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고르 Feb 07. 2022

내가 사회복지기관을 퇴사할 때 고려했던 6가지 조건

퇴사 희망 체크리스트

내가 퇴사를 결정하기까지는 3~6개월 정도 짧지 않은 시간을 심사숙고한다. 내가 고려하는 조건은 아래와 같다.


1. 사무실에서 내 본모습이 얼마나 드러나는지

2. 일에 보람을 느끼는지

3. 배우고 싶은 동료가 있는지

4. 내가 하루에 몇 번 웃는지

5. 상사가 나를 존중하는지

6. 일이 지나치게 많진 않는지


직장인이 되면 자연스럽게 가면을 쓰게 된다. 이것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기제로 타인으로부터 미움받기 싫어서 나오는 행위이다. 벌거벗은 본모습을 완전히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가족 정도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우린 이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인진 몰라도 사람을 대할 때 상대방이 좋아할 만한 모습을 연기한다. 이것은 직장 생활에 있어서 필수적인 행동이며 가면을 잘 쓰지 못하는 사람을 보면 '예의가 없다', '센스가 없다', '이기적이다' 등의 욕을 먹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직장 생활이 만족스럽고 사무실이 편안하다고 생각되면 저절로 가면의 두께는 얇아지고 본연의 모습이 나오게 된다. '이 정도 내 모습은 드러내도 되겠다'라는 합리적인 판단에 의해 나오는 것으로 나쁜 현상이 아니다. 동료들이 내 모습을 좋아해 준다는 뜻이기도 하고 내가 속내를 드러내 보일 만큼 동료들과 친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면을 쓴다는 건 피곤한 일이다. 8시간 러닝타임으로 직장이란 곳에서 나를 주인공으로 한 연극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고로 가면을 쓴다는 것은 처세술로써 필수지만 안 쓰는 것이 내 정신건강엔 이롭다. 직장을 오래 다녔는데도 가면이 얇아지지 않는다면 그건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평생을 연기하며 살아야 한다니. 소름 돋는다.


일에 보람을 느끼는지 확인하는 작업은 중요하다. 보람은 동기가 되어 지속가능성을 부여한다. 보람 없는 일은 나에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한다. 그냥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회복지 일을 보람 없이 한다는 것은 좀 바보 같은 짓이다. 그 많은 일을 보람도 못 느끼는데 돈도 적게 받으면서 일한다고? 그렇게 기계처럼 일할 거면 차라리 생산직 하면서 돈이라도 많이 버는 게 낫다.


인간은 환경의 동물이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의 영향을 쉽게 받는다. 이것은 단순히 빙시 같은 내 옆 동료가 나를 귀찮게 하거나 못생긴 과장이 나를 못살게 구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주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 상식, 생각의 수준이 나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하루 종일 이들과 같이 대화하고 협업하고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배울 점이 있어 나에게 자극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그곳에서의 성장은 기대할 수 없다. 도리어 나한테 피해 주지 않으면 다행이다. 일례로 첫 직장에서 내 옆에 찌질한 팀장이 앉아있었는데 어느새 나도 그분을 닮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흠칫 놀랐다. 내 수준은 80이라고 했을 때 직장동료의 40밖에 안 되는 수준을 닮아가려 한다면 얼른 직장을 그만둬야 하지 않겠는가.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다. 웃어서 행복한 것이다. 하루하루가 고역이었던 군대에서 내가 증명해낸 명제이다. 당시 웃을 일이 하도 없어서 거울을 보며 매일 웃는 연습을 했었는데 효과가 있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행복감이지만 하루를 버텨내기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근데 직장에서도 이 짓거리를 할 순 없는 노릇이다. 이직이라는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직장을 잘 고르기만 하면 인생이 행복해질 수 있는데 굳이 몇 번 웃을 일도 없는 직장에서 버틸 이유가 있겠는가. 현타오는 짓이긴 하지만 하루에 내가 몇 번 웃는지 횟수를 점검해 보는 건 중요한 일이다. 내가 이 직장에서 얼마나 행복한지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사가 나를 함부로 대하는 건 하루 이틀이 아니다. 입사하는 기관마다 도를 넘는 상사는 항상 있었다. 상사는 상처를 주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걸 이젠 인정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로울 지경이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난 상사가 어느 정도 나를 존중해 주지 않아도 상관없다. 어차피 직장은 그런 곳이니까. 상사의 사고방식과 부하직원의 그것은 다르다. 내가 더 약자이기에 굴복하고 넘어가는 수밖에. 하지만 넘어가는 수준도 딱 내 월급까지 만이다. 내 월급 이상으로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과감하게 그곳을 떠났다. 수준 낮은 상사를 지나치게 이해하려 하는 것도 바보다.


업무량 앞에 장사 없다. 밀려드는 일에 치이다 보면 나를 잃어버린다. 성장을 하려면 잠시 멈춰서 주위를 돌아보고 자기반성해야 한다. 하지만 야근은 자기 검열할 여유시간을 주지 않는다. 일을 많이 하면 일을 잘할 수 있게 되긴 할 것이다. 하지만 단지 일만 잘한다면 저기 파티션 위로 머리만 빼꼼히 보이는 빙시 같은 과장처럼 될  수 있다. '지식'과 '지혜'의 의미가 다르듯, 일을 잘하는 것과 인생을 잘 산다는 건 다르다. 빡센 업무량으로 번아웃이 온 동료들을 보면 느낀다. 일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중요하고 내 삶이 중요한 것이다. 10시간 이상의 고강도 업무를 한다는 것은 내 사람과 내 건강, 내 성장을 포함한 내 삶 전체를 내팽게 치겠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나를 끈기 없는 사람으로 분류할 것이다. 고작 1년도 버티지 않고 4년 동안 4번의 이직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그들에게 이 글을 내밀어 내가 퇴사를 결정하기까지 꽤 치밀하게 분석했다고 말하고 싶다. 이직을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발전이 없는 회사 생활이 문제다. 청년일 때엔 특히 시간을 의미 있게 써야 한다. 내 젊음은 유한해서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지금의 시기를 별 시답지도 않은 기관에서 보내기 싫었다. 그런 기관엔 물론 지금까지 인연을 유지해오고 있는 좋은 동료들도 많았지만 빙시 같은 인간들이 더 많았다. 그런 사람들과 황금 같은 내 시간을 보내기 싫었다. 좋은 사람들과 있어야 좋은 생각을 많이 하게 되니까 말이다. 12월부로 또 퇴사해서 백수가 된 지금, 난 퇴사를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더 나은 삶을 위한 과감한 결정이었으니까.


어쨌든 그렇다.

작가의 이전글 너희들 귀촌하면 엄청 불편하다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