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4/2026 일요일

정착 이후 - 뉴 저지로. 에필로그.

by 윤준희

펜실베이니아 집을 매각한 후,


와이프도 나도 새 집 주변 Suite 호텔, 즉 주방이 있는 호텔에 거처를 만들었다.


이삿짐은 다 빼서 스토리지에 넣어놨다.


당장 이사간 동네에서 큰애 유치원은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는데, 결국 9일 그 호텔에서 살았다.


다행히도 모기지는 클로징 되고, 새 집에 입주를 시작했다.


뉴저지의 삶.


특히 와이프의 도자기들을 옮기는게 힘들었다. 깨지기도 쉽고, 양도 거의 지하실을 가득 채울 만큼 컸다.


거의 와이프 도자기가 다른 이삿짐 전부랑 양이 비슷했던것 같다.


그걸 새 집 베이스먼트 - 펜실베이니아 집이랑 지금 뉴저지 집이랑 거의 스펙이 같다. 그래서 옮기는게 매우

수월했다 - 에 전 집처럼 내 오피스랑 와이프 작업공간을 만들었다.


전 집이랑 이번 집이랑 거의 한시간 거리다. 그래서 거의 모든 면에서 유사한데, 일단 와보고 보니 다른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인도인들.


전 펜실베이니아 집은 다 백인이였다. 95%. 덕분에 딸냄이 고생좀 했다.


여긴 50%-60% 가 인도인들이다.


아직도 이해가 어려운 인도인들의 특성이랄까. 거의 극단적으로 뭉쳐서 산다.


한 인도인 커뮤니티가 형성이 되면, 그 서법에 입주하는게 인도인들의 인생 목표가 되는듯 하다.


그러니 다른 외국인이나 미국인들이 밀려난다. 집값은 치솟는다. 그리고 집에서 강렬하게 풍기는 카레 냄새.


다행히도, 이 뉴 저지 인도인들은 무지무지하게 똑똑한 사람들이 많고, 소득수준도 높다.


미국 통계상 가장 소득수준이 높은 인종이 인도인이라고 하는데, 미국에서 인도인 비중이 제일 높은 주가 뉴저지이니.


예전에 호주에서 보던 인도인이나, 인도에서 본 현지인들과 정말 많이 다르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우리를 끼워준다. 백인들이랑 다르다. 친절한듯 하지만 밀어내는, 시간이 지날 수록 투명인간화 시키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물론 인도인들도 사람들인지라 좋은사람 나쁜사람 다 있지만.


그래서 이 커뮤니티에서는 대단히 재미있는 현상이 나타난다.


먼저 학교에서, 인도인들을 중심으로 친구 그룹이 만들어진다.


인도인들은 또 신기한게, 자기네들끼리 뭉치는걸 그닥 좋아하지 않는듯 하다. 역설적이게도 꼭 같은 동네에 몰려살려 하면서.


따라서, 우리 아이들은 그냥 인도아이들 몇이랑 친구만 되면 다른 모든 친구 그룹들이 줄줄이 따라오는, 아주 쉬운 위치가 된 것이다.


펜실베이니아에서 흔히 봐 왔던, 경계심 강하고 자기네들끼리만 생태계를 만들려 하는 백인들이 없고, 만만치 않게 비슷한 형태를 띠는 중국인이나 한국인 그룹도 적으니, 역설적으로 인디언들 덕분에 편안한 인간관계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아이들도 좋아하는것 같고.




벼르고 벼려왔던 부동산 투자를 시작했다.


근 3년간 유튜브 비디오를 섭렵했다.


워낙 큰 토픽이라 자세한 내용은 별도로 다룰 예정이다.


2023년이 넘어가던 때, 나이는 50을 바라본다.


언제까지 더 이렇게 일 할 수 있을까.


이때도 밤 8시가 넘어가면 정신이 오락가락 했다.


내 근로소득을 자산소득으로 바꾸기 시작해야 한다.


부동산 리징 비즈니스 처럼 7년 정도에 브레이크이븐이 생기는 경우는 무조건 이른게 좋다.


그런데 캐시플로우가 나오는 부동산이 나오는 지역은 뉴저지 내에서 너무나 찾기 힘들다.


아니면 너무 위험하거나.


이미 펜실베이니아에서도, 여기 뉴 저지에서도 집 보러 다니던 가닥은 충분히 쌓여 있었다.


센트럴 저지의 멀티패밀리 분포 지역을 샅샅히 뒤지기 시작했다.


리얼터도 선택하고, 렌더도 선택하고.


근 1년 넘게 뒤진 끝에 듀플렉스 하나를 찾아 냈다.


좋은 동네는 아니지만 위험하진 않은 조용한 옛날 서법.


유튜브에서는 그렇게 첫 프로퍼티가 설레거나 공포스럽다 하는데, 난 뭐 그런건 딱히 없었던듯 하다.


서치하고, 몇개 찾아서 리얼터에게 보내고, 주말에 만나서 집 보고, 프리어프루벌 받고, 오퍼 넣고, 떨어지고, 반복하기.


이렇게 한채를 2024년 7월에 샀다.


비슷한 과정을 거쳐 2025년 4월에 한채 더 샀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던데, 그럴까?


2026년 3월 1일 현재, 아직까지 모기지 페이먼트 이상으로 렌트 수익이 나온 적이 세번 정도 있다.


월등히 적자다.


감가상각이랑 리페어를 택스 디덕션 하는 것으로 버티고 있다.


게다가 작년 11월에 새로 들인 테넌트가 렌트를 안낸다.


어제 내 프로퍼티 매니저가 에빅션 프로세스 전단계를 시작했다.


돈 버는건 쉽지 않다.


엿튼, 2026년도에는 올랜도 플로리다 근방에 숏텀 렌털, 즉 에어비엔비를 하려 한다.


겨울에 베케이션 홈으로도 쓸려고 한다. 이는 나중에 별도의 문서로 작성하려 한다.




물론, 모든 일이 다 순조로우면 인생이 아닐것이다.


2024년 초.


새로운 CIO가 왔다.


울 회사의 모회사, 아폴로에서 온 사람이다.


문제는, 이 사람이 CIO가 되기 전부터 나름 유명한 사람이였다는 것이다.


악질로.


왜 이 사람을 CIO로 만들었을까.


내 보스는 deputy CIO이니 임시직일 거라고 안심시킨다.


그렇기엔 너무나 직접적으로 태클을 건다.


별것도 아닌것 가지고 끝까지 시비를 건다.


숫자를 0.1% 내외로 맞춰라 한다. 그정도 오차는 의미가 없다.


뭔가 느낌이 쌔 했다. 2년 정도 실적이 안 좋은것은 알았지만. 금리가 오르는걸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그닥

많지 않다.


나는 보스에게 뭔가 잘못됬으니 새 기회를 찾아야할 수 도 있다고 했다. 여러번.

보스는 우리를 자르는게 비용이 더 든다고 안심시킨다. 여러번.


정말 내 보스는 몰랐던 걸까.


10월달이 되니, 보스도 뭔가를 눈치챈듯.


이 CIO가 시비를 거는게 느낌이 다르다. 부당하게 pressure를 줘서 제 풀에 나가게 하려는것 아니였을까.


그 때 법칙을 하나 찾아냈다. 또라이 보존의 법칙.


남녀노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또라이들은 언제 어디서나 일정량 존재한다.


어쩐지 이 회사는 또라이가 너무 없었다.


11월달에 레이오프 통지가 왔다.


우리 팀 전체가 날아갔다.


내 보스는 패닉에 빠졌다.


1998년 병역특례 티오 배정 문제로 잘린 이후, 7개월만에 경영상 문제로 또 잘린 이후, 26년만에 잘려봤다.


이런 저런 일을 겪다보니, 서바이벌 본능이 튀어나와서인지, 10월달 부터 잡서치는 시작했다.


이미 두 회사에서 긍정적으로 진행이 됬다.


11월 말에, 전 회사 일이 끝나기 전에 지금 회사에서 오퍼를 받았다.


다시 한번 새옹지마 케이스랄까.


세버런스 패키지 받고, 한달 놀고, 새해부터 새로운 직장에서 일 시작. 연봉은 만 불 정도 올렸다.


거의 최고의 시나리오였을까.


그럼 새 회사는, 지금 다니고 있는 이 회사는 어떨까.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전 직장이랑.


처음에 출근하던 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으로.


설레거나 그런거 없다. 다만 새 일로 인한 긴장감에 휘말려 있다.


너무나 고생스러운 하루 왕복 네시간 출퇴근길.


그나마 일주일에 두번이라는게 다행이랄까.


뉴욬 대중교통을 이용해 보면, 서울 대중교통이 얼마나 편리하게 잘 발달해 있는지 바로 알 수 있다.


좁고, 지저분하고, 북적거린다.


한번 출퇴근 하면 뉴욬 시티의 온갖 병균은 다 몰고 오는 느낌.


어쨌든.


오피스 매니저, 즉 오피스 탕비나 메인터넌스를 담당하는 여직원을 첫 출근날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다.


간단한 자기 소개를 하자마자 한숨을 푹 쉰다.


뭘까.


60층에 있는 오피스로 간다.


직원들이랑 돌아다니면서 인사를 한다.


그중에 약간 소셜 담당인 듯한 친구가 나를 보더니 또 한숨을 푹 쉰다.


이 회사가 어떤데인지 아냐.. 하더니 말을 흐린다.


뭘까.




내 보스는 정말 나이스하다.


동료 중국 여자는 중국 여자스럽다. 근 20년간 봐온 모든 중국 여직원의 스테레오타입을 그대로 보여준다.


다행이라면, 어느정도 대처방법을 안다는것 정도. 그래도 피곤하다.


엔트리 레벨 팀원도 하나 있는데, 나이지리아에서 온 친구다.


이상할 정도로 이 친구의 얼굴 표정이 어둡다.


그런데, 6개월 정도가 지나간 후, 내 얼굴도 같이 어두워진다.


이상하다. 보스가 갈구지도 않는데,


뭔가 대단히 uneasy, anxious한 느낌.


허공에 주먹질 하는 느낌이랄까.


엿튼, 그냥 한다.




엔트리 레벨 친구가 나갔다.


아무래도 이 중국 여직원이 갈궈서 나간것 같다.


졸지에 이 친구 일을 이 동료랑 나눠서 해야 하는 처지가 됬다.


뭐 할만 하다.


복습하는 셈 치자.


이 회사는 미팅이, 전 회사의 2배가 넘는다.


미팅때문에 일을 하기가 어려운 정도.


뭐 상관없다. 생계는 유지해야지.


대략 이렇게 2001년부터 2026년까지 미국 정착기를 마무리하려 한다. 25년간에 걸친 고난, 극복, 평화, 그리고 반복.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는 형편과 조금씩 늙어가는 몸.


에필로그


유학 시절에는 뉴욬 시티에서 일하는게 당연하게도 꿈이였다.


파크 에비뉴에 몰려있는 투자은행에, 점심시간 즈음에 몰려나오는 직원 들 중 하나가 되는 상상.


혼자 공부하는 유학생에겐, 얼마를 버는지, 얼마를 써야 하는지, 라이프스타일이 어떨지, 뭐 이런건 전혀 감이 없었다.


그냥 최고의 선택을 하면 나머지는 다 좋을거라는 막연한 기대.


16년이 지나갔다.


길고긴 길을 돌아가서, 정신차리고 보니 그때 꿈꿨던 삶이 현실이 되어 있다.


그런데 별로 행복하지도, 뿌듯하지도, 자부심도 없다.


왜일까?



너무 늙었다.


늙음의 무서움이란, 떨어지는 기력도, 어딘가 계속 아픈것도 크지만, 무엇보다도 의욕 상실 아닐까.


하루하루 세상사에서 멀어지는 느낌.


우울증일까.


엿튼, 아이들 독립하려면 14년 남았다.


회사가 좋던 싫던, 내 커리어가 어쨌든, 내 재산이 어쨌든, 난 이미 가족의 일원으로 기능한다.


장대 하나 들고 줄타기 한다.


다행이라면, 지치면 쉴 여유는 있다는 것 정도?


너무 간강이 망가지기 전에 은퇴할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을 것이다.


아빠처럼 가장 고비에 쓰러지지 않았으면 한다.


그래도 생각해 보면 행복한 삶이다.



지금 만약 죽어야 할 때가 온다면, 생각할 것이다.


내 삶은 어땠나.


시간이 갈수록, 삶에서 자아의 비중은 줄어든다.


자기계발이니, 동기부여니, 등등, 식상한다.


삶에서 봉사의 비중은 늘어난다.


아이와 아내에 대한 봉사, 직장에서의 봉사, 커뮤니티, 종교단체, 등등.


결국 그 봉사가 내가 되겠지.


무겁고 복잡하고 차갑고 어두운 내 자아는 점점 스러지고 있다.


좀 더 쉴 여유가 있기를 바랄뿐.


세상의 빛과 소금이 조금이나마 되길 바라는데, 힘든다.


뭐, 엄청난 커리어 기회가 온다면 굳이 말리진 않겠다. 열심히 살겠지.


나이가 들 수록 내 의지대로 되는것은 점점 적어진다.


뻘짓 안하고 자기관리 잘하고 가족이 화목하면 그 다음은 하늘에서 내려주신다. 내 할 일을.


부디 그때 게으르거나 무너져있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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