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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고르 Jan 30. 2022

귀촌하면 친구 없이 어떻게 살래?

귀촌 리스크

어른들에게 귀촌한다고 밝히면 흔히 듣는 한마디. '연고도 없는 곳 가면 친구 없이 외로워서 어떻게 살래?'다. 친구? 매우 중요하다. 난 친구 없인 못 산다. 지금까지 버스킹부터 동아리 활동까지 꽤 많은 활동을 해왔지만 친구가 많지는 않다. 오죽하면 결혼씩 때 온 친구가 6명밖에 안돼서 단체사진 찍을 때 조금 민망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내 친구들은 정예부대다. 난 20대의 20%를 미국과 네팔에서 보냈고 이렇게 타국에 있는 동안 친구들과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나의 사정을 전부 이해해 주고 끝까지 내 옆에 남아 준 친구가 6명이다. 많이 남지 않았는가? 이 친구들은 내 인생의 동고동락을 함께 해왔다. 진심으로 같이 기뻐하고 같이 슬퍼하고 같이 성장해온 친구들이다. 소중함을 넘어 애틋함까지 느끼는 존재들인 것이다.


내가 타국에 있을 때도 버텨주었던 친구들은 한국에 와서도 나를 별로 만나 주지 않았다(?). 매일 보며 우정을 확인하려는 친구들이 아니다. 특히 우리가 30대가 되고 사회에 완전히 적응을 할 때쯤엔 도무지 친구들을 볼 시간적/정신적 여유가 나지 않았다. 이러니 내가 네팔에 있든 한국에 있든 만나는 횟수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또 친구들이 하나, 둘 결혼하니 분기에 한번 보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더군다나 나는 아내와 있는 시간을 즐기는 타입이기에 더 그런 것 같다. 아내는 배우자이자 제일 친한 친구다. 함께 있는 시간이 좋으니 난 자연스럽게 집돌이가 됐다. 


이런 나를 판단하건대, 귀촌은 적어도 나의 친구 사이엔 크게 영향을 미칠 것 같진 않다. 어른들은 '연고가 없는 곳에 가서...'라며 '연고'라는 어려운 표현을 쓰지만 이제 우리에겐 연고는 중요하지 않다. 우린 이미 인스타나 블로그, 카카오톡을 통해 물리적인 거리를 뛰어넘고 있다. 귀촌이 우정에 해가 된다는 건 내가 모든 SNS를 탈퇴했을 때에 얘기다. 우정에서 중요한 건 지속적인 소통, 공감 등 즉, '연결되는 느낌'일 것이다. 생각해 보면 연고 천지빼까리였던 과거의 사람들보다 우리가 더 소통을 많이 하지 않는가. 매일 손에서 폰을 놓지를 않는데. 과거 인물들은 기껏해야 동전 넣고 공중전화 사용하는 게 소통 방법의 다였지 않겠는가.


더욱이 난 더 미래적인 상상을 한다. 난 현재도 동생과 메타버스 공간에서 보기 시작했다. "영상 통화하면 되지 왜 거기서 봐?"라고 말할 수 있지만, 실제로 해봐야 이 느낌을 안다. 막상 만나보면 전화나 영상통화보다 기술적으로 한 단계 더 앞선 느낌이 난다. 유튜브 플랫폼이 슬금슬금 우리에게 다가왔던 것처럼 메타버스도 어느새 우리의 일상이 되어있을 것이다.


이런 기술적인 진보는 촌 생활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안정감을 준다. 시골에 가면 고립될 것 같단 불안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앞으론 아마 선택지가 생길 것이다. 촌구석의 고립감을 즐기는 사람은 가상공간을 활용할 필요가 없겠지만 나같이 '숲 속의 자본주의자'를 꿈꾸는 사람들은 메타버스에서의 사교를 꾀할 수 있을 것이다.


공간적인 불리함이 없어지니 도시보다 살기 좋은 시골에 오는 사람이 미래엔 더 생기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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