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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콤S Jan 10. 2022

오싱을 아시나요

손이 트는 자들이여, 바셀린을 바르라.

아직 방학을 못했다.

우리 학교는 2월의 어정쩡한 등교와 봄방학을 없앤지

2년이 되었다.

그래서 다른 학교보다 겨울방학의 시작이 늦다.

방학식 당일까지도

보건실은 레디 상태이다.

특성화고라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이들이 많아서일까

손이 터서 오는 아이들이 많다.

그런데 아이들은 '손이 튼다'는 말조차 모르는 듯 하다.

손에 두드러기가 났어요.

손에 습진이 생겼어요.

손이 간지러워요.

손이 이상해요. 한다.

이상하다는 말은 웃음이 나온다.

내가 보니 손이 튼 것이다.

두드러기 아니야,

습진 아니야,

이상한 거 아니야,

손이 '튼거야' 하면

그게 뭐에요? 한다.

이런 손을 여전히 볼 수 있는 것이

이상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웬지 이런 손은,

21세기 아이들의 손은 아닐 것 같아서이다.


초등학교 3-4학년만 되어도 화장에 관심을 갖고,

이것저것 찍어 발라보고,

뷰티 유투브들을 섭렵하며

왠만한 전문가 수준의 미용지식을 가진 경우가 많은 요즘이다.

그런데 얼굴이 곱고 이쁜 우리 아이들의 손은

아이고야,

어릴 적 금성 테레비로 보던 드라마 '오싱'의 손이다.

누런 코가 질질 나와 하얗게 마르고

땟국이 가득한 얼굴에 두줄기 눈물자국이 선명한 오싱.

남의 집 더부살이 중에

한겨울 냇물에 손을 담그고

설거지나 빨래를 하다보니

손이 트고 갈라져 발갛게 되어

호호 불던 장면이 떠오른다.

나중에 커서 동명의 소설이 있는 것을 보고 신기했고,

그것이 또 일본 작품이라서 신기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리고 그 오싱이라는 드라마를 같이 보던

나의 엄마는 엄마 손도 저랬단다.

사람손이 아니었단다.

남의 집 살이를 하면 저렇게 된단다.

손이 거지같아진단다 했다.


나의 엄마는 아홉 살쯤 할머니를 잃고,

네 살쯤 어린 막내삼촌을 포대기로 업고서

깡시골에서 할아버지와 큰삼촌, 작은삼촌의 밥을 해대다가,

그나마도 살림이 어려워져,

읍내 부잣집에 식모살이를 갔다고 하셨다.

열심히 일하면 학교에 보내준다는 말만 믿고,

그저 밥만 얻어먹으며

주인집 언니의 고등학교 하얀 교복을 빨아서

카라에 풀을 먹여 유리창에 붙여두면

그걸 입고 학교에 갈 주인집 언니가

그렇게 부러웠다고 한다.

주인집은 학교에 보내주지 않았고,

우리 엄마는 야학에 다니며 간신히 한글을 떼셨다고 했다.

엄마 친구 중에는 한글도 모르는 사람도 있다며

한글이라도 떼서 얼마나 다행이냐며 뿌듯해 하시다가도

옛날 생각이 나서 서러우면,

그때 주인집이 학교만 보내줬어도... 하면서

눈시울이 붉어지신다.  


나는 엄마에게 정이 많은 편이 아닌데,

사람이 산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내가 돌보는 학생들의 튼 손을 볼 때마다

엄마의 이야기가 떠오르니 말이다.


학생들이 손이 터서 올 때 나의 처방은 바셀린이다.

겨울이면 늘 5cc짜리 연고통에

바셀린을 가득 채워 하나씩 주고,

수시로 바르라고 알려준다.

본보기로 바셀린을 퍼담던 나무막대기로

(tongue pressor라는 멋진 이름이 있다)

튼 손에 꼼꼼히 발라주고,

1회용 비닐장갑을 끼워준다.

그리고 1시간만 참아보라고 말한다.

아마 시키는 대로 2-3일만 하면

마술처럼 부드러워진 자기 손을 보고

보건선생님 최고라고 엄지척을 하게 될 것이다.

큰 바셀린은 겨우 2000원 남짓이다.

두 통이면 우리 학생들 튼 손은 다 고친다.

21세기 소녀들의 손을 만들어 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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