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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야 Nov 08. 2019

집착적으로 틀어놓자

제2장 `하루 공부의 힘`을 믿는다 <영어>

한국어를 절대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환경에서 영어를 친숙하게 만드는 방법은 `닥치고 노출`밖에는 없다. 내가 퇴근 후 아이와 함께 15~25분간 영어 공부를 하는 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일단 나는 집안에 영어 듣기 환경을 조성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전까진 `애가 한글도 제대로 모르는데 무슨 영어야`라는 핑계거리가 있었으나 이제 어느 정도 한글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이런 핑계를 댈 수는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왜 나는 미리 영어 듣기 환경을 마련해주지 않았을까’라는 후회가 컸다. 한글을 알든 모르든 그냥 놀이처럼, 음악처럼 틀어놓을 것을 말이다. 


문제는 하루 종일 아이와 같이 있지 못하는 데 언제 어떻게 영어를 자주 노출시킬 수 있을까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아이가 자고 있는 이른 아침 출근했다. 퇴근 후에는 아이의 얼굴을 볼 수 있었지만 잠을 잘 때까지 두 세 시간이 전부였다. 더구나 평일 퇴근한 후에 아이와 공부를 하기도 바쁜데 영어를 들으라고까지 강요할 수는 없었다. 나로서는 아이에게 미안한 일이었다. 


아이가 언제 영어를 들을 수 있을까. 가장 좋은 시간은 아침 시간이다. 아침에 일어나 유치원이나 초등학교를 갈 준비를 하는 동안에 영어 듣기가 가능했다. 이 시간은 생각보다 길었다. 보통의 아이가 그렇듯이 엄청 꼼지락거린다. 세수하고 밥 먹고 옷 입고 머리를 묶고 양치질을 하는 등 일련의 준비 과정이 길다. 1시간 이상이었다. 물론 아이가 언제 일어나느냐에 달려있지만 말이다. 아이가 세수를 하고 밥을 먹고 옷을 입고 머리를 빗는 시간은 최소 30분 이상 필요했다. 그러면 30분에서 1시간 이상의 시간이 확보된다. 


아이의 유치원 등원, 하원 준비를 주로 어머님이 해주셨기 때문에 아이가 영어 듣기를 하려면 어머님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 전까지 아이는 할머니와 유치원 갈 준비를 하면서 TV만화를 본 듯 했다. 그러나 이 시간을 놓치기가 너무 아까웠다. TV 만화 대신 영어로 된 DVD를 보게 했다. 사실 유치원 가느라 세수하고 밥 먹고 옷 입기도 바쁜데 뭘 보게 하는 것은 적당하지 않았다. 그래서 보지 않고 듣도록 유도했다. 그냥 흘려듣는 것이다. 나는 어머님께 아이가 아침 시간에 영어를 듣게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머님이 영어 CD를 트는 게 아니라 아이가 직접 틀게 했다. 영어 듣기를 어머님의 숙제로 드릴 수는 없었다. 아이도 충분히 할 수 있기 때문에 아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인식시켰다. 아이가 영어 듣기를 까먹지 않도록 집 안 곳곳에 `아침마다 영어 듣기` 등의 문구를 여러 곳에 붙여놨다. 하지만 실제로 듣는지 안 듣는지는 확인하기 어려웠다. 퇴근 후 아이에게 물어봐서 영어를 들었다고 하면 칭찬스티커를 많이 붙여주는 식이었다. 


아침 시간에 영어를 못 들었다면 하원 후에 영어를 듣도록 유도했다. 아이의 노력과 엄마의 보상, 관심이 이어지자 어머님도 같이 영어 듣기를 위해 노력해주셨다. 아침에 깜빡하고 못 들었다면 하원 후에 듣도록 해주셨다. 이런 방식이 정착된 이후에 내가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면 영어 소리가 흘러나왔다. 영어 듣기는 육아조력자의 도움이 절대적이다. 


내가 있는 주말에는 영어를 더 적극적으로 틀어줬다. 유치원에서 내준 CD, 영어 센터에서 준 CD 등 어느 것이든 상관없이 틀었다. 말 그대로 주구장창, 집착적으로 틀어댔다. 5분이라도 틈이 있으면 영어를 틀었다. 특히 아이가 샤워할 때 효과적이다. 아이는 가끔 노래를 부르면서 혼자 샤워를 하는데 영어를 틀어놓으면 아이 스스로 거부감 없이 영어를 따라 부르면서 샤워를 했다.


그러나 사실 등원이나 하원 후에 영어를 듣는 시간만으로는 부족했다. 하루에 못 해도 2시간 이상 영어를 듣는 환경을 만들고 싶었다. 물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 그래서 아이가 즐거워하면서 영어를 노출시키는 방법을 생각했다. 한글 더빙 말고 영어로 말하는 디즈니 영화를 보게 했다. 영화 한 편을 보는데 한 시간 반 정도 걸리기 때문에 영어 노출 시간은 충분히 확보된 셈이었다. 디즈니 영화가 아니라면 넷플릭스를 활용하는 것도 좋다. 넷플릭스에 있는 아이가 보는 미국 드라마 등은 30분 이내에서 끝이 났다. 그것을 여러 편 보게 하는 방식을 활용했다. 넷플릭스가 좋은 이유는 한글 자막, 영어 자막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아이도 좋아했다. 


넷플릭스나 디즈니 영화 등을 영어로 보게끔 하는 게 먹히려면 일단 아이에게 한글로 말하는 유튜브 영상들을 최대한 차단해야 한다. 유튜브의 짧고 간편하면서 한글로 말하는 영상에 빠지게 되면 넷플릭스나 디즈니 영화 등을 봤을 때 아이의 만족감이 떨어진다. 예컨대 “이거 다 하면 넷플릭스 보게 해줄게”라고 했을 때 “와 좋아”란 반응이 안 나오게 되는 것이다. 영상물 노출이 계속 없다가 넷플릭스라는 대안이 제시됐을 때 효과적이다. 유튜브의 짧은 한글 영상이 아이에게 놀잇거리, 위안거리가 됐다면 넷플릭스를 통해 영어로 말하는 TV프로그램은 이제 더 이상 관심을 끌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방식이든 나는 아이와 있을 때 책을 보거나 공부를 하는 게 아닌 이상 무조건 영어를 틀었다. 하루 평균 꼭 2시간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계속해서 집착적으로 틀어대는 것, 생활습관으로 자리 잡게 하는 것이 중요했다. 1만 시간의 법칙을 믿어보기로 한 것이다. 


7살 겨울쯤에서야 아이는 영어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진 듯 했다. `영어를 잘 하고 싶다`고 했고 영어가 재미있다고 했다. 옛날에는 영어로 된 유튜브 동영상이나 영화도 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당시엔 극장에 가서 영어로만 된 디즈니 영화(한글 자막)를 볼 정도로 아이는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다.


아이에게 영어 노출 시간을 늘리는 것은 내가 즐기던 삶, 생활 습관을 포기하거나 바꿔야 하는 일이었다. 영어를 하루 종일 틀어놓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하루 종일이란 게 집에 있을 때만 틀어놓는 것이지만 이 역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나는 소음에 민감한 사람이다. 영어 소리에 귀가 먹먹할 때도 있었다. 사실 아이보다 내가 더 거부감이 컸다. 영어를 틀어놔도 귀가 먹먹하지 않고 스트레스가 안 될 때까지는 반년 이상이 걸렸던 것 같다. 


일단 나는 주말에 TV를 보면서 휴식을 즐기던 생활을 끊었다. 정말 보고 싶은 TV 프로그램이 있으면 아이와 주고받고 식의 거래를 해야 했다. “엄마가 이 프로그램 정말 좋아해서 한 번만 보면 안 될까?”라고 얘기하면 아이도 “그럼 나도 이거 조금만 볼게”하는 식이다. 


이렇게 나름의 방법들을 찾아가며 영어 듣기를 꾸준히 해나가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영어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고 영어 호기심과 자신감을 키우는 데는 이보다 좋은 방법이 없는 듯하다. 가장 저렴하면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처음 듣는 영어 노래도 석 달만 매일 들어보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된다. 아이도 그랬다. 영어를 듣던 초반에는 아이가 듣는 것인지 마는 것인지 알 수 없을 때도 많았다. 영어는 그냥 생활소음처럼 들렸고 영어를 듣는 동안에 그림을 그리든 옷을 입든 나갈 준비를 하든 상관하지 않았다. 그래서 잘 듣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믿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 같이 들었는데도 나는 몰랐던 것들을 아이가 어느 순간 말하기 시작했다. 이 다음에 어떤 말이 나올지 아이는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시나브로`가 갖는 힘은 무서운 것이다. 


그러나 1년 이상 해온 `영어 틀기`도 의식하지 않으면 금세 잊어버리고 만다. ‘어머, 영어 틀어야 하는데 까먹었네’라는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러니 `영어 틀기`를 엄마만의 일로 삼아선 안 된다. 아이한테는 자신의 일, 엄마 뿐 아니라 아빠 등 모든 가족들에게 `영어 틀기 생활화`를 인식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가족 중 누구라고 생각이 나면 무조건 `영어 틀기`가 습관화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까지는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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