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이카루스가 종이 치길 기다린다
두 번째 아마추어 시합이 끝났다. 사실 이 즈음하면 인생의 경험 쌓기라는 초기 목적은 이루었다. 그런데 막상 이기고 나니 시합 나가기에 재미가 들려 버렸다. 한 번만 더 나가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시합에 나가지 않을 뚜렷한 이유도 떠오르지 않았다. 다른 대회에서 2분 2라운드로 치러질 세 번째 아마추어 시합을 나가기로 결정한다.
3전을 준비하면서 옳은 결정을 내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이때 시합 준비를 하면서부터 인생이 잘 풀리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무얼 해도 망한 것 같은 작년의 보상을 받은 듯 세 번째 시합을 준비하면서 하루종일 기분도 좋고 인생이 재미있었다. 당시 나는 피아노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열심히 운동해서 쌓은 체력을 바탕으로 재미있게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와 동시에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음반 제작자가 되기 위해 취업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신입으로서 서류 전형을 뚫기 어렵다는 4대 기획사 중 두 곳에서 비슷한 시기에 면접 제안을 받았다. 삶의 기세가 좋았다.
3전을 준비하면서 니킥, 태권도 용어로 무릎 치기라는 기술을 새로이 준비했다. 관장님께서 이에 관해 알려주시고 겨루기를 통해 직접 명치에 니킥을 꽂아주셨다. 주먹으로 배를 맞았을 때와 다른 맛. 다시 한번 쓰러졌다. 하지만 기쁜 마음으로 주저앉았다. 아, 오늘도 하나 더 배웠구나! 재미있다! 삶이 재미있으니 맞고 다운돼도 재미있구나! 수련 전에 먹은 마라탕이 올라와 화장실에 가는 도중에도 즐거워했던 기억이 난다.
두 달간 또다시 피 땀 눈물을 흘려 나간 시합. 연장까지 간 접전 끝 결과는 2:1 판정패. 시합도 졌는데 삶도 지고 있었다. 면접까지 가 긴 겨울이 끝나겠구나 싶었지만 봄은 오지 않았다. 그 해 여름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이 더해져 높아진 마음이 다시 추락하고 있었다. 개인적인 일들이라 구체적으로 언급하긴 어렵지만 작년의 나였다면 다시금 침대로 숨고 주저앉았을 터였다. 그러나 3번의 격투 시합에서 무언가를 배웠기 때문에 이번에는 달랐다. 분수에 맞지 않게 너무 높았던 모든 것들이 다시 저점을 향할 때도 믿는 바가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지나가고 결국 라운드는 끝난다는 사실. 버티면 언젠가 종이 친다. 기절하더라도 버티면 분명히 종이 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이카루스 이야기 속 실력 있는 기술자인 다이달로스는 성에서 탈출하기 위해 아들인 이카루스에게 밀랍으로 붙인 날개를 달아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태양 가까이 날면 밀랍이 녹아 날개가 망가지고,
바다 가까이 날면 습기로 날개가 젖을 것이다.
중간 높이로 날아라.”
신나게 하늘을 날던 이카루스는 너무 높아진 나머지 태양에 의해 날개가 녹아 에게 해에 빠진다. 이 이야기는 흔히 인간의 자만심을 경계하자는 교훈으로 알려져 있으나 나는 내심 이카루스의 마음을 이해한다. 난생처음 하늘을 날면서 얼마나 신기하고 재미있었을까. 높다고 느낄 때 더 높아지고 싶은 마음. 링 위에서 상대를 몰아치며 신나게 두들기고 싶은 마음. 나는 동안 그의 눈동자에 태양 따위는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뜨거운 태양이 날개를 녹이는 순간에도 그는 즐겁게 날았을 수도 있다.
인간이 태양 가까이 날면 날개가 녹아 떨어지고 바다 가까이 날면 습기에 젖어 떨어지므로 신은 사람에게 중용이라는 지혜를 선물했다. 높아질 때 아래를 바라보고 낮아질 때 위를 바라보는 태도. 그러므로 높을 때에 곧 다가올 추락을 롤러코스터처럼 즐기고 낮을 때에도 곧 이어질 상승을 바이킹을 탈 때처럼 기대하는 마음. 높음과 낮음은 종이 한 장 차이의 상태이므로 수련자는 너무 기뻐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슬퍼하지도 않아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