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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공사칠 Feb 29. 2024

양곤 강의 기적

취약을 딛고 일어설 영웅을 바라며

작년 미얀마 해외 봉사를 함께 갔던 목사님으로부터 급한 연락을 받았다. 센터에 방문했을 때 스태프로 일하고 있던 청년이 군부의 탄압에 쫓겨 위기에 몰렸다는 소식을 들어 기도를 요청하셨다. 미얀마 정부군과 반군 간 갈등이 심해져 정부군이 양군 시내의 소수 민족 청년을 징병하고 있다고 한다. 이를 피해 달아나는 이들을 총으로 쏴 죽이고 감옥에 가두는 등 잔인한 탄압 소식에 가슴이 먹먹했다.



하늘에서 바라 본 미얀마


시간을 거슬러 작년 7월로 가본다. 양곤 공항에 내리자마자 나를 기다리던 이들은 실탄을 장착한 소총을 든 군인들이었다. 가방 속에 몰래 의약품과 구호 물품을 숨기고 있던 우리는 숨죽였다. 반정부 인사들이 공항을 통해 입국할까 봐 통행로를 하나만 열어 둔 그들은 실수로 길을 막은 내게 소총을 휘둘러 비키라고 지시했다. 미얀마 땅과의 첫 만남이었다.


양곤은 네피도 이전의 미얀마 수도였던 도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서울과 확연히 다르다. 도로에 잠시라도 밴이 멈춰 서면 구걸하는 아이들과 그들에게 구걸을 지시하는 부모를 만난다. 미얀마로 흐르는 강의 깨끗한 상류를 중국에서 막아 강물은 홍차색을 띤다. 소총을 든 군인들이 역 곳곳마다 있고 밤에 편의점만 가면 아이들이 구걸하러 온다.


스스로 이 땅을 원한 적 없으나 태어나버린 아이들은 존재 자체가 취약하다. 그들은 축복이 아니라 짐이고 노동력이다. 봉사 중 한 가정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날이 그 집 아들의 생일이었다. 선물을 주고 축하 노래를 불러주니 울음을 터트렸다. 태어나서 한 번도 생일 축하를 받아본 적이 없다고 한다. 불과 10살이었다.


커서 무엇이 되고 싶냐고 질문을 했다. 건설 현장에서 잡부로 일하고 싶다고 했다. 직업에 귀천은 없다만 기분은 묘했다. 우주 비행사와 과학자, 가수를 꿈꾸는 우리네 어린이들이 상상할 수 있는 세계를 그는 상상할 권리조차 박탈당한 것이다. 이곳에 신이 있을까? 여러 차례 생각을 곱씹었다. 1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이 장면을 그려봐도 말문이 막힌다. 이 땅에 신이 있을까? 이토록 취약한 이들도 사람답게 살 수 있을까?


취약한 환경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아이들



그러나. 역사를 훑어보면 영웅은 언제나 취약한 환경에서 나타난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그들은 취약 속에서 드러난다. 오디세우스가 영웅이 되기 위해선 집으로 가는 길에 풍파를 겪어야 한다. 메이지 유신의 주역은 신분이 취약하기에 언더독 정신으로 무장한 하급 사무라이들이었다. 요즈음 즐겨보는 <고려거란전쟁> 속 구국 영웅 강감찬은 서른여섯이 되어서야 과거에 급제한, 경쟁 사회의 기준으로 볼 땐 경쟁력이 떨어지는 하급 관리였다. 영웅은 취약 속에서 꽃 피어 왔다.



그러므로 나는 지구촌 친구의 불행에 서글픔을 느끼다가 이내 희망을 본다. 2024년의 미얀마는 영웅이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이 충만한 땅인 것이다. 총칼로 무장한 군벌 세력이 거셀수록 취약을 대하는 그들의 의지가 단단해진다. 총알이 몸에 박혀도 혼을 흩을 순 없다. 취약을 이겨낸 영웅들의 이야기가 버마 땅의 오랜 전설로 남을 것이다. 태어나자마자 유기된 영아 모세가 홍해를 갈라 히브리 민족을 구했듯 취약을 이겨낸 친구들이 양곤 강에 기적을 일으켜 미얀마 사람들을 구하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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