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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지 않아도 글을 생각합니다.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시간

by 정희정

글쓰는 시간이 아까울까? 글쓰지 않는 시간이 아까울까? 글쓰는 시간, 글을 쓰지 않는 시간 무엇이 더 중요할까? 글쓰는 시간은 작다. 매일 쓰는것도 아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대작의 작가들은 매일 글을 쓰고 달리기를 하겠지? 하루 24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을 한적이 있다. 글쓰는 시간만큼 (정확히말하면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을 타이핑 치는 작업) 글쓰지 않는 시간도 중요하다. 모든 것은 이미 내 머릿속에 있었다. 하고 많은 생각들, 잡다한 생각들, 매일매일 해도 끊이지 않는 일과들이 흘러 넘쳐 바깥으로 삐져나온다. 어느 여백이든 어느 종이에든 써갈겨댄다. 사야할 것, 해야할 일, 내야할 청구서 비용, 전화해야 할 곳. 그리고 나만의 생각들. 문득문득 드는 생각들, 의문들. 짜투리같던 내 생각들을 여기저기 도배질을 해놓는다.

글로 나오려면 일단 잘 자야한다. 잘 자고 잘 먹고 잘 쉬어야 한다.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던 시기에도 글은 썼다. 내 안의 불안감을 해소하기위해 글을 썼지만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최상의 몸 컨디션에서 글을 쓸때가 가장 좋은 것 같다. 푹 쉬어야 생각도 맑아지는 것 같다. 좋은생각이 좋은 글을 만들어내는 걸까? 몸이 아프면 만사가 다 귀찮다. 속이 체하면 우선 속을 진정시켜야 했다. 그럴 때는 글이 뭐냐? 일단 내 몸부터 일으키고 보아야 한다.


격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

그런 날이 있다. 쉬어도 더 쉬고 싶다. 놀아도 더 놀고 싶다. 배는 고플 때 먹으면 된다. 아침,점심, 저녁 챙기지 않는다. 손에 잡히는 대로 보고 손에 잡히는 대로 먹는다. 그저 그런 날이다. 아무것도 읽히지 않는 날이 있다. 내 몸이 휴식을 원하고 더 쉬라고 한다. 쉬다보면 또 하고 싶어 진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손에 잡히는 대로, 내 옆에 있는 그 책을 열어본다. 아이 방에서 흘깃 보던 책들이 있었다. 아이 학교 도서관에 갔을 때 너머로 보던 책들이 있었다. why 시리즈. who 시리즈. 워낙 유명한 책이다. 아이에게 그림책을 참 많이도 읽어준 나였지만, 학교 도서관에 있던 그 책들은 내가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어릴 적 읽었던 위인전도 있었는데,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마냥 늘어져 있던 날, 아이 방에서 그 책을 읽어보았다. 손정의, 리차드 파인만,, 내가 알고 있던 인물들이고 워낙 유명한 인물들이다. 서른이 훌쩍 넘어 책을 접한 나이고, 위인들도 그때 많은 책들을 통해 접했다. 그 인물들의 위대한 업적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접한 것은 처음이다.


내 딸은 역사학자를 꿈꾼다.

나는 역사를 싫어했다. 국사, 세계사, 역사.. 친하지 않았고 좋아하지 않았다. 달달 외는 식의 국사 교과목은 내가 제일 싫어하던 과목이다. 차라리 연애소설을 읽으면 읽었지, 중고등학교 시절의 나는 국사라는 과목에 도저히 정을 붙일 수 없었다.

그런데 내 아이는 역사를 좋아한다. 설민석에서 시작된 나라사랑, 역사의 앎은 내 아이의 관심과 꿈으로 이어졌다. 그림책을 많이 읽어준대로 아이는 스스럼없이 책을 대했고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도 학교 도서관과 친하게 지냈다. 지금은 비록 예전의 상황만큼 자주 접할수 없는 곳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학교도서관을 사랑하고 책을 , 역사를 사랑했다. 수많은 책들 속에서 보물을 탐구하고 캐어내듯이 한국사, 역사와 관련한 다양한 학습만화를 빌려왔다. 내가 들어보지도, 본 적도 없는 많은 역사학자, 저자들이 있었다.


아이책이 이렇게 재미있을 줄은.

와이책이 이렇게 재미있을 줄은. 무심코 집어올린 리처드 파인만을 시작으로 나는 와이책이 빠져들었다. 맥없이 스르르 빠져들었다. 한장한장 넘겨가며 궁금증을 자아내는 이야기들, 위대한 역사인물들의 한 생을 처음부터 끝까지 시대흐름과 배경을 토대로 읽어나가는 재미가 있었다. 한 권, 두 권을 읽으며 급기야 한밤중에 읽다가 폭풍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마거릿 대처, 김대중, 제인 구달.. 수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고난과 역경, 그들이 지나간 삶과 발자국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일산의 한 중고서점에 아이와 함께 방문하였다. 집에 안보는 책들이 꽤 있어 10만원 가량의 현금으로 팔았다. 그 돈으로 또 그만큼의 책을 구입했다. 아이는 2층의 어린이코너에서 다양한 책을 탐독했고 새책같은 책들을 쏙쏙 잘도 골라내었다. 와이책과 who 책도 있었다. 시리즈물이라 세트로 딱 사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여력이 되지않았다. 내가 좋아하고 재미있어하는 지금이대로라면 조만간 와이세트를 구매할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한권 두권 고르다보니 보니 어느새 20여권이 훌쩍 넘었다. 그동안 보고싶었던 책들이 있었다며 신이나서 고르면 다닌다. 이제는 책 검색대에서 방법을 알려주니 제법 스스로 책을 검색하고 분야별 꽂혀있는 번호로 가서 책을 찾아서 왔다.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글이 많은 글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책이 있어도 한구절씩만 들여다보았다. 진득하게 책을 읽는 시간도 좋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에는 가능한 깊이 생각하는 책보다는 가벼운 책이 눈에 잘 들어왔다. 그때 그때 엄마에게 요구하는 사항이 많아지는 시기라 언제는 스텐바이해야 한다. 엄마~ 라면이 먹고 싶어. 엄마, 배고파. 둘째 아이는 요즘 늦게 잠을 잔다. 분유도 끊어야 할때라, 배고픈 시간에 우유를 데워야 하고 영상을 끄면 텔레비전 아동채널을 틀어준다. 잠을 안 자고 옆에서 멍하니 대기할 때가 많았는데, 그 때 나와 함께한 친구는 와이책이었다. 아이는 재미있는 영상을 보고, 언니와 놀기도 하고, 나는 그 옆에 앉거나 엎드려서 와이책에 빠져들었다.


마음끄는대로 책을 파다보면

한달에 한 두번은 서점에 간다. 주로 아이와 함께 간다. 호빵맨의 작가에 대한 책을 읽고 호빵맨 그림책을 샀다. 매대에 진열되어 있는 신간 그림책을 위주로 둘러보는데 눈에 띄이는 그림책이 있다. 귀여운 슈크림모양의 그림책이다. 아이와 같이 한 페이지 읽어보았다. 어라, 재미있는데? 아이와 눈빛으로 사자! 말을 한다. 그렇게 슈크림 그림책도 우리집에 함께 왔다. 별 의도없이 들르는 서점이지만, 별 일을 만나기도 한다. 별의별 그림책이 있고, 몰랐던 그림책과 작가를 알게 된다. 매번 갈 때마다 새로운 사람이 있고, 분위기도 매번 다르다. 매장의 직원도 매번 다르고, 눈에 들어오는 책도 다르다.

책도 고르지만 아기자기한 문구류를 고르러 가기도 한다. 교보문고는 특히 핫트렉스 라는 소품, 악세사리, 문구류 등을 판매하는 곳이다. 예전에는 대형 오르골도 자리했는데, 지금은 없다. 현란한 조명과 알록달록한 색채가 즐비하다. 아이가 좋아하는 볼펜도 고르고 예쁜 스티커도 고른다. 자신의 용돈안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마음껏 사는 날이다.


쉬지 않고 내가 하는 것은?

아이가 어느 날은 영상 하나를 추천했다. 초등학교 교사가 창작동화를 유투브 영상으로 올린 것인데, 제목은 '미스터 일주일'이다. 재미있다고 나에게 추천해준 것인데 묵혀두다가 다다음날 보았다. 별 생각없이 접하고 본 영상인데 의외로 재미있다?! 재미도 있고 나름 의미도 있다. 미스터 일주일은 하고 싶은 것이 많다. 볼링도 배우고 싶고, 골프도 배우고 싶다. 수영도 배우고 싶다. 마치 나처럼 이것저것 하고 싶은게 많다. 무엇이든 처음 배우기 시작할 때 투자가 필요하다. 재료나 도구, 장비가 필요하다. 골프를 배우기 위해서 준비한다. 이것도 사고 저것도 산다. 많은 돈이 든다. 열심히 배운다. 딱 일주일을! 일주일 너무 열심히 몰두했던 걸까? 미스터 일주일은 이내 싫증을 느끼고 그만두고 만다. 이번엔 수영, 수영을 배우기 위해 이것도 사고 저것도 산다. 관련 책도 보고 블로그에 수집한 자료도 올린다. 그리고 또 일주일. 열심히 배웠지만 이내 그만두어 버린다. 이것저것 배우고 준비한 것이 많았지만 일주일을 넘기지 못한다. 미스터 일주일은 결국 끈질기게 하나를 끝까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자책하지만, 쉬지 않고 꾸준히 해온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책을 찾아보고 자료를 만들고 블로그에 올린 것이었다. 이내 자신이 끈기있게 무언가를 해온 것을 발견한 미스터 일주일.


그런 미스터 일주일을 보고 나 역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쉬지 않고 계속 해온 것이 무엇일까?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어서 이것저것 하지만 이내 싫증을 많이 느끼는 나다. 내 성향과 성격을 알기에 내가 꾸준히 쉬지 않고 해온것을 돌이켜보았다. 나도 책을 보고 마음에 담는 좋은 구절을 메모하거나 표시하고 블로그나 온라인에 함께 다른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글쓰기도. 거의 매일을 쓰지는 않지만, 거의 매일 메모는 한다. 영수증에, 책에, 어느 여백에, 어디에서나 말이다. 무엇이 되었든 끈질기게 하는 것을 발견한 것은 큰 행운이다. 그게 앞으로 내 삶에 큰 영향을 미칠것이라는 것을 안다. 내 노후에도 말이다.


나는 내가 제일 잘 알거라고 생각했다. 아무 생각없이 지내다보면 정작 '나'를 생각하는 시간은 없어진다.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나'를 위한 시간.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나를 대우해주는 것, 그런 마음이 필요한 때인것 같다. 충분히 쉬고 충분히 잠을 자본다. 아이가 잘 때 핸드폰은 그만하고 몸에게 휴식을 준다. 글쓰지 않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글을 쓰듯이, 충분히 쉬고 충분히 잠을 자야 또 충분히 내 일도 할 수 있을 테니까.

지금 내가 보고 내가 느끼는 모든 것들이 자양분이 되어 나를 튼튼하고 단단하게 해준다. 필기하기 위해 연필을 정성스럽게 깍아내듯이 모든일에는 준비과정이 있다. 준비과정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충분히 담금질이 된 다음 제대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 매순간 바쁜 일들을 시간을 쪼개어 해치워나가다 보면, 정작 오늘 나를 생각한 시간이 있었는지 의문이 든다. 조금더 멀리보고 숨가쁨을 잠시 멈추고 '나'를 준비해본다. 나라는 사람이 할 일을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시작해본다. 쉼, 그리고 회복의 시간은 내가 나로 설 수 있게 해준다. 언제나 늘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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