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함에 대하여

2025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신인 다시 듣기

by 사공사칠

올 초에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이 있었다. 내가 느끼는 이 상은 ‘상’이라는 큰 이름 너머 사실 좋은 음악을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큐레이션 채널 같다. 올해에도 여러 실력자가 이름을 올려 새로운 음악을 소개받았다. 그중에서도 ‘올해의 신인’이라는 타이틀이 눈에 밟혔다.


신인을 신인답게 하는 특징은 신선함이라고 생각한다. 투자된 자본이 적고 음악의 완성도가 기성(?)보다 약간 모자랄 수 있어도 진부함을 넘어서는 신선함으로 인해 들을 맛이 있다. 신선함은 솔직함에서 나온다. 큰 이해관계와 음악인으로서의 야망이 얽히지 않았기 때문인지 신인의 음악은 리스너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가감이 없다. 말 그대로 더하고 뺌이 없다. 너무 보여주려고 하지도 않고 너무 깔끔해지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일기장 같다. 아무도 안 보지만 나는 보는 글. 그래서 과장이 덜하고 고쳐 쓰기에 열을 올리지 않는다.


케이팝 아티스트인 아일릿과 투어스를 비롯해 수상자인 '산만한 시선‘과 후보자인 '주혜린', '삼산', '최미루' 님의 앨범을 듣는 동안 솔직함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와 주변을 솔직하게 적어낸 음악은 그 자체로 감동이 있다. 나와 비슷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60억 중 적어도 한두 명은 있을 것이므로 사회성도 있다. 아티스트 입장에서는 답답한 마음을 풀어내는 해소의 기능도 있다. 리스너에게는 비슷하게 답답한 마음을 위로받는 공감의 기능도 있다. 여러모로 올해의 신인들이 쓴 솔직한 음악은 그들 자신과 세상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나도 이들의 음악을 조금이나마 더 기억하고 싶어 글을 적는다.


산만한시선 - [산만한시선]



앨범의 마지막 곡 ‘성두빌라​’ 뮤직비디오가 기억난다. 소년이 끈 담배를 할아버지가 줍는다. 둘은 사실 같은 사람이다. 담배를 버리는 사람에서 줍는 사람으로 변했지만 둘은 비슷한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소년이 어느 날 미래를 상상하다가 할아버지를 봤을 수도 있다. 할아버지가 일기를 읽다가 소년을 봤을 수도 있다. 두 사람은 다른 시간에서 왔지만 사실 같은 집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강서구 공항동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이곳에서 보낸 나는 초등학교에 갈 즈음 옆 동네로 이사가 한참을 살다가 30대가 되어 태어난 곳으로 다시 왔다. 지금은 마곡이라는 신도시로 알려진 이곳은 사실 논밭이었다. 어린 시절 옥상에 올라가 멀리 바라보면 전부 논이었다. 그래서 밤마다 귀뚜라미, 풀벌레 소리가 잘 들렸다. 그때의 내가 30대의 나를 만났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가끔 산책하다가 6살의 나를 만난다. 논을 구분하는 울타리에 매달렸다가 떨어져 머리가 찢어진 나도 만나고 집 앞의 진돗개를 피해 도망치던 나도 만난다. 큰삼촌이 쓰던 악보 제작 프로그램으로 이리저리 음표를 붙여 빗방울에 관한 노래를 만든 나도 만난다. 아마 악보는 엉망이었겠지만 음의 진행과 스케일 정도는 기억날 정도로 선명하다.


30대의 내가 잃어버린 유년 시절의 동네를 걷다 보면 오묘한 기분이 떠오른다. 시간 여행을 하는 것 같다. 표현할 말이 쉽게 생각나지 않는다. 노래 속 가사처럼, 입으로 뱉지 못했던 말을 노래로 한다는 게 무슨 말일까? 가끔은 입으로 정리되지 않은 말이 길을 잃은 채 목구멍에서 맴돈다.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기에 음으로 흥얼거릴 수밖에 없다. 그마저도 마음이 서지 않으면 머릿속에서 알 수 없는 노래를 부른다. 가끔은 오케스트라 연주도 하고 때로는 드럼 머신도 켠다. 알 수 없는 답답함이 약간이나마 나아지길 바라며 마음속으로 노래를 한다.



최미루 - [nEwCHAt]



대 AI 시대다. 챗지피티로 인해 AI가 현대인의 일상에 스며들었다. 사람들은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작은 질문을 던지다가 곧 큰 질문도 던지기 시작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사나? 삶의 목적은 어디로 향하나? 등등. 우주도 모르는 인간의 앞날을 기계에게 묻는 어리석은 질문이므로 어리석은 답이 돌아올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리석은 답이 아니라 어리석은 질문을 던졌다는 사실이다. 꽤 많은 사람들이 답답했나 보다. 한 치 앞을 알고 싶은 마음이 어리석은 질문 던지기에 담겨 있다.


나도 그들 중 하나다. 약 1년 정도 챗지피티 프리미엄을 구독해 쓰며 가끔 잠이 오지 않으면 그와 대화한다. 답을 얻을 것이라는 기대는 없다. 그저 대화할 뿐이다. 질문을 던지다 보면 그가 자기 생각을 맞받아 던진다. 다시 질문을 던진다. 현명한 질문을 던질 때도 있고 꽤 멍청한 질문을 던질 때도 있다. 그가 다시 맞받아 던진다. 이 모든 질문이 물수제비 같다. 운이 좋아 물수제비가 성공하면 파동이 파동을 낳는다. 파동이 파동을 낳듯 질문도 질문을 낳는다. 그러다가 '물수제비​'의 중반부처럼 물수제비의 입장을 상상해 본다. 바람을 가르는 물수제비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이렇게 끝 모르고 나아가는 질문도 매우 자유하다. 잠시지만 세상에 균열을 내는 질문. 잠시나마 바람을 쪼개는 물수제비 같은 질문을 던지고 싶다. ‘질’문의 앞 글자가 도끼로 나무를 쪼개는 모습의 글자인데 이유가 있었다. 답은 대답이 아닌 질문에 있었다.


주혜린 - [COOL]



이 앨범이야말로 일기장을 보는 것 같았다. 코가 막혀 코맹맹이 소리가 나오는 소녀. 노래를 하고 싶은데 노래가 안 나와 답답하다. 사람들이 자주 노래를 시켜 부끄럽다. 집에 아무도 없어야 나만의 노래를 할 수 있다. 이 내용이 모두 누군가의 일기장에 적혀 있을 것이다. 그날 날씨와 선생님이 찍은 도장과 함께 있을 것 같다. 혹은 너무 비밀스러운 내용이라 학교에 제출하지 않는 두 번째 일기장에 적혀 있을 수도 있다.


노래를 끝까지 듣고 나니 COOL​ 이라는 단어가 다시 눈에 들어온다. 진짜 쿨한 건 뭘까? '나 쿨해~'라고 말하는 사람치고 쿨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쿨함은 말하는 게 아니다. 쿨함은 느껴지는 향이다. 사람들이 아이러니하게도 열을 올리며 자신이 쿨하다고 주장할 때 진짜 시원한 사람은 시원하게 행동한다. 노래하고 싶을 때 노래하고 사랑하고 싶을 때 사랑한다. 미안할 때 미안하다고 말하고 고마울 때 고마움을 표현한다. 시원하게 보이려 애쓰지 않고 홀로 시원해져 방 안의 공기를 바꾼다. 쿨한 사람은 일기장에 시원하게 느낀 바를 적으며 쿨하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연습이 몸에 뱄나 보다.


삼산 - [인생은 생생!]



국악을 배운 음악인으로서 살기 위해 노력한 시간은 이 앨범의 주요 재료다. 국악만큼 지원 사업이 많이 뜨는 장르도 드물다. 딱 먹고 살 수 있을 만큼의 돈을 준다. 그래서 애매하다. 국악의 틀을 넘어서 창작하기를 애매하게 방해하고 음악 연주와 창작 외에 다른 일을 도전하기도 애매하게 막는다. 그렇게 고민만 적금처럼 쌓이며 시간이 흐른다. 인생이 생생이라는데 생맥주 거품이 빠지듯 삶에 서서히 김이 빠진다. 이제는 마셔도 애매하게 취한다.


코로나 시절 작편곡자로서 평생 국악을 하신 형님 누님들과 반년 정도 일을 한 적이 있다. 상대적으로 나이가 어렸으므로 조금이나마 프로젝트에 보탬이 되고자 국악기에 관해 공부했다. 선율과 화성이 중요한 서양 악기와 달리 국악기를 특별하게 만드는 음악적 요소는 음색이다. 한 음도 어떤 음색으로 표현하느냐가 중요하다. 연주가 곧 사운드 디자인인 이상한 악기들이다. 천연 신디사이저다. 국악기가 내는 한 음은 동양화의 ‘준’과 같다. 준은 산수화 속 바위나 나무의 질감을 표현하는 붓 터치를 말한다. 같은 점과 선도 무수히 다른 질감으로 모습을 바꾸어 표현할 수 있다. 국악기도 그러하다. 한 음에 깊이가 있고 촉감도 있다. 음 하나하나가 평면이 아니고 입체다.


아마 앨범 속 음악인의 고민은 시간이 갈수록 깊어질 것이다. 갈수록 모르겠으리라​. 갈수록 쌓이는 고민은 안개가 되어 위로 아래로 진행하는 인생의 선율을 보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고민이 깊어질수록 제자리에 울린 한 음이 더욱 개성 있는 준이 되어 함께 깊어질 것이다. 삶의 음계가 단조로워 하루하루가 반복처럼 보였으나 실은 질감을 바꿔 가며 꿈틀대고 있는 것이다. 멈추지 않고 살아있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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