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순수했던 놈
방송 작가가 어떻게 일하고, 얼마큼의 페이를 받는지는 일 시작하기 전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당시에는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일을 하는 게 당연했고(지금도 종종 그런 곳이 있다고 들었다.) 방송 일이 하고 싶었던 나 역시 계약서 작성을 하지 않는 거에 대해 어떠한 질문도 하지 않고 그저 ‘일 시켜줘서 감사합니다’ 이런 마음이었다. 내가 처음 방송 일을 하게 된 프로그램은 다큐 프로그램이었는데, 매회 다른 내용으로 제작되는 특성상 회차별 제작 팀도 다르고 그중에 외주 제작 팀도 있었는데 나는 외주 제작 팀에서 일했다.
내가 팀에 투입됐을 때는 절반 이상 제작이 되었던 때이고, 나는 약 2개월 정도 일을 하면서 해당 회차에 필요한 자료조사, 전문가&일반인 인터뷰 섭외와 정보 확인 및 자막 검수 업무를 했고 빨간 뚜껑 참이슬을 좋아하던 PD님이 촬영장 구경하라며 몇 번은 촬영장에 나가 촬영하는 걸 보곤 했다.
거의 모든 게 처음 하는 일인지라 배우고 익혀서 결과를 내고 이걸 반복하며 2개월을 보냈고, 2개월 일하면서 단 한 번도 급여를 받지 않았다. 작가들은 보통 회당 페이를 받는다. (막내 작가를 제외하곤) 회당 페이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내가 제작에 참여한 내용의 영상이 TV나 OTT, 유튜브 등의 매체로 송출될 때 회 당 작가료를 받는 개념인데 이건 어떻게 계약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매주 수요일에 방송되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일한다면 보통 한 달에 4번 방송되니 회당 페이 X 4개를 지급받는 방식. 어쩌다 결방이 되면, 결방 회차를 제외한 나머지 회차만 페이가 나온다. 이번 달에 총 4번 방송될 예정이었으나 1번 결방이 됐다면, 회당 페이 X 3개로 계산하면 된다. 아! 그리고 보통 페이는 방송이 나가고 그다음 달에 지급된다.
보통 이런 식으로 페이를 받지만, 처음 일을 했던 다큐 프로그램은 매주 방송을 내는 게 아니었기에... 한 달을 기준으로 약 80만 원의 페이를 받기로 첫 출근 날 메인 PD와 말로(?) 계약을 했었다. 그렇게 두어 달을 일하고, 방송을 했고, 달이 바뀌었는데... 내 통장에 찍힌 페이는 ‘1,257,100원’? 왜죠?
일단 달 페이를 받기로 했는데 두 달 페이를 한 번에 받는 것도 이해가 안 되겠지만, 그때의 나는 그게 중요하지 않았다.
3.3%를 떼고도 턱없이 부족한 돈이라 많이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확인을 해보았더니, 약 2달을 일했지만 굳이 굳이 따지면 45일? 46일? 정도라 2달 치 페이를 다 줄 수 없다고 말을 바꾸었다. 물론 야근, 밤샘, 주말 출근의 비용은 계산되지 않았다. 황당하고 어이없었지만 처음 날 써준 곳이기에 감사함이 컸는지, 마치 ‘난 이런 것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대표님은 역시 다르다’를 깨달은 사람처럼 ‘아!’하고 감탄사를 외치며 전화를 끊었다.
주위 사람들에게 얘기했더니 ‘열정페이도 이런 열정 페이가 없다’, ‘너무 부당한 거 아니야?’ 등 나를 위로하는 말들을 했지만, 돈 보다 그토록 원했던 ‘방송 일’을 시작했고 내가 참여한 내용의 영상이 방송되었다는 기쁨과 방송 스크롤에 내 이름이 올라갔다는 감동에 빠져 당시에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괜히 자기가 다 미안하다며 빨간 참이슬을 사주던 PD님이 그 후로 한참 동안 고마웠다.)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일이다!
2013년의 나, 돌아보니 참 순수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