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고르 Feb 06. 2022

너희들 귀촌하면
엄청 불편하다니까?!

귀촌 리스크

"시골 가면 젊은 사람들은 불편해서 못 산다니까!!"


어른들에게 귀촌한다고 밝히면 흔히 듣는 라떼 발언이다. 근데 사실 맞는 말이긴 하다. 시골엔 인프라가 매우 열악하다. 우리가 흔히 이용하는 '인프라'는 무엇을 얘기하는가. 지금 생각나는 것만 언급한다면 편의점, 대형마트, 병원, 백화점, 맛집, 카페, 영화관, 술집, 은행 등이 되겠다. 이 모든 것은 도시에서 태어난 나에겐 주변에 마치 공기처럼 존재하는 것들이었다. 이 편리한 곳들이 없는 삶은 분명 불편할게 뻔하다.


다행히도 나에겐 인프라가 거의 형성되지 않은 곳에서 1년 2개월 산 경험이 있다. 그곳은 바로 네팔이었다. 네팔은 아직 농경문화가 존재하는 곳이며 내가 살았던 지역도 그러했다. 물론 이곳도 구멍가게, 작은 병원, 야채가게 등 기본적인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곳들은 있었다. 하지만 백화점, 카페, 영화관 등 생존 이상(?)의 욕망을 채울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저녁 8시가 되면 온 가게가 문을 닫았고 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야식을 사러 편의점을 갈 수도, 친구와 밤새 술집에서 거나하게 취할 수도 없었다. 


네팔 생활은 그렇게나 지루했다. 하지만 귀국해서 깨닫게 된 건, 당시의 현상은 환경의 문제라기보단 본토에서 오랜 시간 떨어져 있음에 따라 필히 느껴지는 외로움에 기반한 감정이었다는 것이다. 이 경험을 통해 비로소 알 수 있었던 나의 모습은, 난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보다 '누구'와 함께하는지가 더 중요했다는 것이다. 만약 그때 내 옆에 지금의 아내가 있었다면 분명 해외봉사 2년을 꽉 채우고 귀국할 수 있었을 거다(난 외로움을 참지 못하고 조기 귀국했었다). 


아울러 아내와 결혼을 한 후에도 인프라를 사용하지 못하는 환경에 처할 기회는 또 있었다. 코로나.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상황이지만 코로나가 창궐한 이후 집에 있는 시간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밤 9시까지 마실 바에야 술집에는 가지도 않으며 확진이 무서워 영화관에는 가지도 않는다. 어느 핫플레이스를 놀러 가도 사람들이 북적이지 않으니 별로 신나지 않았다. 그래서 최근엔 우린 집 테이블에 앉아 글 쓰는 시간이 많아졌다.


역시 내가 예상했던 가설이 맞아떨어졌다. 가끔 답답함을 호소하지만 코로나로 인한 집돌/순이 생활이 우리에게 썩 맞았던 것이다. 홈플러스를 가지 않아도, 카페를 가지 않아도, 영화관을 가지 않아도 우린 그런대로 재밌게 일상을 보내고 있다. TV와 노트북만 가지고 놀아도 하루를 알차고 생산적이게 보낼 수 있다. 


난 오히려 좀 극단적인 불편함 속에 살아보고 싶은 로망이 있다. 뜨끈하게 방을 데워 바닥에 등을 지지고, 아침에 일어나 마당에 있는 수돗가에서 세수하고, 텃밭에 있는 야채들로 반찬을 만드는 일 등말이다. 사실 이런 불편한 것들은 바쁘지 않은 일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퇴근 후 주식공부를 하지 않아도 된다면 불을 피워 방을 데우면서 멍을 때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이런 일상을 시작했다는 것은 내가 큰 부자가 되어 경제적인 자유를 달성했다는 뜻이겠지.


돈이 되지 않는 것에 얽매여 살아보고 싶다. 내 경험상 돈이 되지 않는 것에 열중할수록 공허함이 채워졌고 자존감은 충만해져 갔다. 하지만 이젠 세상을 지나치게 알아버려 그렇게 하지 못할 상황에 이르렀다. 현실에 부딪혀야 할 때인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므로 지금의 상황 또한 나쁘게 받아들이진 않는다. 모든 사람이 경험하는 거라면, 그게 불가피한 것이라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좋을 것이다.


여러 가지 귀촌 리스크 시리즈를 작성하다 보니 우리가 참 많은 두려움과 맞서 싸웠구나를 깨달았다. 우리도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현실적인 조건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집을 계약한 이상 우린 시골에 던져질 것이고 이제 적응할 일만 남았다. 시골은 우리에게 오라고 손짓하지 않았다. 시골의 삶을 선택한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 중요한 것은 '시골이 어떤 모습일지'가 아닌 '우리가 시골을 어떻게 생각할지'라고 생각한다. 귀촌 후의 삶이 지옥이 될지 천국이 될지는 우리에게 달려있다. 우린 쉽지 않은 결정을 했지만 그렇다고 또 인생의 획을 그을만한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가 주체적으로 진행하는 자그마한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리는 일이다. 


우린 그렇게 성장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할머니, 할아버지께 귀촌한다고 말씀드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