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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고르 Feb 19. 2022

나는 그것을 '바보비용'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실용과 효율이 결국 정답일까


"난 형이 참 방탕하다고 생각했다?"


최근에 만난 친한 동생이 이렇게 말했다.


"방탕?"


"응. 형 4학년 때 다들 취업 준비한다고 생고생하는데 형은 독서모임이니, 버스킹이니, 동아리 회장이니 따지고 보면 실용적이지 않은 거에 시간 투자했잖아. 그냥 노는 것처럼 보였어. 그런 모습 보고 난 형은 왜 걱정이란 걸 안 하지?라고 생각했었거든."


일리 있는 말이다. 난 결코 게으른 인생을 살진 않았지만 당시 나이대에 마땅히 시간 투자를 해야만 하는 영역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취업 준비나 미래설계를 아예 신경 쓰지 않은 건 아니었다. 취업을 해서 사회인이 되면 그때부터는 다른 것에 눈을 돌리지 못할 만큼 바빠진다는 것을 예측했기에 그전에 색다른 경험이라도 쌓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난 내 취미를 좀 더 확장시키고 싶어 했고 철학 스터디나 동아리 운영, 버스킹 등에 한껏 빠져 보냈다. 그때가 대학교 4학년이었다.


"근데 그거 내가 오해한 거더라. 형 지금 모습 보면 그때 경험한 것들이 다 도움이 돼 보인다고 해야 하나.."

순간 내가 과거에 시도했던 모든 영역들이 떠올랐다. 고교 시절 발을 담갔던 연극, 통기타 동아리, 시사 연구 동아리, 철학 스터디, 복싱, 네팔 해외봉사 등등.. 이 경험들은 어찌 보면 인생을 비효율 적으로 살아왔다고 말해주고 있다. 남들 공부하고 자격증 따는 시간에 했던 일들이니 말이다. 이 경험들이 딱히 지금 도움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가장 큰 예로, 난 긴 시간 음악을 해왔지만 지금은 하등 쓸모없는 능력이 돼버렸다.


당시에 이것들이 미래에 요긴하게 쓰일 거라고 예상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관심이 생겨서 시도했을 뿐이다. 내 주변 사람들은 다 비슷한 길을 걷고 있었다. 하지만 그 나이대에만 즐길 수 있는 방대한 자유를 그렇게 쓰긴 싫었다. 세상에 대한 반항심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이런 실용적이지 않은 시간 투자를 '바보 비용'이라고 칭하기로 하자. 어쩌면 시간을 낭비했던 것일 수 있으니까. 내가 남들보다 바보 비용을 많이 지불했다는 것을 깨달은 건 최근이었다. 직장 동료나 친구들과 대화를 통해 난 유독 과거에 방황을 많이 했고, 시도를 많이 했고, 그들보다 할 줄 아는 취미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 번씩 그런 생각도 한다. 바보 비용에 쏟았던 내 시간과 노력을 공무원 시험 준비나 투자 공부에 쏟았으면 어땠을까. 그럼 현재의 생활이 많이 달라졌을까. 당시 현재가 아니라 미래에 투자했다면 지금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었을까. 후회에 가까운 생각들이다. 불과 2년 전 어떤 사건으로 깊은 좌절을 겪었을 때 강한 회의감과 함께 이런 후회가 찾아왔었다.


자본주의 측면에서 바보 비용은 실용적인 시간 투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바보 비용은 나에게 기회와 지혜를 줬다. 버스킹을 경험한 덕분에 네팔에서 현지 버스킹을 할 수 있었고 버스킹은 귀국 후에도 이어져 지금의 아내를 만났던 기회가 됐다. 네팔에서 살았던 바보 비용을 통해 시골에서 살고 싶은 낭만을 품었고 그것은 현재 귀촌으로 이어졌다.


그밖에도 바보 비용은 인생 구석구석에 녹아 역할을 다하고 있다. 신혼 2년 동안에도 참 많은 바보 비용을 지불했다. 성우학원, 베이킹 학원도 다녀보고 책 낭독 유튜브도 시도해 봤다. 지금은 모두 다 그만둔 상태이다. 언젠간 요긴하게 쓰일 경험 들일 테다. 지금은 바보 비용에 투자할 시간이 좀 아깝게 느껴진다. 어른이 돼가면서 자연스럽게 생각이 변한 것 같다. 오히려 다행이다. 내가 어른이 되기 전에 남들보다 다양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경제적인 여유가 일정만큼 생겼을 때 바보 비용을 지불할 수 있을 것 같다. 


잠시만 어른 인척 하고 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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