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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콤S Jan 14. 2020

집도 학교도 다 싫어

무단결석하는 선미

선미는 무단결석을 반복해, 생활지도부의 ‘선도’ 중이었다. 당시 우리 학교에서는 ‘선도’ 중인 학생은 쉬는 시간마다 생활지도부실로 불려갔는데, 딱히 교육적 효과가 없어 보인다고 한다면 나또한 할 말은 없다. 당시 나는 생활지도부의 지도방법에 대해 의견을 낼만한 주제가 못되었다. 게다가 학교에서 이뤄지는 활동에 대한 세상의 비판을 생각하면, 괜한 이야기를 꺼내 별별 일로 무진 고생하는 선생님들을 욕 먹일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학교생활의 백미인 쉬는 시간을 뺏다니!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선미를 쉬는 시간마다 부르는 이유가 있다. 따돌림 당하는 학생뿐 아니라 소년원을 드나드는 일진급 문제아들까지, 학교에서 제일 견디기 힘들다고 호소하는 시간은 수업시간이 아니다. 그렇다면 언제가 가장 힘들까. 내가 만난 학생들 말로는 1등이 급식시간, 2등이 쉬는 시간이며 3등이 교사 없는 자습시간이거나 영화 보는 시간이다. 차라리 선생님이 있는 수업 중에는 끄덕끄덕 졸지언정, 무리 중에 혼자로 묻힐 수 있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다른 친구들과 자연스레 어울리는 게 가장 힘든 것이다.

무단결석으로 친구들과 사귈 기회가 줄어들고, 동급생들의 최근 이슈도 잘 알지 못하는 데다, 문제 있는 아이로 찍힌 다음에는 수업시간 외의 시간이 오히려 고통스럽다고 호소한다. 그런 아이들에게 학교란 끔찍하게 가기 싫은 곳이 분명하다.      


급식시간이면 학생들은 친구들과 줄을 서 수다를 떤다. 식판을 든 아이들은 한껏 즐거워 보인다. 하지만 친구가 없으면 어떨까. ‘같이 밥 먹을 친구도 없으면서 배는 고픈가보네’ 하는 눈치를 견딜 수 없어 차라리 굶는다. 그나마 급식시간은 아예 굶어버리거나 매점에 갈 수 있으니 견딜만 할지도 모르겠다.     

쉬는 시간은 더욱 괴롭다. 친한 아이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노는데 낄 틈이 없다. 잘못 눈을 맞췄다간 ‘꼽 주냐’는 소리를 듣거나, ‘쌩 까서 기분 나쁘다’는 소리나 들으니 엎드려 자는 게 낫다. 혹여 진짜로 잠들었다간 낭패다. 음악실이나 컴퓨터실 이동에 끼워주지 않아 홀로 교실에 남을 수도 있다. 혼자 교실에 남았다간 다른 반에까지 외톨이라는 것이 들켜버린다. 아슬아슬 버티던 아이는 아예 학교에 가지 않는 쪽을 선택한다.      


교사 없는 교실은 없어야 하겠지만, 우리의 학교는 가르치는 일과 학생을 돌보는 것만을 하게 두지 않는다. 다양한 이유로 교사들은 종종 교실을 비운다. 그런 때 자습을 시키거나, 영화를 보여주곤 한다. 필요한 공부를 골라 스스로 파고드는 자습은 꼭 필요한 과정이지만, 학급 분위기에 따라 질이 달라진다.   

영화를 보여주는 경우는 어떨까.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 반감이 크다. 영화 보던 날, 한 학생이 엉엉 울며 내려와 차라리 수업을 하면 좋겠다고 호소했던 것을 기억한다. 영화가 나오는 어두컴컴한 교실에서 아이들이 즐겁게 웃을 때, 더욱 더 처절히 다가오는 외로움의 시간을 견디기 힘들었단다. 보건실로 도망쳐 온 아이는, 있지도 않은 두통을 호소하며 울다가 진짜로 두통이 생겨 약을 먹고 잠이 들었다.

영화는 수업내용과 관련된 일부만을 골라 보여주거나, 상영 후 활동지라도 나누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작권 관련해서도 교실 내에서 통으로 영화를 보여주는 것은 옳지 않다.     


이 정도면 ‘선도’ 중인 학생들을 쉬는 시간마다 생활지도부실로 부르는 이유가 설명 되었을까. 폭력으로 ‘선도’ 중인 아이는 다시 폭력을 저지를 시간을 주지 않고, 다른 아이들로 하여금 학교가 나름의 규칙을 따르고 있음을 알리기 위해서이다. 무단결석 등으로 친구들과 멀어진 아이는, 쉬는 시간의 난감함 대신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학교에 천천히 정을 붙여보라는 마음이다. 손 들고 무릎 꿇고 벌 서는 것은 아니다. 이제 그런 시대는 끝났다.     


선미도 그 마음을 아는 듯 쉬는 시간마다 잘도 내려온다. 교무실에 오면 ‘선미 또 왔어? 다리 아프겠다. 다음 시간에도 또 와. 사탕 하나 줄까? 그동안은 왜 안 왔어? 오랜만에 보니 이뻐졌네. 학교에 나오면 이쁜 얼굴 맨날 볼 수 있을 건데’ 다정하게 대해주는 선생님도 있고, ‘얘가 선미에요? 아이구, 멀쩡해 보이는데 왜 학교를 안와?’ 하며 걱정해주는 선생님도 있다. 물론 학교에 오지 않은 동안 무얼 하고 지냈는지 줄줄이 팔 아프게 적어내게 하는 무서운 생활지도부 선생님도 있다. 나또한 십년간 생활지도부 터줏대감인지라 보건실 봉사를 시킨다며 선미를 데리고 나왔다.     

보건실에서 봉사를 시킨다고 하면 대부분 청소를 떠올리겠지만, 봉사는 무슨 봉사, 시킬 것도 없다. 상점이 필요한 아이들이 청소 좀 시켜달라고 아우성을 쳐도 나 홀로 깔끔이(집에서 가져온 고물 로봇청소기)를 데리고 물청소에 너덧 번을 왔다갔다 분리수거한 지도 오래됐다.     



“닷새나 학교를 빠졌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친구네 집에서 잤어요. 부모님이랑 따로 사는 애에요. 남자친구는 아니에요.”    

“작년에도 무단결석을 여러 번 했던데.”     

“그게.. 담임선생님한테 전화는 했는데, 다 무단으로 처리됐어요.”    

선미가 마른 어깨를 으쓱 치켜 올렸다.     


“이유를 말해줄 수 있겠니?”    

“그냥, 집에 가기 싫어서 그랬어요. 엄마 잔소리가 심해요. 화가 나면 막 두들겨 패고. 근데 뭐 제가 잘못하니까 그러는 거죠.”    

“어떤 잘못?”    

“늦게 들어가는 것 때문에요. 친구들이랑 놀거나 남자친구 만나서 노래방 가거나 그래요.”    


선미의 부모님은 어릴 때 이혼하셨고, 엄마와 같이 사는데 거의 볼 일이 없었다. 어머니는 마트에서 일하신다고 했다. 아침에 눈을 떠도 집에 안 계신 경우가 많고, 하교 후 돌아가도 만나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엄마가 그립지는 않단다. 함께 있으면 짜증나는 경우가 더 많았다고.   

“이번에 5일 동안 집에 안 들어갔잖아요. 엄청 두들겨 맞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엄마가 울더라고요. 왜 이렇게 살이 빠졌냐고, 애가 뼈밖에 안 남았다고..”    

그때 선미의 얼굴에 미안함과 쓸쓸함이 스쳐갔다.       

“집은 재미있어서 가는 게 아니지. 재미가 없어도 당연히 네가 있어야 할 곳이고, 네가 존재하는 이유인 가족이 있는 곳이고,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인데 말이지.. 엄마가 때리시는구나... 때리지 않으시면 좋으련만...”    

“알아요. 속으로는 들어가야지 하는데 행동으로는 잘 안 돼요. 엄마도 보기 싫고.”    

“엄마가 보고 싶었다가 안보고 싶었다가 하겠네. 하지만 선미야, 네가 어른이 되기까지는 어머니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해. 시간이 흐르면 엄마를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생길 거야. 아직은 엄마가 너를 돌봐주셔야 하는데.. 선미가 많이 힘들겠다.”    

선미는 입을 쑥 내민 채 바닥만 쳐다볼 뿐이다.      

1학년 때 이미 결석일이 30일이 넘고, 지각이 90일 가까이 되었다. 학교의 기본적인 규칙을 따르는 게 선미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사실은 자퇴하고 싶어요. 학교도 지긋지긋해요.”     

“학교 안 나오면 그 시간에 뭐하려고?”    

“뭐 알바하겠죠. 제가 잘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사람은 참으로 약하다. 어찌 보면 우리 모두는 무언가에 계속 소속되기 위하여 노력하는 지도 모른다. 만 7세가 되면 누구나 가니까 나도 갔던 학교는 단순히 학습만을 위한 기관이 아니다. 내가 처음으로 가족이 아닌 남과 더불어 공식적인 기관의 일원으로서 안정과 즐거움을 동시에 느끼는 곳이다.  모든 사람에게 소속 기관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시작된 사회화는 늘 우리가 어딘가에 속하기를 바라게 한다. 마침내 소속을 벗어나 당당히 홀로서기까지 하게 이끄는 곳이 학교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학교를 굳이 다니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선미는 씩씩한 아이다. 과연 학교가 모두에게 꼭 필요한 곳인가에 대해서는 자꾸 회의감이 들게 하는 요즘이지만, 그래도 선미에게 나는 학교를 권하고 싶었다.     


“선미 너는 친구관계가 좋잖아. 자퇴를 해도 많은 친구들을 만나게 되겠지만, 학교는 비슷한 나이의 친구들과 최소 3년의 꾸준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게 해주잖니. 집에서도 짜증나고 학교에서도 짜증난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만, 선생님들이 성가시게 해서 차라리 안다니고 싶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만, 나는 네가 조금 더 학교에 다녔으면 좋겠다. 너랑 조금 더 선생님과 제자로 있고 싶어.”    

내 얘기가 조금 먹힌 듯 선미의 눈빛이 흔들렸다.    

“학교에 나오면서도 알바는 할 수 있잖아. 나오기만 해. 어느새 3년은 가 있을 거고 졸업장도 네 손에 있을 거야. 그까짓 것 없어도 살 수 있겠지만, 그래도 선생님은 네가 좀 더 학교에 나왔으면 좋겠다.”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선미의 표정에 망설임과 두려움이 내비쳤다. 선미는 내 말을 끊고 그만 일어나겠다고 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괜한 이야기로 이미 잔소리에는 이골이 난 선미를 더 질리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가장 좋은 관심은 어머니가 아침이라도 챙겨 먹여 학교에 보내주는 것이다. 엄마가 차려준 아침은 짜증내며 거절하고 학교 앞 편의점에서 차가운 삼각김밥이나 사먹겠지만, 그래도 엄마의 관심만이 선미에게는 최선임을 나는 안다. (또한 삼각김밥은 반드시 전자레인지에 데워먹자. 체하면 안 되니까.)

앞으로 선미는 어떻게 될까. 계속 학교에 나와 줄까. 부디 선미가 어려운 결정을 내려 졸업장을 받아주길. 나의 자랑이 되어주고, 고생하는 생활지도부 선생님들의 뿌듯함이 되어주기를 기대해본다.


    

(이 친구는 보건실의 명물. 어찌나 깐깐하고 예민한지 100그램도 놓치지 않아 학생들의 원성을 사는 체중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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