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바는 어디가지 않는다
결핵검진 날이다.
우리나라는 출생후 영유아검진을 하다가 공교육이 시작되면
초1, 초4, 중1, 고1 때 학교건강검진을 제공한다.
그 외의 학생들은 별도검사라고 하여 몇가지 검진을 제공한다.
고2, 3은 소변검사와 결핵검사, 두가지의 별도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결핵은 보통 가난한 나라의 병, 못먹어서 생기는 병으로 생각되지만,
아직도 하루에 2명씩 사망하는 막강한 질환이다.
결핵균은 세포벽이 있는 튼튼한 형태로 존재하는 균이라서
쉽게 사멸하지 않고 오래동안 감염력을 갖는다.
이러한 이유로 집단생활을 하는 학교에서는
결핵, 특히 폐결핵의 집단감염을 막기 위해 사실상 전교생의 X-ray를 찍는 것이다.
간호대학을 막 졸업하고 중환자실에 취업했을 때는
선배 간호사 언니들이 티비다!! 티비!! 하면서 (TB=tuberculosis)
TB 를 갖고 있는 환자가 들어오면 차트 맨 앞에 커다랗게 TB라고 적고 경계하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했었다.
무서운 줄 몰랐다는 말이 더 적절하겠다.
그러나 이제 학교에 근무하면서는 그 '티비'의 파급력을 알기에
단 한명의 학생도 누락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되도록이면 학기초에 검사를 하려고 애쓴다.
어제 미리 수업 중에 학생들을 불러내어 방해가 될 수 있으니
방해받으면 안되는 수행평가나 실습이 있으시면 알려달라고 메세지를 돌렸다.
미처 제 때 보건실에 연락하지 못한 신규 선생님이 공손하게 전화하셔서
1교시에 중간고사 진도를 못나간 반이 있는데
1교시만 피해주시면 안되겠느냐고 간곡히 물으신다.
네 선생님, 그럼요. 조정해드리고 말고죠!
새 선생님의 예의바르고 조심스런 태도가 황송하다.
2008년 서른 셋의 나이로 처음 보건교사가 되었을 때에는
저 결핵차량을 학교 안 운동장에 주차하지도 못하게 했다.
그리고 나는 운동장 주차가 안될거라는 생각을 단 한번도 해보지 못했다.
이미 주차한 차량을 빼서
아이들이 천국의 계단이라고 부르는
계단 밑 학교 밖 정문, 길가에 대라는 행정실의 요구에 매우 황당했다.
이유는 모래운동장이 아니라 방수액을 바른 운동장인데
차량이 들어오면 그 방수칠이 상한다는 것이었고,
가장자리에 대었으니 상관없지 않느냐는 차량기사님과 나의 말이 먹히지 않아
화나신 기사님을 달래어 막상 저멀리 차량을 옮기고 나니
이번에는 검진기계의 전력을 연결할 콘센트가 없어서 쩔쩔 매었다.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계단을 오르내리며 수업시간을 허비하고,
이동 중 넘어져 무릎을 깨기도 하고 발목을 삐기도 하고,
그 환란의 검진날을 어찌나 분한 마음으로 보냈는지 모른다.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싶은 화난 마음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을 보니
나도 참 나다.
중환자실보다 더 나를 '태우던' 행정실장님도
이제는 내가 운동장에 차를 세로로 대던, 가로로 대던 아무 말 없으시다.
학교도 짬바다.
짬바는 어디가지 않나보다.
참고로, 오늘 우리 학생들은 브래지어를 벗어야 된다는 헛소문이 돌아서
벗으라고 한 적 없는 속옷을 벗느라 검사가 많이 지체되었다.
요새는 기계가 좋아서 속옷으로 인한 것인지,
병의 흔적인지를 구분할 수 있기에 학교결핵검진에서는 굳이 속옷을 벗지 않는다.
나는 결국 수업 중인 2, 3학년 전체교실에
속옷을 벗지 않아도 검사를 해주겠노라 우렁우렁 방송을 했다.
짬바가 오래되어도 늘 예상치 못한 상황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