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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

by 오또또이


Y를 만나러 가는 길. 우리가 못 본 지도 5년이란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일본에서 지내고 있는 그는 잠깐의 휴가를 보내러 한국에 들렀다고 했다.


Y는 내 군대 후임이다. 단 한 명뿐인 후임. 나와 동갑인 그는 나와 대화를 할 때 여전히 말 뒤에 까나 다를 붙인다. 말을 놓으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도 알았다고 말만 하고는 매번 똑같다.


나는 경찰서장님을 모시는 수행비서로 군 복무를 했는데, 그전에 경기도에 위치한 한 방범순찰대에 있었고 그때 Y를 알게 됐다. 다른 소대였지만 어쩐지 정감이 가던 그. 내가 수행비서로 차출된 후에 그를 교통경찰로 추천해서 같은 곳에서 근무를 하게 됐다. 내가 전역하기 전까지 함께 지냈으니 1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가족보다 자주 보며 매일 시간을 함께 보냈었다.


Y는 내 치부를 다 들여다본 사람이기도 하다. 단체 생활에서 잘 섞이지 못하는 미숙하고 이기적이었던 내 모습과 툭 건드리면 폭발하기 일쑤였던 불 같던 내 20대를, 서로의 불완전하던 시기를 보았던 게 이유라면 이유일까. 상대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고 온전한 나를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고로 Y는 내 과거의 모습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인데, 오랜만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니 내가 많이 바뀌어 있었다고 했다. 20대와 30대는 다르지 않겠냐며, 많은 것들이 바뀌었고 혹은 바뀌지 않았다고 답했다.


우리는 군생활을 보낸 경찰서 앞에 있는 한 중식당을 즐겨 찾았는데, 그곳의 사천 탕수육을 참 좋아라 했다. 그게 생각나서 그를 데리고 다시 그곳을 찾았다. 일본으로 돌아가면 다시 못 먹을 것들이니 원하는 건 다 먹어보라며 메뉴판을 들이미는 내게 괜찮다며 손사래 치는 그. 우리가 좋아했던 매콤한 맛의 탕수육과 쟁반째로 나오는 자장면 그리고 그가 먹고 싶다던 새우 요리를 앞에 두고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를 사람의 안위와 경상북도에서 경찰로 근무하고 있는 어느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이 외국인으로서 살면서 느끼는 일본에 대해서도 세세하게 이야기해주었는데, 직접 살아보지 않으면 알지 못할 신기한 이야기들이라 귀를 쫑긋 세우고 눈을 반짝이며 들었다.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가 예전에 자주 했던 것처럼 경찰서를 중심축 삼아 근처에 있는 구청과 보건소를 끼고 크게 한 바퀴 걷기 시작했다. 걷기 좋았던 이 계절에 우리는 걸으면서 이야기 나누는 걸 좋아했었지. 우리는 쉴 새 없이 서로가 하고픈 이야기들로 입을 열었고, 잠시지만 그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와 시간을 보낸 건 두 시간 남짓이었지만, 그 시간 동안만큼은 아무 생각 없이 편하게 있을 수 있었다. 현실을 마주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하는 막연하지만 막막한 걱정 또한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다.


나의 치부를 보여줘도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 사람과의 만남은 생각만큼 자주 일어나는 기적이 아니기에 그 시간이 더 애틋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나이가 들수록 어려워지지만, Y처럼 마주하기만 해도 좋은 사람을 보면 다시금 오늘을 살아갈 용기가 생긴다.


그를 보러 일본엘 가야만 하겠다. 그곳에선 탕수육이 아닌 다른 음식이, 눈에 익지 않은 장소가 내 앞에 놓여있겠지만 사람이 좋은데 그까짓 게 대수겠는가. 어느 곳에서든 어느 시간에서든 좋은 사람과 함께라면, 추억이 비눗방울처럼 방울방울 부풀어 오른다. 그리고 나는 그 추억을 공기를 마시듯 힘차게 들이켤 것이다. 마치 오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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