 선물해 준
고마운 사람이라 생각한다.
가장 행복하게 보드를 탔던 그 시간을
함께 보낸 소중한 인연이지 않을까.
나에게 늘 환상의 겨울왕국이었던 스키장도
이제는 사진으로만 볼 수밖에 없다.
24년 1월 어깨를 다치는 사고가 나고
4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하게 되며,
눈으로 가득했던 겨울은 내 곁을 떠났다.
그날 이후 눈 내린 스키장의
아름다운 설산풍경은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이후 2년이 지난 크리스마스 다음 날
그동안 고정되어 있던 핀을 제거하기 위해,
25년 연말부터 26년 새해까지
병실침대에 누워서 보내야만 했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안정을 위해
집 밖으로 웬만하면 나갈 수조차 없다.
어깨에 핀 박고 그 핀을 빼는 과정까지
총 두 번의 수술을 하게 되자,
스키장은 더 이상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신기루 같은 곳이 되어 버렸다.
그토록 사랑하는 눈 오는 계절이 왔는데도
나의 행복한 겨울왕국은 이제 볼 수 없다.
이제 스키장을 못 가게 되면서
매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왔던
눈이 소복소복 쌓인 새하얀 풍경도
더는 보러 갈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지금의 내 어깨상태로 위험해서
보드는 도저히 탈 수도 없는데도
눈으로 가득했던 설경이 그리워
한번 가볼까 라는 생각이 들까 봐
겨울엔 스키장 근처도 가지 않았다.
따뜻한 봄을 보내고 무더운 여름을 지나
단풍으로 물드는 가을이 저물면
어느덧 차가운 바람과 함께
언제나 첫눈소식이 들려온다.
그럴 때면 항상 창밖을 보면서
'Because I love you'를 듣는다.
노래를 들으며 눈을 감으면
온 세상이 눈꽃으로 가득했던
스키장에서의 설산이 생각난다.
하얗게 피어난 숲으로 들어가듯
산 정상을 향하던 리프트에서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을 것만 같았던
눈꽃을 몽글몽글 피운 겨울나무.
발에 매달려있는 보드를
나뭇가지가 타닥타닥 치며
스쳐 지나갈 때 흩날리던 눈송이.
구름 사이로 내비치는 밝은 햇살 사이로
순백으로 가득했던 설산의 풍경.
꼭대기에서 서서 바라봤던 새하얀 설경과
눈 세상에 나만 있는듯했던 고요한 숲길까지.
나에게 늘 눈부신 겨울왕국이었던
스키장 설산풍경의 그리움이 더해질 때면
항상 나의 겨울송인 이 노래를 꺼내 들었다.
예성의 'Because I love you'는
스키장을 향해 떠나던 설레는 차 안에서부터
야경으로 가득했던 테라스에서의 밤까지,
행복했던 겨울의 모든 순간을 항상 함께했다.
그래서인지 이 노래에는
새하얀 눈이 내린 스키장 설산에서의 추억과
그 겨울을 사랑했던 내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금도 매일 눈물 나게 보고 싶고,
내가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새하얀 눈 세상
나만의 그리운 겨울왕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