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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콤S Apr 04. 2022

(그레이)아나토미

살려서 돌려다오

개학하고 3번째 보건수업 시간이다.

교과서가 없다고 이전에 징징글을 올렸다.

교과서가 없는 대신

내 마음대로 교육과정을 짤 수 있는 것은 장점이다.

지금은 살래야 살 수 없는

22,000원짜리 소형 해부모형을 산 뒤로

매학기 수업마다 한번씩 꺼내고 있다.


간호대학에 다닐 때도 해부학 수업이 있었다.

당시 OHP로 수업을 하면

최신 교육기자재였고

대학1학년 때 처음으로 16절지가 아닌

A4용지에 레포트를 작성해서 제출했다.

해부학 수업에 최신 교육자재를 도입했다며

교수님들이 엄청 자랑을 하셨던 것이 있었는데.

무려 CD-rom이었다. 


 프로그램은

남녀를 골라 한번 클릭을 할때마다

겉에서부터 한층씩 벗겨지며

인체를 관찰할 수 있는 것이었는데,

첫번 클릭에 겉옷이 벗겨지고,

두번 클릭에 가죽이, 아니 피부가 벗겨지며,

세번 클릭에 근육이, 네번 클릭에 혈관과 신경이,

이런식으로 계속 벗겨지는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젊고 혈기왕성하며

모범생이었던 우리 간호대생들은

마지막엔 뭐가 있나 보자며

마구 클릭질을 해대었는데,

그 마지막에는 깻잎같은 나뭇잎 한장으로

페니스를 가린 남성이 있었다.

(여성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

우리끼리, 이래서 이 프로그램 이름이

 '아담'이구나! 하면서 무진장 던 기억이 난다.

지금과 비교하면 참으로 시시한 교육자재가 아니었나 싶다.


내가 구매한 10cm 남짓한 조립인형은

'아담'에 비하면 꽤나 정교하고,

인체를 잘 반영해서,

차분하게 집중하면

뱃속 장기의 위치나 배치도 살펴볼 수 있다.

다만 견고함이 떨어져서

아이들이 몇 번 조립해보기도 전에

서로의 물림쇠가 부러져

똑바로 세워둘 수 없다는 것이 단점이다.

그래도 여전히 나의 인체수업에 단골 소재이면서,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수업이기도 하다.

캐슈넛같은 위장을 보라.

잘보면 간에 쓸개도 붙어있다.

두개골에서 분리되어 나오는 뇌를 보라.

2엽, 3엽으로 갈라진 폐의 모양도 그렇고,

상행결장, 행결장, 하행결장이

똑부러지게 보이는 것도 그러하다.



이 토르소는 받침까지 포함해서 32개로 분해할 수 있고,

누가누가 제일 먼저 완성하나를 대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수업시간 중에 대회까지 개최하기는 버거워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악 3곡을 틀어주고,

이 노래가 나오는 동안

천천히 조립해서 반납하라고 말해준다.


오늘따라 아이들이 조립을 잘 못하고 있다.

아이들이 완성하지 못한 토르소는

다 내 차지가 된다.


제발 오장육부를 제대로 되돌려

목숨을 붙여서 돌려달라고 호소했지만,

10명 중 4명이 사망상태로 반납되었다.


못살리셨군요. 하자 아이들이 까르르 웃는다.

선생님한테 숙제를 주셨군요, 하자

아이들이 따라와서 조립하겠다고 한다.

아니에요. 제가 살릴게요. 저는 간호사니까요. 하자 아이들이 또 까르르 웃는다.


오늘의 수업이 아이들의 기억에 잘 남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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