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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고르 Feb 18. 2022

내가 세속적인 모습으로 변했다는 말을 들을 때

말 한마디가 뼈를 찌를 때

"너 많이 변했어. 언제부터였지.. 아마 네팔에서 귀국했을 때부터였을걸?"


친구들은 날보고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앞뒤 안 가리고 해와서 그런지 친구들에게 나의 이미지는 '이상주의자' 혹은 '몽상가'로 비쳤다. 친구들이 취업 준비나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할 때 난 버스킹과 동아리 운영에 빠져있었고 졸업 후 다들 취직 준비할 때 난 배낭 하나 메고 네팔 해외봉사차 비행기에 올라탔다. 그러니 내 이미지가 그렇게 된 것에 별다른 이견은 없다.


내가 변했단 소릴 듣는 것에도 충분히 그럴만하다고 생각한다. 향수병으로 개고생 하다가 반 죽음 상태로 네팔에서 귀국한 후 인생은 쉽지 않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내 인생에 첫 번째 실패였다. 실패는 곧 자존감 하락과 정신적인 병으로 이어졌다. 발버둥쳐서 이 시기를 극복한 후엔 겸손과 조심성을 겸비하게 됐다. 더불어, 보통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돈, 명예, 안정성 등)에 너무나 무심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난날들을 되돌아보면 나자신이 특별하다는 근거 없는 오만함을 가지고 보통의 삶을 사는 사람들을 손가락질했던 것 같다. 이에 대한 대가는 무시무시했다.


직장에 다니게 된 후 부모님 품을 벗어나 독립하니 비로소 현실이 들이닥쳤다. 먹고사는 문제가 살결에 와닿았다. 그러다 결혼까지 하게 되니 내 관심은 오로지 돈으로 쏠렸다.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선 경제적인 뒷받침이 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걸 알게 됐다. 그때부터 경제적 미래 설계과 투자 공부에 진지하게 파고들었다. 관심사가 변하니 친구들과의 대화 주제도 그쪽으로 쏠렸다. 이후 친구들은 내가 변했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곤 최근에 깨달았다. 나는 이상적인 사람인 게 아니라 당시의 관심사에 대해 끊임없이 파고드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변한 게 아니었다. 변한 건 단지 내 관심사였다. 난 단지 현재의 상황에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이었다. 비로소 안도감이 들었다. 변했다는 소릴 듣는 건 유쾌하지 않다. 그 소린 마치 나란 사람이 아예 세속적으로 변했다는 말로 들렸다. 그때마다 꽤나 억울했다. 난 단지 단계를 밟아나갈 뿐이다. 하루 종일 먹고살 궁리를 하는 한 자아실현이란 건 이룰 수 없는 낭만적인 가치다. 그래서 경제적인 안정이 첫 번째 단계라고 생각한다.


난 그릇이 작다.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원 없이 할 수 있단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것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에서 비롯된다. 그 두려움과 걱정을 극복할 수 없어서 첫 번째 단계부터 나아가려 한다. 하지만 괜찮다. 일반 사람들도 다 나와 같을 거니까. 대부분이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쉽게 극복하지 못한다. 나도 그럴 뿐이다. 단지, 난 그런 사람들이 부럽다.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나름의 가치를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용기 있는 사람들 말이다. 존경스럽다.


물질적인 것, 세속적인 것과 나와 아내가 이상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것을 적당히 버무리고자 한다. 끊임없이 현실과 타협했으면 귀촌도 결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귀촌 후에도 자본주의자의 모습을 잃지 않으려 한다. 나에게 큰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다. 


과거에 비해 바뀐 내 모습이 잠시나마 싫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난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지금, 난 다시 나를 사랑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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