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시도: 희망은 어디에?
삶이 어렵다 보면 희망을 찾는다.
2001년 6월 17일인가. 처음으로 미국땅에 선 날.
댈러스 포트워스 공항에 도착해서 국내선으로 갈아타는 길.
문이 열리자 한증막 문을 연 듯한 상상을 초월하는 열기와 습기를 뚫고
국내선 터미널로 간다. 두리번거리며,
쏟아져나오는 사람들. 카우보이 모자, 내 손바닥만한 혁대 버클과 무릎까지 오는 부츠.
텍사스구나.
소고기 굽는 냄새가 여기저기서 나는듯한 이질적인 국내선 터미널.
슈사인 보이.. 라기엔 너무 늙은 흑인 아저씨가 구두를 닦고 있다.
좌석버스만한 비행기를 타기 위해 버스를 타고 터미널을 나선다.
건너편에 앉은 아이와 엄마. 아무리 봐도 한국사람들 같은데,
아이가 장난아니게 꼬질꼬질하다. 씻길 여유가 없었나.
엿튼 밤이 되어 도착한 컬리지 스테이션.
아무것도 안보이는 깜깜한 동네에 전부 불이 켜져있는 나지막한 빌딩들.
왠만한 아파트 하나는 다 덮을 만한 어마어마한 사이즈의 성조기가 나부낀다.
마중나온 선배의 차를 타고 숙소로 간다.
시차때매 잠도 안오고, 아파트가 해수욕장 간이 방갈로처럼 생겼다.
그 이후 2년.
절망의 끝을 보았다.
여긴 어디고 난 어디로 가는가. 왜 이런걸 배우고 어따 써먹나.
한국의 예전 지도교수는 현실성 제로 어드바이스를 날린다.
갖고온 돈은 1년만에 다 떨어졌다. 엄마는 회사가 어려워서 돈이 없단다.
공부라도 열심히 하자. 머리 빠개질때 까지.
엄지손가락만한 바퀴벌레가 기어다니는 와이젠버거(이였나?) 빌딩 지하 대학원생 오피스에서
하루에 14시간씩 공부를 한다.
마루첸 라면, 비프스튜, 일주일치 만들어놓은 샌드위치, 이런걸로 2년을 버텼다.
차라리 전공을 바꾸자. 14군데 박사 지원해서 다 떨어졌다.
그럼 취직을 하자. 400군데 회사 지원했는데 아무도 연락 안온다.
도데체 여기 왜 왔을까?
같이 석사를 시작한 인도인 동기생들 100명 가량이,
우리과의 인도 학생들이 취직을 최근 3년간 한명도 못했단다.
닷컴버블 터지고 9/11 터진 직후의 스몰 리세션 한 가운데였다.
유학 지원할 때도 10군데인가 써서 한군데 된 곳이 여기라 온건데,
한국에서는 나름 그래도 유능하다는 얘기 좀 듣고 학교 다니고 병역특례 하고 한것 같은데,
이렇게까지 노력해도 바닥으로 꺼지는 느낌.
바닥 다음 지하실. 지하실 다음 지각, 지각 다음 맨틀, 맨틀 다음 외핵, 외핵 다음 내핵..
오피스 천정을 보면 환기 파이프가 어지럽게 가로지른다.
저기에 그냥 목을 맬까.
하면 안되는게 당연한 세상인줄 몰랐구나.
희망을 가질수록 삶은 기하급수적으로 불행해진다.
마음을 가다듬고, 자 심호흡, 심기일전, 정신일도 하사불성!
We very regretfully inform you that we decided to pursue another candidate who has a better fit to our blah blah blah..
You know what, the above rejection mail/email is the next best thing you can get. Because you get a visibility at least. Most of the cases they simply don't bother getting back to you.
엿튼. 희망을 가지길 포기했다. 또한, 포기하기를 포기했다. 포기할거면 그냥 죽으면 된다. 하루만 시간을 더 나에게 주고 한번 더 시도해라.
그래서 어떻게 됬냐고? 한국에 돌아왔다. 석사 마치고.
세상에 가장 비싼 사서고생 아니였을까. 돈도 돈이지만, 그 마음고생은 이루 말을 못한다. 어떻게 보면 포기한 셈이다.
그러나,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다.
공부는, 잘 모르겠다. 뭘 배웠는지.
인생은 배웠다. 그 후로도 더욱 많이 한아름 배울게 많지만. 하하.
그중 하나는, 희망은 별 소용 없다.
갈길을 정하고 그냥 해라. 내핵을 뚫고 가더라도 그냥 해라. 팔다리가 날아가더라도 그냥 해라.
될때까지 하는것도 아니다. 되든 안되든 해라.
성과가 아무리 초라하더라도 계속 해라. 네 경쟁자가 발가락으로 널 이긴다고 해도 그냥 해라.
그러다 보면 갈길이 보인다. 그 길 밖에선 절대 보이지 않는.
그럼 또 가는거다. 계속.
그래서 살아남으면 좋고, 못 살아남아도 후회는 없을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