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이병헌과 하정우로 완성된 이야기
백두산이 폭발하여 한반도의 거의 대부분이 사라질지 모를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다는 가정 하에 만들어진 영화 ‘백두산’은 줄거리 소개가 다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이야기의 구성이 특별하지도 완성도가 높지도 않다. 개연성에 있어 다량의 허점을 보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죽은 인물도 되살린다는 연기력을 가진 배우들의 활약으로 보통 이상의 평가는 받게 되었다.
전역을 앞둔 특전사 ‘조인창’(하정우)은 백두산이 곧 일으킬 재앙을 막기 위한 또 다른 폭발이라는 특별지시를 받고 북으로 향한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의 이면엔 어떤 영웅 심리나 큰 애국의 마음이 있진 않다. 그저 만삭의 아내가 무사히 한국을 빠져나갈 수 있게 해준다는 이야기에 이 무모하고 말이 되지 않는 작전에 응했을 뿐이다. 사람을 죽이는 것도, 접전 상황에서 부하들을 진두 지휘하는 것도 어색한 그는 ‘리준평(이병헌)’의 말마따나 이런 종류의 작품에서 ‘보기드문 영도력’을 지닌 인물이다.
리준평은 조인창이 북으로 간 목적을 달성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사람으로, 북한 소속의 공작원이지만 핵심 정보들을 손에 쥐고 때마다 본인에게 이익이 되는 쪽으로 움직이는, 영민하고 노련한 스파이의 전형이다. 배신을 하는 것도 낭만적이어야 할 수 있다는 그는, 기본적으로 사리분별과 손익계산에 냉철한 모습을 보이나 때때로 인간미를 지닌 사람만이 낼 수 있는 품격을 풍기기도 하여 이야기의 흐름 내내 긴장의 수축과 이완을 담당한다.
인물만 설명하면 이야기는 상당한 무게감을 지닌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소재 자체가 지닌 심각성이나 화제성이 만들어낸 부피를 제외하면 단순한 구조인 데다 개연성마저 떨어지는, 상당부분 부풀어오른 것일 뿐이어서, 실은 가볍기 그지 없다. 이에 비해 이병헌의 리준평이 실재하는 인물이라 여겨질 만큼의 압도적인 현실감과 흡입력을 자랑하니, 어떤 장면에서는 그의 서사가 꼭 다른 작품의 것인마냥 이질감이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다.
즉, ‘백두산’의 관건은 이 이질감, 작품의 무게 및 완성도와 배우의 연기력 사이의 괴리를 없애는 데 있었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병헌과 투톱으로 움직이는 배우가 하정우라는 점은 작품의 크나큰 복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정우에 의해 탄생한 조인창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투 머치 토커’다. 실소 하나 나오지 못할 절박한 상황에서도 북한의 핵을 두고 공화국의 짐이라는 둥 우스갯소리를 내뱉을 정도로 심각한 순간에도 표정이 무거워지거나 마음이 주눅들기는 커녕 끊임없이 입을 놀린다.
한 쪽은 완벽하게 능숙하고 다른 한 쪽은 완벽하게 엉성한 모습, 흥미롭게도 이 서로 상반된 유형의 리준평과 조인창이 보이는 완벽한 합이 자칫 억지스럽고 엉성해 보일 수 있는 이야기의 맥락들을 능숙하게 감싸 안아, 관객들을 납득시키는 데 이른다는 것이다. 숙달된 연기력을 지닌 두 배우의 숙달된 조합이 앞서 언급한 괴리감을 자연스럽게 해결함은 물론, 작품이 가진 어느 정도의 허점들까지 가려준 독특한 케이스라 하겠다.
물론, 그럼에도 메워지지 않는 허술한 플롯과 그 속에서 마동석, 전혜진 등의 능력치 좋은 배우들이 어설픈 감동을 이끌어내는 역할로 소비되는 것 외에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한 부분은, ‘백두산’의 여전한 치명적인 결함이다. 하지만 한반도에 닥친 위기로 북한의 권력 구도가 무너졌을 때 주변 국가들이 보일 반응과 우리가 직면하게 될 상황을, 이병헌과 하정우의 연기력이 건네는 안내를 따라 몰입하여 상상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나마 볼만한 가치를 획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