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고르 Jan 18. 2022

귀촌한다고 했더니
장인어른께서 보인 찐 반응

장인어른에게 귀촌 허락받기

"장인어른.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장인/장모님께 귀촌의 결심을 말씀드린 날은 우리 집에서 허락을 받아내고 2개월 후였다. 우리 부모님께 먼저 말씀드린 이유는 집에 대한 일정 비용을 빌려주고 계시기 때문이다. 귀촌을 결심한다 한들, 엄마가 오케이 하지 않으면 우린 신혼부부 대출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분들은 다행히 우리의 생각을 수렴해 주셨고, 이제 장인/장모님께만 말씀드리면 되는데.. 장인어른께서 조금 보수적인 부분이 있으셔서 반대가 심하실까 봐 걱정이 됐다. 뭐, 걱정만 하면 뭐 하나. 부딪혀야지.


"응. 뭔가?"


"저희.. 이번에 전세 계약일 끝나면 창녕으로 귀촌할까 합니다."


두근두근


"창녕으로 아예 이사를 간다는 말인가?"


"네 장인 어른. 저희는 도시보단 시골에서 살고 싶습니다. 어차피 어느 지역을 가던 사회복지사와 간호사가 일할 곳은 있으니까요. 취업은 문제없습니다."


"소희는 직장 다시 얻은지도 얼마 안 됐는데 또 그만둔다고?"


"그만두고 거기 가서 또 구하면 됩니다."


"너희가 거기서 어떻게 적응하겠노.. 시골이 생각만큼 좋진 않을..(중략)"


예상했던 대로 반대 의견을 내시며 우릴 설득하려 하셨다. 하지만 이미 굳게 마음먹은 우리에겐 설득은 당연히 먹히지 않았다. 대신 장인어른께서 걱정하시는 부분에 대해 완곡하게 설명드렸다. 설득과 그에 대한 방어를 한지 30분쯤 됐을까, 우리가 상의를 하러 온 게 아니라 통보하러 왔다는 것을 알아차리셨는지 이내 조용해지신다.


그런데 또 어두워진 표정으로 조용히 앉아있는 분이 계셨으니.. 장모님이다.


"아니 소희는 지금 직장에서 250만 원 넘게 받는다며? 그 직장 아까워서 우짜노?"


"제 생각에는 귀촌을 하게 되면 소희가 50만 원 정도는 더 적게 벌지 몰라도 50만 원의 가치보다 훨씬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


아내가 대답을 잘못할 것 같아서 내가 대신 대답해 드렸는데 술이 들어가서 그런지 아무런 말이나 막 나왔다. 우리보다는 훨씬 현실적이실 어른들에게 '행복'이란 단어로 설득이 됐을지 모르겠다. 앞만 보고 달려가야 하는 시대를 살았을 어른들에게 행복이란 단어는 그냥 빛 좋은 개살구라고 느껴지실까.


"얘네들이 뭐 우리랑 상의하러 왔겠어? 이미 결정을 다하고 통보하러 온 게지. 이제 더 이상 그런 말 해서 불편하게는 만들지 마라"


"어휴.. 난 모르겠다. 너네 알아서 해라"


장인어른께선 이미 이 현실(?)을 받아들이신 것 같고 장모님은 아직 못마땅하신 듯했다. 사실 나라도 내 자식들이 유배되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시골로 이사를 한다고 하면 물음표를 먼저 띄울 것이다. 어른들이 거부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주 마땅하다. 다만 우리를 최대한 이해하실 수 있게끔 최대한 자세하게 설명드려 의문점을 풀어드려야 하는 것이 자식 된 도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자네. 그럼 아예 의령같이 완전 외진 곳에 갈 생각은 없나?"


"네? 하지만 그런 곳엔 저희가 취업할 곳이 있을까요..?"


"자네가 거기서 군수를 한번 도전 해봐."


"네!?"


"푸흐흐흐흐흐흫ㅂ!!!"


"푸릅!!"


"여보!!"


예상에서도 한참을 벗어난 장인어른의 제안에 나와 아내, 그리고 처제, 장모님 모두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진지하게 말한 건데 왜 웃나? 젊은 사람이면 오히려 그런 곳에 가면 기회가 많을 거라네. 누가 아나? 자네가 군수가 될지? 자네는 말발이 센 달변가라서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아."


".....;;"


장인어른의 제안은 농담이 아니었던 거다. 귀촌을 반대하실 줄 알았더니 오히려 더한 시골에 가서 기회를 찾아보라니. 추측하지 못했던 상황이라 더욱 당황스러웠다. 그나저나 나를 달변가라고 하시다니 인정받은 기분이었다. 물론 의령같은 깡촌에 가는 건 힘들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처제 말로는 대화가 끝나고 우리가 나간 뒤에 장인어른께서 우리가 용기 있는 결정을 한 것 같다고 칭찬하셨다고 한다. 이런 말 안 듣는 자식들을 오히려 칭찬하시는 우리 장인어른 클라쓰...


이렇게 해서 우리 부모님과 장인/장모님에게도 귀촌 허락을 다 구할 수 있었다. 두 집안 모두 흔쾌히 가라고 하셨지만 우리 같은 자식들을 두어 참 걱정이 많으시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은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 결국에는 부모님과 우리들에게 더 좋을 것이다. 다 큰 어른이 되어서도 양가 부모님의 눈치를 보며 사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다만 아직까지 금전적인 부분에서 도움을 받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은 부모님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다. 만약 100%우리 돈이었으면 하나도 눈치 보지 않았을 텐데. 어서 돈을 모아 빌린 돈을 갚아드리고 독립할 생각을 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삼성전자 주식에 올인한 날 보고 엄만 거품을 무셨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