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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격하는지혜 Jan 06. 2021

‘경이로운 소문’의 히어로관(觀)에 대하여

"힘을 가진 자가 살인충동을 느끼는 건 악귀나 다름 없어"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자신의 저서 ‘선악을 넘어서’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괴물들과 싸우는 누구나 그 싸움의 과정에서 스스로가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당신이 오랫동안 심연을 들여다볼 경우 그 심연 또한 당신을 주시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OCN '경이로운 소문' 스틸컷1


OCN ‘경이로운 소문’(연출 유선동, 극본 여지나)에는 하늘의 힘을 받아 악귀를 잡는, 그러나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는 아니, 못하는 감추어진 히어로, 일명 ‘카운터’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코마 상태에 놓여 있다 하늘의 선택을 받았다는 공통의 지점을 갖는데 주인공 ‘소문’(조병규)은 특이하게도 멀쩡히 일상생활 잘 하고 있는 중에 하늘의 힘과 맞닥뜨려 카운터가 되고 말았다.


OCN '경이로운 소문' 스틸컷2


‘되고 말았다’라 적었지만 카운터에게 부여되는 하늘의 힘은 굉장했다. 소문의 신체적 능력이 향상된 것은 물론이고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다친 다리까지 말짱해졌으니까. 단순히 지팡이 없이 걷고 뛰는 걸 넘어 누구보다 빠르고 강하게 움직일 수 있게 된 소문이, 카운터로서 악귀가 벌이는 악행들을 막고 소탕해 나가는 모습은 우리가 히어로물에서 으레 보아왔던 통쾌한 장면들이라 하겠다.


OCN '경이로운 소문' 스틸컷3,4,5


이렇게 마냥 유쾌하고 통쾌할 수만 있다면 좋겠다만, 알다시피 초인적인 능력을 제 목적에 맞게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면 히어로라도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다는 게 히어로물이 취하는 기본적인 흐름이다. 그리고 이 흐름의 과정에서 대개 해당 작품이 지닌 히어로관(觀)이 드러나는데 현재 소문이 카운터 자격을 박탈당한 상황에 직면한 ‘경이로운 소문’이 그러하다.


마음씨가 참 예뻤던 지라 주어진 힘을 잘 사용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소문에게 변수가 생겼다. 부모의 죽음이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사람의 욕망이 악귀를 통해 저지른 살인에 의한 것이고 그 악귀가 부모의 영혼마저 사로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소문은 타오르는 분노와 복수심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다 결국 살의까지 느끼는 경지에 이르고, 이를 위험하게 여긴, 소문을 택하여 카운터로 만든 ‘위겐’(문숙)이 그에게 주었던 능력을 거두어간 것이다.


OCN '경이로운 소문' 스틸컷6


“하늘의 힘을 가진 자가 살인충동을 느끼는 건 악귀나 다름 없어, 소문아.”

사실 소문으로서는 너무 당연한 감정의 분출이다. 부모를 죽인 것도 모자라 영혼을 잡아먹은 악귀가 눈 앞에 있는데 어느 자녀가 제 정신일 수 있을까. 있는 힘, 없는 힘 다 끌어다모아 어떻게든 죽이고 싶을 테다. 그러나 문제는 소문이 그냥 일반적인 사람이 아니라, 뚜렷한 목적이 있는 하늘의 힘, 보통의 범주 이상의 능력을 받은 카운터라는 점이다.


뚜렷한 목적은 당연히, 사람들의 악함을 부추겨 무고한 이들을 고통에 빠뜨리고 세계를 어렵게 만드는 악귀를 잡아 제 몫의 형벌을 받도록 소환시키는 것이고. 보통의 범주 이상의 힘을 가진 히어로라는 건 그만큼의 혹은 그 이상의 선(善)한 의지와 도덕적 책임감이 뒤따르고 있다는 의미다. 그저 개인의 분노나 복수심을 위해 주어진 능력을 사용한다면 초인적인 힘을 가지고 제 욕망을 채우기에만 바쁜 악귀와 별다를 바 없다는 이야기.


OCN '경이로운 소문' 포스터


즉, ‘경이로운 소문’의 히어로관은 카운터로 불리는 히어로와 악귀는 한 끗 차이에 불과하여, 히어로에게 능력보다 더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건, 선에 대한 아주 선명한, 보통의 사람들이 가진 것 이상의 선명한 감각으로, 이것이 조금이라도 덜하거나 모자르게 되면 혹여 최악의 상황에 놓이게 될 때 악귀보다 더한 악귀로 돌변할 수 있다는 것. 소문이 카운터로서 자격을 박탈당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인 동시에, 다시 되찾게 될 수밖에 없는 원동력이겠다.


OCN '경이로운 소문' 스틸컷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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