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님'이 오신다.
아무것도 안 하고 놀아만 본 적이 있는가? 난 대학교 때 정말 후회 없이 놀았다. 대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각종 과모임에 참석하여 미친 듯이 술을 마셨고 통기타 동아리에 들어가셔도 술독에 빠져살았다. 그렇게 매일을 친구들과 함께 답도 없이 놀기만 하던 나날도 잠시, 마침내 그 님이 오셨다.
'공허함'
몇 주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놀기만 하면 공허함이 찾아온다. 친구와 만나서 즐겁게 떠들면 재밌고 시간도 잘 간다. 하지만 그 다음날이 되면 왠지 모를 찝찝함과 공허함이 찾아왔고 기분이 다운됐다. 나만 그런지 주위 친구들을 관찰하니, 정말 나만 그랬다. 친구들은 놀아도 놀아도 재밌다며 몇 날 며칠을 계속 그렇게 보냈다. 하지만 난 이내 좀 더 고급 쾌락을 위해 친구들로부터 과감하게 떠났다.
나는 잊을만하면 찾아오시는 '공허함의 신(이하 공신)'을 이젠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공신이 찾아오면 인생을 헛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좋아하던 술도 끊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시작했다. 당시 주변인들이 다 공부하던 각종 스펙들도 하나도 안 했다. 스펙은 나에게 필요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허함을 채울 재밌는 것들은 무궁무진했다. 음악, 철학, 요리, 시사경제 등 재밌는 것들로 내 공허함을 채워나갔다.
공신은 그 밖에도 다양한 상황에 찾아오셨다. 나답지 않은 인생을 살때 말이다. 사회복지사 일을 했을 땐 거의 자기 집 드나들듯이 나에게 찾아왔다.
'가짜 사회복지사야. 아니야. 그렇게 사는 건 너답게 사는 게 아니야.'
사회복지사를 하는 3년 동안 주기적으로 찾아와 나에게 자극을 줬다. 그때마다 이 현장에서 꾸준히 버티기만 하면 가슴 텅 비어있는 곳에 어떤 것이 채워질 거라며 나 자신을 다독이고 그렇게 버텼다. 하지만 공신은 그게 자꾸 아니라고 했다. 계속 다른 길로 나아가라고 나를 부추겼다. 공신은 정말 나를 힘들게 했다. 일을 지속하지 못하게 했다.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으면 공신이 찾아온다. 결과적으로 공신은 나를 쉬지 못하게 하며 무언가를 계속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태생적으로 게으른 삶을 살 수 없는 사람이다. 그렇게 난 무언가를 성취하고, 배우고, 성장하는 것이 나다운 것이 됐다.
공허함을 느끼는 것. 그것은 나에게 큰 능력이다. 나는 공허함을 느끼지 않으려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산다. 있는 힘껏, 마치 내일이 오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쉬지 않는 건 아니다. 오히려 언젠가는 공신이 오리란 걸 믿기 때문에 쉴 때면 푹 쉰다.
어떤가? 내 능력이 부럽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