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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고르 Jan 23. 2022

지금, 잠시 동안은 돈이 제일 중요해요

결혼 후 달라진 점

지난주 주말, 친한 친구와 오랜만에 펜션에 가서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 이른 오후 4시부터 막걸리에 삼겹살을 먹으며 심도 깊은 얘기를 나누는데..


"옛날에 비해서 우리 참 많이 변하지 않았냐?"


"그런 것 같네. 갈수록 여유도 없어지고 먹고살 궁리하느라 정신이 없는 것 같다."


"어쩔 수 없는 거지."


"그렇긴 한데.. 요즘 고민이 되는 게 내가 이렇게 쉽게 변할 사람이었나 싶어. 20대 때는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겠다면서 앞 뒤안보고 하고 싶은 것만 했는데. 지금은 남들처럼 먹고살기 위해서 사는 것 같아."


"그러게. 나도 공무원 준비 시작하면서 현타 빡시게 올 때 있다. 내가 이럴 때가 맞냐며.."


"나는 절대 남들이 가는 방향은 안 가고 싶었는데. 한번 사는 인생인데 왜 다들 똑같은 인생을 살아가려 하는 건지. 근데 나도 지금은 돈이 제일 우선이네. 돈 되는 것만 하려고 하고 오로지 돈. 돈. 돈."


실제로 친구는 대학교를 졸업한 뒤 글이 쓰고 싶다는 꿈을 꿨었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경제적/시간적 여유가 없어 자연스럽게 그 꿈은 뒷전이 됐다. 최근엔 일을 그만두고 공무원 준비를 시작했고 하루에 10시간 이상 집에서 공부한단다.


나도 얘와 결이 비슷하다. ngo 활동가가 꿈이 었어서 네팔에 봉사활동을 갔다 왔다. 하지만 귀국 후에 사회복지 분야의 뜨거운 맛을 보고 현재는 생계형 복지사로 돈을 벌면서 창업을 준비 중이다. 


"우리도 이제 대중 속에 섞여버렸네. '나는 자연인이다' 프로그램에 나오는 사람처럼 평범하게 살지 않으면서 불안감조차 느끼지 않는 사람은 대단한 것 같아. 어떻게 하면 남과 비교 안 하고 자기 가치관을 쭉 유지할 수 있는 거지?"


무엇이 나에게 만족감을 주는지가 가장 큰 관심사였는데 요즘엔 무엇이 돈이 되는지에 관심이 쏠려있다. 재미있고 보람찬 시간을 보내기보단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활동으로 시간을 보낸다. [카르페디엠 :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 이 문장은 내 옛적 좌우명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삶을 살고 있다. 


왜 그리 줏대 없는 삶을 사냐고 비난할 수 있지만 나도 아무런 근거 없이 삶의 방향키를 돌리진 않았다. 충분한 부를 이뤄야겠다는 생각이 든 이유는 경제적 자유를 위해서다. 월급을 받으면서 사회복지일을 해보니 남을 돕고 살자는 내 가치관이 희석되는 경험을 하면서 결국은 돈이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머니가 텅 비어있으면 자아실현의 욕구도 흔들린다. 경제적 상황에 구애받지 않으면서 자신의 쪼대로 사는 사람들을 보면 이젠 존경스러울 지경이다. 이건 그릇의 크기 차이라고 생각한다. 난 한때 내 그릇이 크다고 한껏 자만한 적이 있고 그에 대한 대가를 치렀다.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내 줏대가 흔들린 이유 중 한 가지는 출산이다. 아내를 깊이 사랑하게 되니 아이가 가지고 싶어졌다. 적어도 아이가 나를 원망하지 않을 만큼 경제적 지원을 해주려면 어느 정도의 재산은 마련해놔야 되지 않겠는가.


노후 걱정은 크게 되지 않는다. 나와 아내는 남과 우리를 비교하면서 자존감을 깎아먹을 만큼 어리석진 않으니까. 하지만 앞으로 태어날 우리의 아이에겐 최선을 다하고 싶다. 아이의 허락도 받지 않고 세상에 태어나게 하는데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낳아놓고 '널 세상에 태어나게 했으니 고마워해야 돼'라는 건 어불성설이다. 출산은 사실 우리의 욕심이지 않은가. 세상은 점점 더 살기 어려워지는 판국에 우리 욕심으로 아이를 낳았으니 말이다.


만약 나라에 아이를 낳으면 안 되는 법칙 같은 게 있다면 판국은 달라질 것이다. 세상이 그렇게 바뀐다면 내 나머지의 인생을 기꺼이 아내와 내가 재밌을 만한 일들로 채우겠다. 가령 읽고 싶은 책들이 가득한 방에서 하루 종일 독서를 하거나 배낭 하나를 메고 다른 나라에 모험을 가는 비 생산적인 일들 말이다.


20대까진 내 멋대로 인생을 살아왔기 때문에 뭔가 제약이 걸린 듯한 지금 이 순간도 나쁘진 않다. 목숨은 단 한 번뿐인데 살아보고 저렇게도 살아봐야 되잖나. 


잠시 어른인 척 하자.  이런다고 죽는 것도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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