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 리히터가 말하는 위기의 순간
며칠 째 배철현 선생님의 모세 이야기 수업 주제곡인 Max Richter - On the nature of daylight을 듣고 있다. 잔잔하게 깔리는 첼로와 그 위로 노래하는 바이올린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유심히 들어본다.
몇 음이 패턴을 이루며 파도처럼 상승과 하강을 반복한다. 음악이 시작한 순간을 알 수 없었듯 끝나는 순간에도 서서히 사라진다. 마치 어디서 왔는지 모른 채 태어나 평생을 상승하고 하강하다 서서히 사라지는 인생 같다.
곡의 중심 멜로디 패턴이 위로 솟았다 떨어질 때마다 나는 움찔한다. 끝없이 높아지고 싶은데 이런 나의 바램을 모른 채 어김없이 떨어진다. 짧은 순간인데 끝도 모르고 떨어지는 기분이다. 인생에 찾아오는 위기의 순간이 선율이라면 이런 소리일까?
서른 즈음에 가지는 희미한 느낌은, 삶은 눈에 보이지 않는 파형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 모든 게 잘 풀리지 하는 시점에 어김없이 떨어져 왔다. 누군가에게 고백할 수조차 없는 부끄러운 순간들이 삶이 높아질 때마다 찾아왔다. 그래서인지 나는 일이 잘 풀릴 때 오히려 불안함을 가지고 경계하는 버릇이 생겼다. 분명 지금 즈음 떨어질 타이밍이다 자위해 추락의 충격을 조금이라도 덜 느끼고팠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고 떨어져도 아프긴 아프다. 조금 아프지 않고 매우 아파 반등할 수 있을까 싶은 위기다. 격투 시합을 하며 동료들에게 승패는 중요치 않다고 말해 왔었다. 이상하리만치 승리가 계속되면 어김없이 한 번씩 떨어지는데 그땐 이 말을 뱉기가 쓰다. 훌훌 털고 일어나는 척 해도 마음속 생채기는 단숨에 치유할 수 없다. 위기는 기회라지만 막상 위기를 닥치면 이것을 벗어날 수 있을까 싶다.
그러나 리히터의 곡처럼 멜로디가 끝없이 하강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어느 시점에 반등한다. 위기 속에 살다 보니 보지 못했던 빛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여전히 무겁게 깔린 첼로 소리가 빛을 가리고 있다. 그러나 조금씩, 아주 천천히 햇살이 구름 사이로 비춘다. 멜로디가 높았을 때 보지 못한 빛깔의 빛이다. 다시 멜로디가 상승하며 위기를 벗어난다. 그리곤 다시 떨어져 새로운 위기를 맞는다. 상승, 하강, 상승, 하강, 그러다 모든 소리는 출발점인 1도로 돌아오며 여정을 마친다.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참으로 긴 시간 동안 수많은 위기를 거치며 소리가 단단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