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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야 Nov 08. 2019

공부해서 오는 스트레스, 안 해서 오는 스트레스

1장 나는 그저 네가 밝고 행복하길 바랄 뿐이었는데..

아이에게 공부를 직접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나에겐 일종의 합리화 과정이 필요했다. 계속해서 마음 한편으론 너무 어릴 때부터 아이를 달달 볶는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누가 물어도 합리적인 근거를 댈 수 있는 논리가 필요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한 사람, 남편을 설득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아이가 그냥 즐겁고 밝게 자라주길 바라지만 점점 커가면서 현실적으로 공부에 대한 생각을 안 할 수 없었다. 


이것은 경험한 자와 경험하지 않은 자의 차이다. 나도 아이가 어릴 때는 공부에 대한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공부한다고 다 잘 되는 세상이 아니다. 투자 대비 가장 성공 확률이 불확실한 영역도 아이 교육일 것이다. 그런데 아이가 6살 중반이 지나도록 한글을 떼지 못하면서 서서히 조급함이 들었고 7살 들어서 공부의 필요성을 느꼈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아이마다 성향이 다르겠지만 `공부` 그 자체가 무조건 아이를 스트레스 받게 하는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요즘 부모 세대들은 다들 한 공부하며 자랐기 때문에 “내가 소실 적에 공부 좀 해봤는데 나 이렇게 밖에 못 살더라. 아이는 무조건 놀게 해줘야 해”라고 미리 정해놓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봤다. 한 쪽에선 조기교육, 선행학습을 못해 안달이지만, 그런 교육의 문제점들이 부각되면서 아예 조기교육 자체에 학을 떼는 부류도 생겨나고 있다. 입시 전쟁, 경쟁 사회에 발을 들이지 않으려고 대안학교를 선택하는 부모들도 봤다. 이 아이들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치를 각오를 한 것이다. 사실 쉽지 않은 선택이다. 검정고시와 또래 아이들과의 관계 형성 등은 둘째 치고라도 돈도 일반 공교육을 받는 것보다 수 십 배 이상 들어간다. 부모의 경제력이 충분히 뒷받침돼야 한다는 얘기다. 


나는 아이에 좀 더 집중하기로 했다. 우리 아이를 보면 또래보다 모르면 답답해했고 스스로 위축이 들었다. 엄마인 내가 조금만 도와주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문제인데도 말이다. 아이 스스로도 원하고 필요하다고 느끼는 순간, 그것은 조기교육도 선행학습도 아니다. 그냥 일종의 배움이다. 수영이나 미술 등을 일찍 배우는 것에 대해선 거부감이 없으면서도 영어 등을 배우는 것에 대해선 `벌써부터?`란 시각들이 존재한다. 나는 그것 역시 편견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필요로 하고 원할 때 그게 무엇이든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영어를 공부, 시험으로서 접근하니 문제다. 영어를 언어로서 접근한다면 이런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언어는 결국 `노출`이다. 


물론 이런 결론에 이르기까지는 아이의 성향 파악이 중요했다. 나는 평일에는 퇴근 후 아이 얼굴을 고작 두 세 시간 보는 게 다였다. 퇴근 후 아이에게 “오늘은 어떤 일이 있었어? 기분 안 좋은 일은 없었어? 누구랑 놀았어? 뭐 재미있는 일은 없었어?” 등을 거의 매일 물어본 것 같다. 내 딴에는 아이의 감정과 아이가 겪었던 일을 기민하게 파악하기 위한 것이었다. 


아이는 타인의 칭찬과 비난에 민감했다. 상대가 선생님이든 또래 친구든 말이다. 누구나 칭찬을 받으면 기분이 좋고 자존감이 올라가고 비난을 받으면 기분이 나쁘다. 특히 아이는 감정 조절이 서툴기 때문에 칭찬과 비난을 아주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비난이 아니더라도 옆에 있는 아이가 칭찬을 받는데 자기는 받지 못한다면 그 역시 섭섭해하며 자기가 혼났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엄마, 나 오늘 안 좋은 일 있었어”라고 시작하는 얘기의 상당 부분이 이런 얘기들이었다. `선생님 또는 친구가 A라는 친구는 칭찬했는데 나한테는 잘 한다고 안 그랬어`라고 말이다. 여자 아이들의 특징일 수도 있으나 우리 아이 성향을 엿볼 수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유치원에서 발레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친구들 앞에서 아이의 터닝(Turnning)을 칭찬한 적이 있었다. 그 날, 아이는 나를 보자마자 “나 오늘 발레 시간에 칭찬받았다. 나 앞으로 발레리나가 될 거야. 나 발레 학원 다닐래” 이렇게 말했다. 6살 때 발레 학원에 다닌 지 두 달 만에 자기는 발레학원이 재미가 없다고 했던 아이였는데..그 전까진 화가, 과학자가 되고 싶다던 아이였는데..순식간에 장래희망이 바뀔 정도로 칭찬 한 마디가 미치는 영향이 컸다. 


우리 아이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 클레이 등으로 만들기도 좋아한다. 나름 소질도 있다. 그러다보니 자주 칭찬을 받게 된다. 그러면 또 더 열심히 잘 하게 된다. 선순환이다. 그러나 우리 아이는 영어에 약했다. 한글도 늦게 뗐다. 한글, 영어에 있어선 위축됐다. 옆에서 엄마가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면 되지 않겠냐고? 24시간 내내 쫓아다니면서? "너는 한글과 영어는 못 하지만 미술은 잘 하잖아. 그거면 됐어." 정말 그거면 될까? 아니다. 무엇보다 아이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는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등을 거쳐 나가면서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경쟁 환경에 놓인다. 사실 경쟁이라고 보기도 그렇다. `그냥 저 아이는 저걸 잘 하는데 나는 잘 안 되네.` 그러면 몇몇의 자존감이 높은 아이들은 `나도 열심히 할 테야. 나도 잘 할 수 있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 아이는 거기까지 생각하기가 쉽지 않은 듯 했다. 사실 어린 아이들의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면 우리 아이는 `나는 못하는 아이인가봐`라며 위축되고 외면해버리는 것을 여러 번 봤다. 한글을 늦게 떼다 보니 한글에 대해서도 자신감이 떨어졌다. 글자를 읽는 상황 자체를 회피했다.   


아이와 짧은 대화에서 기뻤던 일을 얘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가 불편했던 감정들을 알아채는 것도 중요하다. 5살만 돼도 아이는 친구랑 다퉜던 일, 속상했던 일 등을 서서히 말하지 않았다. 특히 혼날 것 같은 일은 일부러 숨기기도 했다. 충분히 안심시키고 해도 아이는 말을 잘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감정들은 어느 순간 부지불식간에 터졌다. 딱히 대화를 하는 상황이 아니었는데 `엄마, 나 이런 일 있었다`라고 속마음을 얘기한다. 그런 순간들의 진심을 보며 아이가 느꼈던 감정, 아이가 그런 상황에 대처하는 태도 등을 통해 아이의 성향이 어떤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낳았다고 해서 이 아이를 어떻게 다 알 수 있을까. 하물며 내 자신의 마음도 잘 모르고 살지 않던가. 


특히 아이의 성향은 6살 후반부터 서서히 드러나 7살이 되면서 더 두드러진다. 그 전까진 그냥 `아이라서, 아이니까`라고 이해됐으나 이때부턴 문제가 생겼을 때 아이가 어떻게 대처하는지, 또래 집단과의 관계에서는 어떻게 행동하는지 등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이런 노력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아이는 완벽주의자적 성향이 있고 승부욕은 강했으나 이런 욕구에 비해 자신감은 떨어졌다. 부끄럽고 수줍음이 많았고 겁도 많았다. 틀릴까봐에 대한 두려움이 커 발표력도 약했다. 남들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썼다. 그 만큼 타인의 칭찬에 민감했다. 우리 아이는 본인 스스로도 잘한다고 느끼고 칭찬을 받으면 그 일이 어떤 일이든 즐겁고 재미있어 한다. 그러나 그 반대 상황이라면 그 상황을 피하려고만 든다. 이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지 않을까.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본능적으로 누가 나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알듯이 또래 집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수록 누가 뭘 잘하는지, 누가 뭘 못하는지 등도 너무 잘 안다. 아이가 못하는 일에 대해 `나는 못하는 아이야`라고 주저하고 좌절할 때 부모가 대안을 제시해주면 쉽게 해결해 나갈 수 있다. 또래 집단 내에서 어울려가며 자존감, 자신감을 높여주기 위해선 너무 뒤처지는 것은 아이 스스로를 더 힘들게 할 수 있단 얘기다.  


아이가 공부를 하게 되면서 받게 되는 스트레스도 있지만 공부를 하지 않으면서 받게 되는 스트레스도 있다. 오히려 `나는 못 해`라고 말하면서 받게 되는 스트레스도 상당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불편한 감정들은 우리 아이 성향상 그 이유가 무엇이 됐든 잘 표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감정들을 잘 드러내지 않는 이유가 엄마한테 혼날까봐, 그냥 엄마한테 칭찬만 받고 싶어서 등 어떤 것이 됐든 말이다. 더구나 계속 아이 옆에 붙어있지 못하는 나처럼 일하는 엄마한테는 더 그럴 수 있다. 그렇다면 뭔가를 함으로써 스트레스도 받지만 또 다른 뭔가를 얻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도 중요한 부모의 역할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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