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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콤S Dec 24. 2021

화장실에서 호랑이를 낳은 사람

좋은 선생님이 되어야지

간호대 4학년 정신과 폐쇄병동 실습 때의 일이다.  


월요일 새벽마다 모란시장에서 버스를 타고

산속 깊숙이 들어앉은 정신병원에 들어가서

목요일 저녁에 다시 버스를 타고 나오는 것을

3주간 한다.

이 기간동안 1, 2층 폐쇄병동에서는 환우들이 계시고

우리 실습생들은 3층 숙소에서 자며 일과를 함께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환우분들을 깨워 마당으로 나가

(스걸파에게 부끄럽게도)

우리가 안무한 시시한 아침체조를 하고

이후 식사와 차모임, 작문 모임, 탁구 등을 치며

완전히 일과를 환자분들과 같이 하는 실습이다.


4학년이면 간호사 면허를 위한

국가고시를 봐야 해서 마음이 바쁘다.

국민학교 다닐 때

부모님이 사주시던 전과같은 책을

여러권 쌓아두고 풀고 또 풀어야 된다.

그러나 그런 것은 각자 알아서 하는 것이고,

이상이 높으신 교수님들의 지도에 따라

우리는 3주간 환우 1명을 나의 케이스로 정하고,

그분의 동의를 받아 3주간 그분의 차트를 보고,

그분과 면담하며 치료에 도움을 주기 위한

각자의 간호계획과 기록지를 만들었다.


23살의 내가 케이스로 정했던 분은

28살 남자분이였다.

너무나 순하고 착한 분이셨고,

절대 자신은 여기 올 사람도 아니고

환자도 아니라는 알콜 환자들로부터,

늘 무시당하고 태움당하던 우리 실습생들에게

항상 공손하게 '선생님'이라고 불러주셨다.

상담할 시간이 있으시냐고 물어보면

'네, 선생님' 하고서

두 다리를 가지런히 모으고 내옆에 앉으시는,

모범적인 초등학교 1학년 같은 분이셨다.


실제로 이분은 학력이 낮았다.

초등학교를 미처 졸업하지 못하고,

이후 학교를 다니지 못해,

가족이 운영하는 과일 채소 가게에서 일하다가

결혼한 형은 월급도 많이 가져가고,

가족들과 여행가며 명절에 쉬기도 하는데

늘 혼자이고, 무시당하며

휴일도 없이 적은 임금으로 일하던 중에

증상이 나타나 입원하신 분이셨다.


그 증상이 무엇이었냐면

어느날 화장실에서 응아를 한 뒤,

자신은 호랑이고,

자신의 응아더러 호랑이 새끼라고 하면서

가족들에게

자신이 낳은 호랑이 새끼를 보러 오라고 하고,

담요를 뒤집어 쓰고

어흥! 어흥! 하고 온 집안을 뛰어다녔다고 한다.


나는 호랑이! 에 꽂혔다.

그야말로 프로이드의 교과서에

예시로 나온 것 같은 전형적인 정신분열 케이스였다.

게다가 스스로를 호랑이라며

어흥어흥 가족들을 겁주다가 잡혀오신 이분은

어쩜 이리 선하고 착하단 말인가 말이다.


환자분은

국민학교 저학년 때 준비물을 안가져 간 적이 있었는데

담임선생님이 크게 야단을 치고

친구들 앞에서 망신을 줘서

다음날 학교에 가기가 무서웠다고 한다.

선생님 앞에서 크게 혼이 난 이 분을

친구들도 함부로 대하고 심하게 놀려서

결국 띄엄띄엄 다니다가

더는 학교에 다니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학교에 못간 이 분

가족들마저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것을

오랜 세월 견뎌온 것이었다.

너무너무 외롭고 슬퍼서

스스로 귀하고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욕구가

자신이 호랑이라고 착각하게 하고,

응아마저

호랑이인 자신이 만든 것이니

호랑이 새끼라고 자랑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나또한 국민학교 출신이라,

지금의 상식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이상한 교사를 만난 적이 있다.  

국민학교 4학년 때 남자 담임 선생님은

별 거 아닌 일로 매일 따귀를 때리고,

심지어 짝끼리 마주 따귀를 때리게 하는 분이셨다.

지금도 그분의 이름이 기억나고,

그분이 나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멍충이!'라고 했던

독특한 억양을 기억한다.


물론 좋은 선생님이 더 많으셨고,

그 선생님들의 격려로 지금의 내가 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겪었던

무섭고 나쁜 선생님의 일을

일제 시대 식민교육의 잔재로 생각하고

나 나름으로는 극복하고 해결했다.


그리고 그 바쁘던 대학교 4학년

어느 중학교에서 교생실습 한달을 하며

나는 교사하고는 안맞는구나, 선생은 아니구나 했는데,

지금 교사를 하고 있다.


교사가 되고서

생들이 너무 화나게 할 때면 호랑이를 낳았던

나의 환자분이 생각난다.

예를 들어 엊그제

코로나19 밀접접촉자가 2명이 나온 학급에 들어가

덴탈마스크를 K94 마스크로 바꿔끼자고 했을 때

그냥 엎어져 잘 거니까 바꾸지 않겠다고 화를 내던 학생,

마스크를 바꾸느니 집에 가겠다며

 반 아이들 모두의 앞에서

보건교사 따위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고 함부로 굴던 학생 말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학생을 무안하게 하지는 말아야지.

무슨 일이 있어도

학생이 학교오는 게 무섭게 하지는 말아야지.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어른이고

이 아이는 나의 도움이 필요한 학생이란 것을

잊지 말아야지 한다.


좋은 교사가 되고 싶다.

좋은 교사로서 일할 수 있도록

천지만물이 나를 다 도와줬으면 좋겠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다.

유일하게 수업이 없는 금요일인데

굳이 안들어가도 되는 보강시간을 달라고 해서

1학년 아이들과 성탄카드를 만들었다.

아이들이 기뻐해서 나도 기쁘다.


보건교사로서의 나의 삶은 매우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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