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감성적일 때가 필요해
난 남자긴 하지만 한때 드라마 광이었을 정도로 수백 편의 드라마를 섭렵했었다. 아마 여자들이 로맨틱 드라마를 보면서 느끼는 간질간질한 감정들을 나도 똑같이 느꼈던 것 같다. 로코 장르뿐만 아니라 잔잔하지만 교훈적인 '눈이 부시게'같은 드라마도 좋아했다. 이런 드라마를 보면서 가끔 울기도 하는데, 운다는 행위가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것일까. 한바탕 눈물을 흘리고 나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실용병'.
난 실용병에 걸렸다. 실용적이고 생산적이지 않은 영역에 시간 투자하는 것이 왠지 낭비처럼 느껴진다. 이는 내가 본격적으로 돈을 벌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난 뒤부터 시작됐다. 내 유튜브 알고리즘에는 온갖 정보성 콘텐츠들만 난무한다. 책은 인문학이나 소설책엔 손대지 않고 경제와 투자 책들만 사서 읽는다. 문제는 TV 시청에서도 발견됐다. 감정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드라마와 다큐멘터리를 봐도 더 이상 집중이 안 되는 것이다.
'하.. 내가 남의 스토리를 왜 보고 있는 거지?'
'어차피 내용도 뻔하게 흘러갈 텐데...'
'이거 볼 시간에 투자 공부라도 더할까..'
새 드라마를 본 지 30분도 안 돼서 잡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휘저었다. 넷플릭스 순위권에 들어가 있는 드라마여서 내용의 재미는 보장이 돼있다고 생각했지만 저런 잡생각 때문에 계속 시청하기 어려웠다. 로맨스 드라마여서 그런가 싶어 스릴러 드라마를 시청해 보려 노력해 봤지만 여전히 집중되지 않았다.
7년 전 MBTI를 검사하고 교수님이랑 상담을 하는데 이런 말씀을 하셨다.
"흠.. 넌 관심 있는 분야에 추진력과 실행력이 있지만, 이거 자칫하면 시야가 좁아질 수도 있다? 다른 덴 관심 없고 그것만 죽어라 파는 그런 성격으로 나왔네"
내 성격은 약간 극단적이었다. 관심 있는 분야라면 누구보다 학구적으로 파고드는 성격이지만 대신 다른 영역엔 관심을 끊어버렸다. 굉장히 위험한 성격이라고 생각했다. 내 과거를 돌아보니 정말 그랬던 것이다. 예를 들어 고등학교 때 연극인이 되고 싶었는데 연극부 활동을 제외하곤 정말 아무것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래서 성적이 바닥을 쳤었지.
이게 생각대로 되면 좋을 텐데 말이다. 분명 드라마와 다큐가 내 감성을 풍부하게 만들어주고 심신 안정에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집중이 잘 안 된다. 보고 싶어도 잘 안 봐지는 것이다. 1화를 다 보는데도 1주일이 걸렸다. 이렇게 억지로 봐야 하나 싶다. 유튜브를 켜서 투자 공부를 했다. 1시간이 훌쩍 간다.
이놈의 성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