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열 시가 조금 넘은 이슥한 밤. 다음 날은 오랜만에 꽃을 만드는 날이라 일찍 잠을 청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중이었다. 꽃을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체력 소모가 크다 보니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는 게 중요해서다. 침대와 한 몸이 되어 뭉친 근육을 풀어주며 누워있는데 아끼는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되냐고, 어떻게 지낸 거냐며 걱정했다는 잔소리와 함께.
후배는 고민이 있다고 했다. 회사 면접을 봤는데 같이 시험을 본 친구는 합격하고 본인은 떨어졌다고 했다. 그래서 그 친구에게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주어야 하지만 진심 어린 마음을 담지 못하겠다는 것. 그래서 자신이 매우 나쁜 사람처럼 여겨진다는 거였다. 또한 꼭 가고 싶던 회사는 아니었지만 막상 불합격하고 나니 너무 속상하다고도 덧붙였다.
남의 아픔에 공감을 잘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후배의 마음은 그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었다. 나도 똑같은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한 회사의 최종면접에서 미끄러진 때를 떠올리며 나는 후배에게 천천히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내가 잘되지 못했는데 남의 성공에 진정으로 축하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거야. 사람은 모두 이기적이니까. 그럼에도 친구에게 축하 메세지를 보낼 수 있었던 네가 대단한 게 맞아. 그리고 성공의 관점에서 본다면 면접에 떨어졌으니 실패가 맞지만, 성취의 측면에서 바라보면 분명 네가 얻은 게 있을 거야. 네 위치가 어디인지 알게 됐고, 너가 어떤 점이 부족하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깨달았으니까. 남들보다 조금 느리면 어때, 너만의 속도로 가고 있으면 된 거야. 페달을 밟고 있다는 게 중요한 거지, 얼마나 빨리 밟느냐로 판가름 나기엔 인생은 너무 길잖아. 그러니까 너무 우울해하지 않아도 괜찮아.
내 말을 들은 후배는 울음을 터트렸고 나는 울어도 괜찮다고 말했다. 우는 행위는 많은 것들을 가볍게 만들어주니까. 울고 싶은데도 울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걸 보면, 눈물을 흘리고 싶을 때 숨이 차오를 때까지 울 수 있는 것도 축복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기분이 나아지게 하는 덴 맛있는 음식이 특효라고 생각하는 나는 후배네 집으로 칼칼한 국물로 유명한 가게의 떡볶이를 배달 시켜 주었다. 떡볶이를 먹는 중에 후배는 연신 너무 맛있다고 말하며 행복해하길래, 아까와 감정의 온도 차이가 너무 큰 게 아니냐며 조금 놀렸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수화기 너머의 나와 대화를 나누니, 후배의 기분은 금세 달떠있었다.
행복이란 건 복권에 당첨되거나, 으리으리한 넓은 집에 살거나,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거나, 좋은 차를 운전하는 일이 아님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점점 더 깨닫는다. 최근에 읽은 책에선 사람이 행복해지는 데 필요한 건 딱 두 가지라고 한다. 사람과 음식.
행복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고, 함께 맛있는 음식을 음미하는 일이라는 것을, 큰 돈이 필요한 게 아니라 떡볶이를 살 만큼이면 충분하다는 걸 간과하고 사는 건 아닐까. 우리는 행복이 사소한 것들로부터 비롯된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너무나 자주 잊고 살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