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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고르 Jan 19. 2022

유튜브 알고리즘은
놀랍도록 멍청하다.

알고리즘에 휘둘리지 않는 현명한 삶


우리는 이제 필요 없는 것들을 더 이상 보지 않는 세상에 살고 있다. TV가 절대권력을 갖고 있을 시절, 미디어는 지금과는 다른 메커니즘이었다. 가령, 리모컨을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뭔가 재밌어 보이는 프로그램을 하면 정착하여 시청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돌려봐도 보고 싶은 게 없으면 아무 프로그램이라도 그냥 봤다. 심지어 부모님이 TV를 장악할 때면 그냥 그분들이 보는 채널을 강제로 시청할 수밖에 없었다. 


공영방송이 가지고 있던 권력은 유튜브라는 플랫폼으로 인해 무너져 내렸고 우리는 구독이라는 버튼을 눌러 각자의 취향에 따른 영상만 볼 수 있게 됐다. TV 채널 수도 많지 않았던 과거와는 달리 이젠 하루에도 수천 개의 영상이 업로드되며 우린 그중에서 알고리즘의 도움을 받아 영상을 고르기만 하면 된다. 검색하지 않아도 알아서 취향저격의 영상을 대령하는 식이다.


우리 엄마보다 나를 잘 아는 알고리즘 덕에 보고 싶은 영상을 힘들이지 않고 찾을 수 있으니 좋다. 하지만 우리에겐 '저급 취향'과 '고급 취향'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난 회를 좋아해서 회먹방 영상을 보고 싶기도 하고 주식을 공부하기 위해 경제 관련 영상을 찾기도 한다. 둘 다 내 취향이긴 하나 회먹방은 오락/킬링타임 용이고 경제공부 영상 시청은 생산적인 활동이다. 쉬고 싶은 맘이라면 재밌는 회먹방을 보겠으나 무인도에 단 하나의 영상을 가져가라고 하면 경제 영상을 가져갈 것이다.


멍청한 알고리즘은 둘 중 어떤 게 더 중요한 취향인지는 구분하지 못한다. 오히려 더 인기 많고 자극적인 회먹방 영상, 즉 '저급 취향' 영상을 피드에 더 띄운다. 그런 영상이 더 인기가 많고 조회 수가 높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제는 우리의 통제력이다. 우린 자극적인 섬네일과 제목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냅다 시청하고 만다. 유튜브를 한 번 키면 어느새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가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비생산적인 영상은 내 인생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단 것을 알고 있다. 문명의 혜택으로 손빨래할 것을 세탁기로 대체하고, 빗자루 잘할 것을 청소기로 대체하여 번 값진 시간들을 이딴 도움도 안 되는 영상들에게 투자하기 싫다. 편리함으로 시간을 벌었으면 최소한 성장에 도움이 되는 행위로 시간을 채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아무런 목적 없는 삶을 살았을 땐 유튜브에 허비하는 시간이 하루 3시간을 넘을 때도 있었다. 당시 알고리즘은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별로 궁금한 게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섬네일과 제목을 보니 괜스레 보고 싶은 영상들이었다. '딱 이것만 보고 그만 보자!'란 의미 없는 다짐을 유발하는 영상들. 하지만 다짐은 무너져 내렸고 영상이 끝난 뒤에 뜨는 연관 동영상을 클릭하고 말았었다. 유튜버들은 죄가 없지만 나의 통제력에는 죄가 있었다.


결국 내 선택은 저급 취향 영상 채널의 구독을 취소하는 것이었다. 아예 눈에 보이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보이지 않으니 유혹당할 일도 없었다. 고급 취향 영상들을 더 많이 보기 시작하니 멍청한 알고리즘은 그제야 관련 영상들을 피드에 더 내놓기 시작했다. 지금은 세상이 나를 아주 힘들게 할 때만 킬링타임용 영상들을 본다. 심지어 그런 영상들로 하여금 위로받는다.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알고리즘이 나의 마음을 정확하게 파악할 때가 올까. 가령 내가 힘들고 지칠 때면 쯔양먹방을 보여주고 평소 같으면 신사임당의 영상을 올려주는 것 말이다. 이 정도 기술이 되기 전까지는 섬네일에 유혹당하지 않을 통제력을 기르는 게 맞다. 시간은 유한하고 하루는 너무 짧다. 글자와는 달리 영상은 시간을 금방 쓰게 한다.


보고 싶은 것을 맘껏 볼 수 있는 세상이다. 하지만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세상이기도 하다. 획일적인 시야를 갖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여전히 쯔양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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