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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고르 Feb 05. 2022

할머니, 할아버지께 귀촌한다고 말씀드렸다.

귀촌 진짜 어렵네

30대 부부가 귀촌을 하기 위해선 주위 사람들에게 자세한 해명을 필요로 한다. 직장도 구하기 힘들고 연고도 없는 시골에 이사를 한다는 건 보통 사람들은 별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보다. 그렇다고 우리가 시골에 사는 로망이 있어서 창녕으로 이사한다고 얘기하면 분명 우릴 치기 어린 어린애로 볼 것이 뻔하다. 아직도 철이 안 들었냐면서 말이다.


우린 그래도 귀촌에 대한 설득을 잘 해온 편이다. 우리 부모님과 장인/장모님에게 귀촌 허락을 기어코 받아냈다. 그 과정이 어려웠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냥 적당하게 현실+이상을 버무려서 만든 이유를 둘러댔고 어른들은 오케이 하셨다. 다음단계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설득하는 것이었다. 아내의 조부모님은 이미 돌아가시고 안 계시지만 난 1년에 두 번 이상 볼 만큼 할아버지, 할머니와 꽤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이분들이 우리의 결정을 반대하신다고 해서 계획을 엎거나 할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걱정은 끼쳐드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집을 방문 드리기 전에 조금 더 세심하게 귀촌의 이유를 준비해 갔다.


그렇게 부산에 있는 외갓집에 도착했고 안부를 여쭙다가 본격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아 참 할아버지. 그거 엄마한테 들으셨죠? 저희 창녕 가기로 한 거요."


"아! 그래. 아니 무슨 일이냐? 창녕이라니?"


"저희가 좀 깊게 고민해 봤어요. 어차피 둘이 벌어봤자 400만 원도 못 벌고 아내는 출산하러 들어가면 제가 혼자 벌어야 하는데 계산기를 아무리 두드려봐도 집 한 채 사는 게 너무 어려울 것 같은 거예요. 아시죠? 청년들 목표는 내집마련이라는거요. "


"그거랑 창녕 가는 거랑 무슨 상관이냐?"


"저희가 시골 아파트 시세를 알아봤는데 세상에 34평짜리가 1억 7천 밖에 안 하는 거예요!"


"1억 7천??"


"네. 할아버지. 부산에 34평짜리가 5~6억하고 서울에는 훨씬 더 비싼 거 아시죠? 우리가 이제 아기 낳고 하면 20평은 넘는 곳에 살아야 될 텐데 도대체 저 돈을 어떻게 모을지 감이 안 잡히는 거예요. 그래서 아예 시골로 내려가서 적당한 아파트에 맘 편하게 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오호... 듣고 보니 그렇네. 아니 그럼 직장은 어떻게 하구?"


이제 거의 다 설득됐다.


"할아버지 아시다시피 제가 사회복지 사고 아내는 간호사잖아요? 어차피 우리 직장은 어느 지역을 가든 구할 수 있어요~ 아픈 사람, 가난한 사람 없는 곳이 어디 있나요??"


"그래도 할아비는 직장을 쉽게 구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어른들에게 귀촌 얘기를 꺼내면 무엇보다 항상 직장을 걱정하신다. 하지만 3년 동안 이직을 5번 경험한 나에게 취직이라는 것이 그리 어려운 것인진 잘 모르겠다. 내가 대기업을 다닌다면 몰라.. 그깟 사회복지 기관 재취직이 어렵진 않을 것이다. 여차하면 난 생산직 같은 커리어를 살리지 않는 직업도 할 각오가 되어있다. 어차피 받는 돈은 똑같기 때문이다.


"걱정 마세요. 이래 봬도 제가 취직엔 자신이 있어서요."


할아버지는 이내 모든 걸 받아들이셨다는 듯 얘기하셨다.


"그래. 뭐 어련히 너희들이 알아서 하겠지. 모쪼록 잘 됐으면 좋겠구나.'"


나는 외갓집에서 '자유로운 영혼'이란 이미지가 형성돼있다. 학창 시절부터 연극 입시를 준비한 적이 있고 막상 사회복지학과에 들어가니 미국이니 네팔이니 해외 생활까지 섭렵한 전적이 있으니 친척들 사이엔 그런 이미지가 박힐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친척/가족들은 이제 내가 무슨 결정을 하든 별 크게 놀라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내가 조금 독특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귀촌 결심은 우리 부부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도 대박 이슈인가 보다. 이렇게까지 설명을 자세하게 드려야 하니 말이다. 이제 외갓집까지 촌밍아웃을 했으니 이제 내 주위 사람들은 다~ 안다. 하도 똑같은 이유를 반복해서 얘기하다 보니 버튼만 누르면 자동적으로 나올 정도다. 이제 내 이웃집 아줌마도 설득할 자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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