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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콤S Sep 25. 2023

-나는 너를 혐오하지 않아-

자연친화적인 학교에 근무하고 있다.

출근해서 노지주차를 하고 나오면

양옆의 아파트가 어색할 정도로

높다란 나무들이 흔들흔들하며 맞이를 한다.


학교에 텃밭이 있다.

나무가 있고,

작은 동산이 있고,

텃밭이 있어 고구마, 감자 등을 기르고 있고,

텃밭을 가꾸느라 들락날락하는 아이들이

먹을 것을 들고 올라가 여기저기 흩트려놓는다.


그러면 뭐가 살까?

온동네 집없는 동물들,

지구가 생길 때부터 있어온 생명들이

우리 학교에 넘쳐난다.


그 중에 생쥐도 있다.

보건실은 1층에 있는데

나는 출근하는 시간에 나보다 먼저 생쥐 한마리가

보건실 문틈으로 슝~하고

출근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당시 1층 교무실들은  

텃밭과 같은 높이라서인지

쥐들의 난입을 자주 관찰하게 되었고,

무심코 서랍을 열어두었던 선생님들은

녀석들에게 잔치상을 제공한 셈이 되었다.


나는 은근히 자신만만하였다.

내가 누군데,

내가 보건교사인데,

나는 서랍열쇠도 꽁꽁 잠그고

늘 소독약을 쓰니까

그놈들은 여기 왔다가도 저절로 나가지

암.. 그렇고말고.. 하며 거만하였다.


그러나 생쥐들은 그야말로 生쥐여서

얼마나 오도방정이었는지

자세히 보니

내 서랍속 믹스도, 쵸코바도

귀퉁이가 조그맣게 쏠아져 있었다.


최신기법을 활용한 여러번의 방역에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자,

행정실은 특단의 조처를 취했다.


전통적인 방식의 생쥐 퇴치를 계획했고,

보건실도 그 대상이 되었다.


나는 정말 원치 않았지만,

어느날 슬프게 찍찍거리는 소리를 들었고,

다행히도 행정실에서 데리고 가셨다.


그리고 어제...

보건실에 새 기기가 들어와서

새 자리배치를 하느라 장을 옮기다가

나는 그만 못 볼 것을 보았다.

당시 행정실에서 놓친 것을 말이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는

어느 성인의 말을 되새기며

나는 용기를 내었다.

(나는 꼭 천국에 갈 것이다.)

그리고 우리 학교 생쥐는

도심 속 하수구를 누비는

더러운 쥐가 아니라고

아주 작고 귀여운 숲속 쥐라고,

운이 나빠 건물 안으로 들어오지만 않았으면

텃밭의 감자나 고구마를 쏠아먹으며

행복하게 살았을 거라고 생각하며

그 못 볼 것을 치웠다.


중환자실에서 일할 때,

모기 한마리라도 나오면,

우리는 시설과에 전화를 했다.

그러면 시설과에서 다 해결해줬다.


학교에서 일할 때 나는

모기는 일도 아니다.

쥐도 내가 잡고 있다.


쥐야 쥐야. 조그맣고 불쌍한 쥐야.

텃밭에 사는 회색쥐야, 콩쥐야.

제발 보건실에는 들어오지 말아라.

영혼이 되어 텃밭의 네 친구들에게 말해줘라.

텃밭이 더 좋다고,

선생님 서랍 속 믹스는 달거나 쓰기만 하다고,

텃밭의 감자고구마가 더 맛있다고 말이다.


많은 합리화와,

용기와,

강력한 비위가 필요한 날이었다.  


- 자신의 한계 이상의 일들을 맞닥뜨렸을

  서이초 선생님,

  대전 용산초 선생님,

  기흥고 선생님,

  호원초 이영승 선생님 외

  많은 선생님들을 추모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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