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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희 작가 May 03. 2023

그냥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1. 취해 사는 놈

막내 작가로 일을 시작한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나는 일주일에 3번 이상 술을 마셨다.

그것도 참이슬 빨간 뚜껑으로!!!


물론, 안주는 훌륭했다. 연고 없는 서울에 온 지 한 달 된 내가 혹시나 굶을까, 회사 주변 유명 맛집들을 데리고 다니며 저녁까지 사주던 PD님! 잘 지내고 계시죠?

연차가 좀 된 조연출이 자기는 처음처럼이 좋다고 주문한 뒤 내게 만들어준(?) 별이다. 빨간 뚜껑 참이슬 사진이 있나 하고 엔드라이브를 뒤지다 발견, 유일한 그 당시 사진.


이 PD님은 저녁을 먹을 때면 꼭 빨간 참이슬을 찾곤 했다. 이유는 다양했다. ‘아 오늘은 편집이 잘 안 되네’ 또는 ‘오늘은 편집이 잘 되네?’, ‘섭외 답변 아직 안 왔지? 기다리면서 한잔 할까?’, ‘내일 남산 촬영이 몇 시부터지? 점심부터니까 한잔 해야겠네’, ‘오늘 왠지 갈비에 소주가 땡기지 않니?’ 등 하다못해 첫 출근 한참 전에 지난 내 생일을 챙겨주지 못했다는 이유로 빨간 참이슬을 오픈한 날도 있다. 똑같은 이유는 없었다. 절대 술을 권하는 분은 아니지만, 어른(?)이 드시는데 가만히, 멍하니 바라보고 있기엔 나 역시 술을 좋아했다. 마셔본 사람은 알 텐데, 참이슬 빨간 뚜껑(오리지널)은 유독 알콜 맛이 강하다. 첫 잔을 들이켜곤 인상을 찌푸리니 ”이제 너도 어른이다“라며 빈 잔을 채워주던 PD님 말이 떠오른다. 내 인생 첫 빨간 뚜껑이었다.


그렇게 저녁 식사가 회식이 되어버린 것이 여러 번!(이때 방문했던 식당들은 요즘에도 종종 찾아가곤 한다.) 회식(?) 다음 날 출근해서 제일 먼저 위장약을 드시던 피디님을 보며 갸우뚱했는데... 한 달 뒤, 자연스레 위장약을 건네받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 ‘나 사회생활 잘하네?‘하며 내심 뿌듯해하기도 했다. 이제와 하는 말이지만, 내 위장이 아작 난 이유를 알겠다.


방송작가로 첫 시작을 참이슬 빨간 뚜껑과 함께해서 그런가, 나는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물론, 다 핑계이고... 어쩌면 나는 그냥 술을 좋아하는 사람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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