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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고르 Feb 15. 2022

복지센터 퇴사하고 1달 후, 나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요양보호사는 동네 북이다.

"띠리링~ 띠리링~♬"


전화가 왔길래 핸드폰 화면을 보니 신소영(가명) 요양보호사가 떠있었다. 퇴사 후 1달이 지난 지금, 난 현재 지난 9개월간의 지독한 직장 생활이 한 번도 떠오르지 않을 만큼 마음이 안정돼있다. 백수가 되면 늘 깨닫는 거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때의 기억이 점점 흐릿해지고 당시 느꼈던 악감정들이 사그라드는 것 같다. 더욱이 최근 12월 월급이 들어왔는데 대표님이 20만 원을 더 챙겨주셔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떤 요양보호사가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퇴사하고 며칠간 나를 좋아해 주셨던 요양사님들이 아쉽다고 여러 번 전화가 왔었는데 그 이후 처음이다. 이번 전화는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선생님. 신소영 요양사에요. 잘 지내시죠?"


"아... 네. 선생님도 잘 지내셨어요?"


신소영 요양사님은 센터에서도 완벽주의자로 알려져 있을 만큼 일처리가 확실했었다. 근데 왜 전화를 하셨을까.


"네. 다름이 아니고 선생님이랑 같이 일했던 그 여자 선생님 있죠? 그 샘 폰 번호 좀 알려주세요."


"네? 그러니까.. 지금 기관에 근무하고 계시는 그 샘 말씀하시는 거죠?"


요양사님은 화가 나있었다. 사회복지사들은 개인 폰을 쓰지 않고 회사 폰을 쓰기 때문에 요양사님들이 복지사 개인 번호를 알 수 없다. 복지사 개인번호를 묻는 걸 보니 분명 복지사와 개인적으로 해결할 일이 있는 것 같았다.


"흠.. 근데 제가 개인 정보는 알려드릴 수가 없어요. 혹시 어떤 것 때문에 그러세요?"


"선생님.. 들어보세요. 제가 너무 억울해 죽겠어요. 아까 센터장이 저한테 전화해서 얼마나 화를 냈는지..."


내가 근무할 때도 센터장이 요양사에게 지랄하는 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요지는 어떤 문제로 지랄했는가다.


"뭣 때문에 그러셨대요?"


솔직히 좀 귀찮기도 했고 이미 떠난 직장이야기를 듣자니 찜찜하기도 했지만 요양사님이 너무 화가 나 계셔서 들어드리기로 했다.


"아니.. 제가 말이에요... (중략)"


보아하니 최근 사회복지사가 상담을 왔을 때 요양사님이 센터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했나 보다. 사회복지사는 요양사의 불만을 들어드리고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 중재자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아첨 잘하는 사회복지사의 경우 요양사의 불만을 접수하면 곧바로 센터장에게 곧이곧대로 전달해버린다. 그럼 센터장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센터의 불만은 곧 센터장에게 문제가 있다는 소리와 같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요양사의 고충을 진지하게 상담해 드렸었다. 아픈 노인을 케어한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란 것을 공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많이 없었다. 그냥 위로하고 공감해 드렸을 뿐이다. 물론 센터장에겐 상담 내용 중 필요한 내용만 전달했다. 그분 성격을 잘 알았었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상담했던 요양사들은 편하게 나한테 고충을 상담했고 신소영 요양사님도 내가 담당했었다. 내가 퇴사한 후 담당 복지사가 바뀌었을 거고 아마 습관처럼 복지사에게 고충을 말씀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싸바싸바 귀신인 그 복지사샘은 그대로 센터장에게 전달했을 거고. 센터장은 분에 못 이겨서 신소영 요양사에게 전화로 지랄했겠지. 뻔한 스토리다.


"선생님. 근데 이 샘한테 전화하셔서 어떻게 하시려고요?


"난 이런 일 당하면 가만히 못 있겠어요. 전화해서 왜 그랬냐고 물어는 봐야지.."


"근데 선생님.. 아마 그렇게 개인적으로 통화한 내용도 센터장한테 다 전달될 거예요. 그럼 결국 선생님이 또 피해 입으실 거고요."


"그럴까요.. 생각해 보니 그렇네요.. 전화 안 해야겠어요.."


요양사는 슈퍼 을이다. 사회복지사도, 센터장도 이들에겐 갑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꾹꾹 참고 견뎌야 하며 못 견디면 퇴사해야 한다. 기업으로 치면 요양보호사가 센터장에게 돈을 벌어다 주는 건데 말이다. 단지 사업자라는 이유로 센터장은 갑이 될 권력이 생긴다. 반면 요양사는 노동자라는 이유로 이렇게 억울한 일을 당할 수 있는 처지가 되는 거고.


결국 신소영 요양사는 복지사에게 전화하지 않았다. 내가 근무했을 때도 그 여자 복지사는 참 답도 없었다. 주인에 충성을 다하는 개 같은 사람이었다고 나 할까. 아, 욕한 거 아니다. 그저 비유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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