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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고르 Feb 17. 2022

세상은 나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책임소재 분명히 하기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생활을 시작했던 2020~2021년 두 해는 아이러니하게도 내 인생 중 손꼽히는 암흑기였다.


계획했던 부부 워킹홀리데이는 코로나로 인해 무산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 계획은 오히려 우리를 묶어주는 계기가 되어 하나도 아쉽지 않았다. 문제는 내가 사회복지를 계속해야 했다는 것이다. 1년 6개월간 사회복지사 일을 해보니 나와 맞지 않다는 걸 깨달았고 당시 여자친구였던 아내와 직업을 포기하고 좀 더 경험을 쌓자는 의미에서 워킹홀리데이를 꿈꾸었다. 그러나 계획은 좌절되었고 생계를 위해 다른 복지 기관에 취업해야 했다.


운 좋게 몇몇 기관에 합격이 됐고 꾸역꾸역 일을 했다. 하지만 예상대로 이 바닥은 나에게 큰 실망만 주었다. 이직만 4번을 넘게 할 정도로 힘들었다. 패기 있게 입사했다가 어려움에 봉착하여 소진되고 결국 퇴사로 이어지는 패턴이 반복됐다. 사회복지 커리어는 계속 쌓였고 할 줄 아는 건 복지업무밖에 없으니 평생 사회복지사를 해야 함에 좌절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자기 전셋집이 경매로 넘어간다는 통지서가 날아왔다. 우리 삶을 통째로 흔들 정도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아내는 전세 보증금을 잃을까 봐 매일 밤을 눈물로 지새웠다. 당시 아내는 공무원 준비를 하고 있었고 난 주간보호 센터에 다니고 있었는데 이런 일이 터지니 각자의 삶에 집중하지 못할 정도로 힘들었다. 


결과적으로 경매사건은 해결되었으나 악재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내 허리가 이상한 방향으로 틀어지더니 급기야 통증에 못 이겨 털썩 쓰러졌었다. 구급차에 실려갔다. 병원에선 허리 협착증이라고 진단했고 평생 관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앉아있는 것도 너무 아파서 움직이질 못했다. 그 뒤에도 내 허리는 직장 일에 큰 영향을 미칠 정도로 계속 말썽을 부렸다. 


세상을 원망하게 되더라. 열심히 산다고 살았지만 도무지 세상이 우릴 도와주지 않는다고. 어떻게 한 번에 나쁜 일이 겹칠 수 있냐고. 눈앞 어둠을 아무리 뒤적거려봐도 희망이란 단어는 보이지 않았고 나와 아내는 영적으로 말라갔다. 부정적인 생각들로 하루를 보냈고 뭘 노력해도 어차피 안된다는 회의주의적인 태도로 변해갔다.


그러다 아내가 공무원 시험에 끝내 불합격하고 만다. 하지만 웬걸, 아내는 몰라도 난 덤덤했다. 수많은 악재를 버텨내면서 내가 단단해진 걸까. 생각해 보면 굴곡이 있을 때마다 나와 아내는 머릴 맞대고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냈고, 극복해 내고 버텼다. 그 과정 속에서 난 점점 더 어른이 되어간 것 같다. 


'걱정의 80%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란 말이 있다. 난 지난 경험에 의해 이 문장이 일리가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 뒤로는 매사에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걱정할 시간에 어떻게 해결할지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다. 


머리는 더 냉철해진 것 같다. 따지고 보면 세상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요구한 적이 없으니 아무런 대가도 줄 필요가 없었다. 결국 나의 선택에 의해 벌어진 사건들이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책임을 내가 아닌 세상에다가 씌우려 했다. 그 책임이 너무 버거워서 그랬던 것 같다. 온전히 내가 책임을 질 때 비로소 해결 방법들이 떠올랐다. 나에게 문제가 있으니 해결 방법은 나에게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난 아마 세상 탓을 할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비합리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의 멘탈은 딱 거기까지였던 것 같다. 우리 부부가 최종적으로 귀촌을 결심하기까지 난관을 극복할 수 있었던 건 분명 과거의 경험으로 길러진 힘 덕분일 것이다. 이런 스펙터클한 인생 곡선이 나쁘지만은 않다. 오히려 성장의 기회를 주니 기쁘달까.


우린 앞으로도 결코 완만한 인생곡선을 타지 않을 것이다. 남들과는 조금은 다른 삶의 방향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다할 수 있다면 설령 또 큰 악재가 닥쳐도 그 시기는 오히려 성장기회가 될 것이다. 성공도 실패도 정훈과 소희의 삶이 일부분일 뿐이다. 


아무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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