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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콤S Jun 21. 2023

나도 프라이버시가 있단다

밥도 먹고 똥도 싸요

오랜만에 화장실까지 쫒아와서

아프다고 하는 아이가 나타났다.

오랜만인 걸 보니,

그간 그런대로 신출귀몰하게 잘 다녔나보다.

아무도 모르게

아무도 찾지 않을 시간을 골라

화장실에 다녀오는 것은

나의 미션이다.


어쩌다 온 아이가 보건실 문을 열었다가

내가 없는 것을 보면

'보건실에 가도 보건샘이 맨날 없어요'라는

억울한 소리를 듣게 되기 때문이다.

무난한 성격이면 좋으련만,

나는 그런 성격이 못된다.

그리고 간호사 면허를 들고 있는

대부분의 보건교사들은

나랑 비슷할 것이다.

그 아이를 찾아서

선생님은 그 시간에

화장실에 있었다고,

급식실에 있었다고,

교감선생님과 있었다고,

회의 중이었다고 해명하고 싶지만,

아이가 남긴 말만 끝끝내 남아

나의 마음에 억울함을 남길 뿐이다.


학생은 수업을 듣고,

교사들은 수업을 하는 시간을 골라

자연이 시키는 일을

잘 해결하고 나왔다고

안심하는 순간,

선생님을 찾아다녔어요.

하고 말하는 아이를 보는 일은

그다지 반갑지 않다.

경험치에 근거하여

대부분 비응급이고,

쉬는 시간에 와도 될 법한 일일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화장실에 갈때도

늘 핸드폰을 지니고 다닌다.

학교 안팎 어디서든

후다닥 일을 보고

다시 보건실로 돌아가는 귀소본능이 있다.

빈자리는 금방 티나는 것이

이 일이다.

게다가 해를 거듭하며

아이들이 약해지고,

다양하고 섬세한 돌봄을 원하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보건실을 비우는 일이

늘 부담이다.


나에게도 프라이버시는 있다.

화장실에서 만난 아이를 보는 순간

큰 비밀을 들킨 것 같아 무안했지만,

예상한 대로 별 일이 아닌 것에

감사한다.


별 일이 아닌 아이들이

별 일이 아닌 것을 알고 편안해지도록

나는 오늘도 내 자리를 지킨다.

응급이 아니면

쉬는 시간에 오라는 잔소리도 잊지 않는다.

오늘도 보건실은 맑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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