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우주는 다르다
그런 말을 기억한다. 이 지구 상에 존재하는 생명의 수만큼, 시간의 가능성은 무수하다고. 헤아릴 수 없는 사람의 수만큼 우리는 다른 세계를 각각 살고 있다고. 한 사람의 세계조차, 그 사람의 선택의 숫자만큼 아주 많다고. 내 안엔 내가 너무 많은 것처럼 네 안엔 네가 아주 많다고.
그것을 체감한 건 아주 작은 학급활동이었을지도, 아니면 어릴 적 놀이터였을지도 모른다. 조그맣던 나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놀라웠다. 당연한 사실이 부정당하는 느낌은 신선했고, 조금은 충격적이었다.
내가 보는 세상을 다르게 보는 세상이 있었다. 우리는 각자 똑같이 눈이 있고 코가 있고 입이 있었지만, 각자 다른 것을 보고 다른 향을 맡고 다른 맛을 느꼈기에, 너와 같다고 말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을 해야 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그래야 함께 걸어가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모르는 세상은 많았고, 그들의 선택과 가능성은 무수했다. 예상은 늘 빗나갔고 나와 다른 너를 볼 때 내가 미워졌다.
내가 찾은 방법은 말하기였다. 간혹 ‘나는 그렇다’라고 내뱉는 어떤 말은, ‘너는 그렇지 않다’라는 것을 염두에 둔 말이다. 그 표현을 사용하는 나는, 너의 세계를, 너만이 창조하고 숨 쉬며 살아가는 너의 우주를, 나름대로 존중하고자 함이었고, 나의 우주는 너의 것과 다르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서로에게 간섭과 침해는 말자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말이었고, 그러자는 주문이었다.
우리는 각자 서로의 눈, 코, 입으로 세상을 만져서 서로 다른 우주를 만들었다. 누군가의 우주는 내 것과 너무나 달라서, 멋대로 고치려 들었다간 마음이 데이기 십상이었다. 천천히 창조주의 설명을 듣다 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던 것들이 나름대로 의미 있음이 보이고, 끄덕이는 고개에 이해란 것이 깃들어 갔다. 내 우주가 중요한 만큼 너의 우주도 중요하다는 사실이, 너의 것과 나의 것이 다른 의미로 모두 소중하다는 점을 늘 노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