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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콤S Jan 03. 2022

보건실표 아나바다

언제적 아나바다인가

세밑이다.

묵은 해의 마지막날과

날것의 새해 첫날을

올곧이 집에서 보낼 수 있어서 좋았다.

열어보기가 겁나던 서랍들을 열어

버릴 것들은 버렸고,

새 것이지만 쓰지 못했고 쓰지 않을 물건들을 추려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반드시 '새 것'이어야 한다.


막 간호사로 취업해서

어딜가도 신입 티가 날 적에

소아과 병동파티에 초대받은 적이 있다.

소박한 출장음식 몇가지를 갖춰두고

1년 내내 환자, 환자가족들이 전한 선물들과

각종 업체의 홍보물품 등을

내용물이 뭔지 모르게 포장해서

가득 쌓아두고

번호표를 뽑아 나눠갖는 행사였다.

선물이 모자랐는지

아니면 웃으라고 그랬는지

쌓인 중에 제일 좋은 것일 거라 기대하고 고른 선물중에는

옷걸이 같은 것이 나와서

모두의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가장 인기가 있었던 것은

전기면도기였던 듯 하다.


나이로나 실력으로나

늘 주눅들어 병원생활을 하던 나에게

이 파티는 너무나 인상깊고

즐거운 추억이다.


여전히 병원은 각종 리베이트로 욕을 먹기도 하지만

자기앞으로 들어온 꽤 고가의 선물들을

혼자서 덥석 가져가지 않고

일년을 모아 이런 자리를 만든

수간호사 선생님이 너무 대단해 보였다.


솔직히 지금도 무슨 인연으로

중환자실 울보였던 내가

그 자리에 있다가 30롤 화장지를 받아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기억은

보건수업 마지막 시간에 이용하는

고정 레파토리가 되었다.


그리고 코로나19로 원격이 많아진 올해는

보건실 아나바다로 적용해보려 한다.

(아껴쓰고 나눠쓰고 받아쓰고 다쓰고)


이때도 주의사항은 포장을 뜯지않은 '새것일 것'이다.

가정선생님께 얻었던 토끼인형재료와

콘프레이크에 붙어있던 식기세트,

이@아에서 내돈주고 샀지만 3년째 쓰지 않은 선반 등등.


문밖에 내어두고 가져가게 했다.

나혼자 '장사'가 얼마나 될런지 두근대며

문밖 상황을 가늠해본다.

급하게 1사람 1개라는 구절을 추가한다.

내년엔 교실에서 학생들과 같이 하고 싶다.

너희들도 주변 정리를 하다가

안쓰고 있는 새물건이 나오거든

가져오너라 해서 지구를 돌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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