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bert Hood - [Mirror Man] 다시 듣기
Genre: Electronic
Style: Detroit Techno
간혹 엘리베이터를 타면 거울이 거울을 비춰 무한히 이미지가 생길 때가 있다. 거울이 거울을 반사하고 반사해 상이 깊어진다. 줌이나 OBS를 이용할 때 화면 공유를 잘못해도 이런 경우가 생긴다. 끝없이 깊어지는 거울 이미지. 끝을 모르는 반복이 어느새 내 눈에서 모습을 감춘다. 하지만 이미지가 반복을 멈췄다고 말할 수 없다. 내 눈이 보지 못할 뿐 이미지는 더욱 잘게, 지금도 펼쳐지고 있을 것이다.
이 앨범 안에 거울 속에 빨려 들어가는 내가 담겨 있다. 디트로이트 테크노라는 장르 설명은 앨범에 담긴 미학을 충분히 표현하기에 모자라다. 이 앨범은 거울에 갇힌 내가 겪는 시간이다. Mirrorman은 거울을 벗어날 수 없다. 아무리 달려도 그는 거울을 벗어날 수 없다. 도망에 성공했다고 느낄 즈음 더 작은 거울 이미지가 나를 가둔다. 앨범 곡에 맞춰 달리는 나는 언제나 제자리일 수밖에 없다. 제자리를 달릴 수밖에 없다.
제자리를 마구 달리다 보면 어느덧 시간은 어두운 지하 테크노 클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큰 스피커 앞에서 사람들이 제자리를 달린다. 춤이라고 하기에는 서사가 없고 움직임이라고 하기에는 격렬하다. 춤과 움직임 사이에서 사람들이 제자리를 달린다. 마치 거울에 갇힌 것 같다. 달리지만 아무 곳으로도 나아가지 않는다. 그저 달리는 순간을 경험할 뿐이다.
순간이라는 러닝 머신 위에서 최선을 다해 달린다. 순간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실은 어두운 클럽 바닥에는 각자의 순간이 흐르고 있다. 강을 거스르는 연어처럼 사람들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흐르는 시간을 거슬러 달린다. 그때 각자의 순간이 스파크처럼 일어난다. 흐르는 속도와 거스르는 속도가 비슷해 제자리를 달리는 것처럼 보였나 보다.
추천곡 1. Nothing Stops Detroit
외계인들이 즉흥 연주를 하는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추천곡 2. Run Bobby, Run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토끼굴로 들어서면 쉴 새 없이 달려야 한다. 제자리를 맴돌더라도 달리지 않으면 토끼굴을 나올 수 없다.
추천곡 3. Ignite A War
마지막에 초 심지에 불을 붙이기 위해 6분 남짓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