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색깔이 있다면 무슨 색일까. 벚꽃 같은 분홍빛을 띨까, 아니면 칠흑 같은 검은색일까. 사랑을 다른 단어로 말한다면 희망일까, 절망일까. 크기는 손바닥 안에 담을 수 있을까, 혹은 호수만큼 넓고 아득할까. 천장을 보며 누워 있다가 문득 이런 것들이 궁금해졌다.
아, 그러고 보니 사랑에 관해 최근 들었던 일화가 있다. 꽃을 가르쳐주시는 선생님이 해주신 이야기인데, 파란 장미에 관한 거였다. 한 손님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여자친구에게 파란장미 다발을 선물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하여 선생님은 정성스레 상품을 만들었고, 배달하시는 분의 손을 통해 선물 받는 이의 집 앞으로 전달됐다. 하지만 받는 이는 이걸 받을 이유도, 마음도 없다는 것이 아닌가. 배달하는 사람도, 선생님도 난감해진 상황. 알고 보니 둘은 이미 헤어진 사이였고, 남자 측에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 선물을 보낸 거였다는 웃지도 울지도 못할 이야기였다. 나는 선생님께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파란 장미의 꽃말이 무어냐 물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랑’
원래 파란 장미의 꽃말은 불가능이었다고 한다. 꽃들을 유심히 보면 그중 파란색을 띠는 건 드물다. 번식의 목적으로 씨앗을 널리 퍼트려야 하는데, 운반하는 벌의 눈엔 그 색이 매력적이지 않아 그 수가 점점 줄어 거의 없어졌다나. 여하튼 현대로 와서 여러 사람들이 파란색 꽃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그리하여 우리가 파란 장미를 볼 수 있게 된 건 고작 17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래서 파란 장미의 꽃말이 ‘불가능의 극복’, ‘포기하지 않는 사랑’으로 바뀌었다는 글을 며칠 전 신문에서 읽었다.
파란 장미에 얽힌 사랑 이야기를 듣다 보니 궁금해졌다. 그 연인들 결국 다시 만났을까, 아니면 영영 남이 된 상태로 각자 다른 사람에게 입을 맞추고 있을까. 남자는 해볼 수 있는 걸 다 해본 걸까 그래서 후회 같은 건 남지 않았을까. 여자는 시간이 지나고 그 남자가 가끔이나마 생각이 날까.
사랑. 여전히 잘 알지 못한다. 자주 실패하고 매번 서툴고 여태껏 그래왔듯 능숙하지 못하다. 하지만 지구라는 별에 내가,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사랑을 하거나 혹은 하지 않기 위해 숨을 쉬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