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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고르 Feb 14. 2022

난 워라벨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효과적으로 살고 싶다.

내 과거를 돌아보면 때때로 어떤 행동에 대한 원론적인 이유를 궁금해했다.


학창 시절, 늘 상위권을 유지하던 친구들에게 물었다.


"야. 그래서 장래희망이 뭔데?"


"나? 없는데... 아직 생각해 본 적 없어."


"그럼 왜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는데?"


"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이었나 보다. 그렇게 한참 고심하더니


"일단 해놓으면 나중에 도움이 되겠지."


"....."


나는 내 친구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이유에 대해서 궁금했다. 납득할 만한 동기가 있어야 공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에 대해 물었을 뿐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공부한다고 했다. 남들이 다하니까. 어른들이 공부를 잘해야만 한다고 했기 때문에 성적을 잘 받아야 된다고 했다. 꿈이 없더라도 성적을 잘 받아 놓는 건 좋은 전략이라는 데에 지금은 동의한다. 그러나 당시엔 아무런 목적도 없이 주구장창 공부만 해대는 친구들을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커서 어른이 된 지금도 하나의 원론적인 질문을 가슴에 품고 있다.


'일을 하는 동안에도 행복할 순 없을까'


잠자는 시간과 통근시간, 준비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보통 직장인들이 가지는 여유시간은 통상 퇴근 후 5시간 정도라고 생각한다. 워라벨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일하는 8시간을 '버리는 셈'치고 나머지 시간들을 충분히 즐기겠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상당히 비효율적인 생각이다. 일을 하면서 행복할 수만 있다면 하루 전체가 행복해버릴 수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안다. 워라벨이란 단어는 지독한 현실에 찌들어 버린 사람들이 만들어낸 단어다. 존재하는 직장은 대부분 거지 같으니 퇴근 후의 삶이라도 보장받자는 주장이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직장에서의 8시간을 버릴 수 없을 것 같다. 직장이 지옥이라면 퇴근 후의 삶이 아무리 즐겁더라도 인생 전체를 봤을 때 내 인생이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도대체 무슨 방법이 없을까.


'또 그런 생각 하냐.. 불가능하다니까?'


이런 얘기를 친구들에게 늘어놓으면 저렇게 말할게 뻔하다. 하지만 의문을 품고 사는 사람과 체념한 사람과의 차이는 존재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성장하는 동물이다.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당장은 워라벨이 최선일지 몰라도 미래엔 나의 노동시간도 행복하게 보낼 수 있도록 지금부터 준비하고 싶다.


기업과 기관같이 갑과 을이 존재하는 곳에서 일을 할 경우엔 일에 만족할 가능성이 낮아진다고 생각한다. 결국 서로의 이익이 대립할 수밖에 없고 노사갈등은 불행을 만들어 낼 수밖에 없다. 물론 내 동료들 중에서도 만족하면서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열명 중 한 명도 안 됐던 것 같다.


자영업이나 사업, 프리랜서로 일하며 온전한 나의 가치를 활용하여 돈을 버는 방법이 있다. 아직 난 이 분야를 전혀 경험해 보지 않았으므로 확신을 가지진 않지만 적어도 직장인들보단 덜 불행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 시간을 내가 통제할 수 있고 내가 노력한 만큼 성취할 수 있는 일 메커니즘을 원한다. 그리고 성취한 만큼 내가 성장할 수 있는 일은 원한다. 성장은 내게 곧 행복이니까.


내가 미래에 창업을 한다면 최대의 이익을 추구하고자 한다. 나에게 최대의 이익이란 것은 돈뿐만 아니라 돈으로 가치를 매길 수 없는 것도 포함된다. 예를 들어 일정의 경제 수익을 포기하고 운영시간을 줄여 가족에게 시간을 투자한다거나 취미에 시간을 들이는 것이다. 누가 들으면 미친놈이라고 할 것 같다. 하지만 난 적어도 무언갈 포기하면 다른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에 확신한다.


남이 닦아 놓은 길을 걷는 직장인과는 달리 길을 개척해야만 하는 자영업은 나에게 끊임없이 성장의 기회를 줄 것이다. 한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주체적으로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많을 것이고 그것은 결국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자영업은 최소한 내가 노력한 대가를 갑이 가져가지 않고 온전히 내가 가져갈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 대부분의 직장은 노동자가 일한 대가의 대부분을 사업자가 들고 가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불공평하지만 흔한 자본주의의 메커니즘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직장인은 워라벨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담, 난 과감하게 그런 인생을 포기하련다. 다만 창업 자본금이 갖춰질 때까진 현실과 타협하여 사회복지사를 계속할 예정이다.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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