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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희 작가 May 16. 2023

아직도 못 받은 돈 ‘600만 원’

5. 재수 없는 놈

5년 차 때 일이었다. 지금이야 스포츠+예능이 익숙해졌다지만, 그때는 ‘스포츠를 예능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거지? 생각만 해도 노잼인데’라고 생각했다.(자세한 스포츠 종목은 생략) 하지만... 결국 그 프로그램을 했다. 해서는 안 됐는데 하고야 말았다. 6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그때 함께한 제작진끼리는 그 프로그램을 하나의 밈처럼 활용하고 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너무 우울하고 슬프고 부당한 일이기 때문이다.

2년 전에 나눈 카톡. “여기는 돈 잘준대요” 한 마디에 다시금 빡치는 기억.

어떻게 된 상황이냐면, 촬영 시작 전 1달 반 정도 기획 및 섭외를 진행했고 편성을 받아서 바로 촬영을 시작했다. 촬영을 한 6회까지 진행했을 때 첫 방송 온에어가 됐다. 방송 계약은 약 12회.


3회 방송이 나갔을 때, 우리는 9-10회 촬영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미 1달 반 기획료 + 2회 분의 방송 페이가 지급되었고 우리는 예정대로 9-10회 촬영을 진행했다. 1박 2일의 촬영을 잘(?) 끝내고(촬영과 방송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하는 주였기 때문에, 밤늦게까지 촬영을 하고 숙소로 돌아와 밤새 자막 작업을 하고 또 아침 일찍부터 촬영을 진행했어야 했다. 무척이나 피곤했다.) 그다음 주 월요일에 출근을 했더니 웬걸? 돈이 없단다.


당장 내일모레 5회 방송을 앞두고 있는데 돈이 없다는 건 무슨 말인지 당최 이해가 안 됐다. 5년 차 밖에 안 된 내가 어떻게 이해가 되겠냐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남은 2회분 촬영을 진행하느냐 마느냐를 고민할 정도로 심각했지만, 더욱 심각한 건 이미 촬영 장소 섭외와 답사까지 마쳤고 게스트 섭외까지 끝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서든 돈은 받아낼 수 있으니 이왕 온에어 하고 있고, 촬영은 한 번만 진행(1박 2일 촬영으로 2회 분량을 뽑는)하면 되니까 잘 마무리하자는 결론을 내고 마지막 촬영을 준비했다. 준비하면서도 워낙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니까 돈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자기 위로하며 타임테이블과 촬영 구성을 짰다.


마지막 촬영까지 끝냈을 때 방송은 7회까지 온에어 됐으나, 나 그리고 우리는 아직 2회 치 페이 밖에 받지 못했다.


또 한 달이 지나고 계약된 방송 12회까지 모두 끝냈지만, 더는 통장에 돈이 들어오지 않았다. 이후, 동의한 제작진들끼리 제작사 대표에게 고소장을 제출하고 변호사를 선임하고 할 수 있는 건 다 했으나 지금까지 통장에 입금은 찍히지 않았다. (근로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게 크다)


출연자들도 출연료를 받지 못했고, 그에 대한 항의 전화와 상황 설명 역시 작가들의 몫이었다.


그 후로 새 프로그램에서 페이가 나올 때까지 약 석 달간은 그간 모아뒀던 적금을 깨고, 한 푼이 아까운 상황에서 아낄 수 있는 건 최대한 아끼면서 살았다. 먹을 게 없어서 참치캔 뜯어 맨 밥에 김치국물 넣고 비벼 먹은 적도 있다. 물론, 처음에는 모아둔 돈도 있고 적금도 깨서 나름(?) 여유가 있었지만... 월세, 공과금, 교통비, 통신비 등 두어 달 지나니까 빠듯했다. 그때는 이런 상황에 놓인 나 스스로가 너무 창피해서 어디 말할 곳도 없던 설움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심지어 그 프로그램 촬영하면서 다리도 삐끗해 한동안 깁스를 하고 다녔는데,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돈을 못 받다니 너무 억울하고 분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술 마시고 제작사 대표 뒷담화 하는 것 말곤.


그때를 계기로 본사 제작을 우선으로 했으며, 외주 제작사에서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는 제작사에 대해 최대한 자세히 알아보는 꼼꼼함이 생겼고 그 후로는 돈을 떼인 적이 없다. 600만 원어치의 경험인가...!


며칠 전에 같이 일한 작가들과 ”우리 그때 못 받은 돈 받을 수 있을까?“ 하며 당시 이야기가 잠깐 나와서 기분이 몹시 우울했다가 이렇게 적고 나니까 되려 마음이 편하네.

우리 통장은 언제나 열려있습니다!

지금이라도 감사하게, 기적(?)처럼 돈을 받으면 뭐 하지. 행복한 고민 하다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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