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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짓기가 아닙니다. 글쓰기입니다.

글짓기는 못했지만, 글을 쓰고 있습니다.

by 정희정

글쓰기랑 글짓기랑 뭐가 다르지?

나는 글짓기를 못합니다. 국어국문학을 전공하지 않았습니다. 문학이요? 고등학교 시절, 따분하게 지문을 읽어주시던 국어선생님만 기억이 납니다. 나는 국어와 친하지 않습니다. 나는 글짓기를 잘하지 않았습니다. 웅변을 잘하는 것도, 남들 앞에서 말을 잘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글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곳에서 말이죠.


일기를 꾸준히 쓰는 일? 도움이 될 수도 크게 도움이 안 될수도 있습니다.

국민학교, 지금의 초등학교 시절 일기를 많이 적었습니다. 방학기간에도 매일 적었습니다. 탐구생활을 과제로 하던 시절, 매우 열심히 했던 것 같습니다. 일기를 적었는데요. 그건 아버지의 검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꾸준히 일기를 썼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두꺼운 직장노트를 받아들고는 그 곳에 하루의 일상이야기와 가끔 그림을 그리기도 했었는데, 동생들도 보고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그 수첩 일기장이 어디 갔는지는 모르겠고요.

일기를 꾸준히 적는 건 사실 많이 도움이 될지도 모릅니다. 저도 매일의 일상을 감사일기 비슷하게 적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크게 도움이 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잠자기 전 주변에 널려있는 책들을 집어들어 그 곳에 여백에 내 생각을, 할 일을 끼적여놓은 것이 오히려 지금의 글쓰기에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최근 읽은 책에서 저는 또한번의 생각을 깼습니다. 감사일기를 매일 밤마다, 저녁, 잠들기 전에 적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녹초가 되고 피곤한 저녁, 힘겨운 눈꺼풀을 들어올려 손을 올려 감사일기를 쓰기에는 사실 상당히 피곤한 날이 많았습니다. 감사해야 하는데, 의무감으로 억지로 생각을 쥐어짜내서 한 줄 두 줄 써보았지만 크게 의미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더 피곤해져만 갔지요. 왜 그랬는 지 알겠더군요. 감사일기는 아침 햇살이 살그머니 비추는 새벽, 아침 시간에 적는 것이 효과가 있었습니다. 찬란한 아침을 맞이하며 오늘도 건강하고 오늘 하루를 맞이하고 가족과 함께 하는 일상에 감사하게 되는 마음가짐이 햇살과 함께 일어났습니다.


블로그에 끼적거렸던 글들이 사실 유용할 때 있었습니다. 글은 살아있어요.

초록창 블로그는 내 오랜 친구입니다. 다들 잘나갈때, 묵묵히 글을 올린 옛 벗과 같죠. 손님이 없어도 언제가 될 지 모르겠지만, 나의 글들을 조금씩 올렸습니다. 조회수가 없어도 읽은 책의 리뷰를 올렸습니다. 책은 읽었지만 흔적을 남겨야 하기에 블로그를 이용했습니다. 나의 만족일지도 모르고, 책의 흔적인지도 모릅니다. 한 줄 두 줄 써내려갔던 기억이, 그때의 감성이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책과 친해진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 소용없을 것 같았던 블로그의 내용이, 조금씩 짝을 이루고 말이 이어져 하나의 글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엔 힘들어서 끄적였던 기록들이 기억을 불러들이고 회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지금의 글도 훗날 다시 들추어보는 날 그런 감성을 느끼게 되겠죠. 그리고 아주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르고요. 나의 딸들에게도 나의 글을 보여주는 날이 오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이 인생을 바꿉니다.

글을 쓰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저처럼 책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서, 감정의 소통창구로 글을 쓰기도 합니다. 정보의 공유를 위해서, 일상의 이야기들을 보물 보따리들을 글로 풀어내어 책으로 엮으면 가장 훌륭한 나만의 보물이 되는 것이겠죠? 글이 인생을 바꿉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늘 글이 고팠습니다. 실타래처럼 줄줄줄 하루에 꼬박꼬박 글을 적는 작가님들이 부러웠고 대단해보였습니다. 나의 페이스로 가기로 합니다. 한꺼번에 하면 늘 금방 지치는 저를 알기 때문이죠. 새로운 것은 늘 설레었습니다. 배우러 다닐 때는 초반에는 재미있었습니다. 비누 만들기 수업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백만원 가까이 되는 수업료를 지불하고 저는 매주 강좌수업을 들으러 달려갔습니다. 아로마향이 좋았고 비누만들기로 취미로, 운이 좋다면 투잡까지 생각했습니다. 너무 멀리 갔던 걸까요? 재미가 없었습니다. 저울에 재고 비커야 용량을 따라서 비누를 만들고. 굳을 때 까지 기다리고.. 자르고.. 이런 일련의 과학실험 같은 과정이. 저에게는 맞지 않았습니다. 해보니 알았습니다. 나는 향은 좋아하지만, 만들기는 좋아하지 않는 다는 것을요.


저는 시작은 잘 하지만, 오래 지속하는 것은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글쓰기는 달랐습니다.

책을 많이 보던 시간도 있었고 책이 재미없을 때도 있었습니다. 책을 읽고 모서리 귀퉁이를 접어두었고 인상에 남는 페이지는 사진으로 많이 찍어두었습니다. 100여권의 책을 읽으면서 매일 도서관을 다닐 때는 독서노트에 적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은 짧은 느낌을 적고, 어느 날은 책을 보거나 그날의 감성을 길게 적어두기도 했습니다. 저의 페이스로 길게, 짧게 많이, 적게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쌓여갔습니다. 내 안에 책의 흔적들이 쌓이고 조금씩 적어가는 글의 흔적들이 차곡차곡 쌓였습니다. 무리하지 않고 아주 조금씩이지만 그렇게 지금도 글을 쓰고 또 책을 사들이고 책을 보고 있습니다.


글을 적으면서 내가 말을 하고 내 안의 복잡했던 감정들이 차분히 정리가 되었습니다. 글을 쓰기 시작하니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선명해지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고, 내가 원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다른 작가들의 인생을 보기도 했습니다. 글을 쓰면서 나를 마주대하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시간은 없었지만 글을 적었습니다. 글쓰는 시간은 나에게 소중했습니다. 어떤 글이 되었든 말이죠.

글짓기는 못했지만, 글을 쓰고 있습니다. 다른 책을 많이 보고 배웁니다. 책의 제목이 기가 막히네~ 책의 목차가 참 깔끔하고 눈에 들어오네! 책 내용이 참 도움이 되네. 나도 이런 삶을 살고 싶다. 그런 생각들을 합니다. 그래서 책을 보는 것이겠죠. 다양한 책을 봅니다. 아주 다양한 책을요. 서점에 가서 제목만 주욱 보기도 하고 아이디어를 얻기도 합니다. 목차를 주욱 훑어보고 나의 글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내용을 보고 아! 나도 이런 경험이 있었지 이야기를 풀어내기도 합니다.


글을 쓰면 내가 좋아하는 것이 보입니다. 아주 천천히 말이죠. 해봐야 안다는, 일단 시작해보라는 말을 저는 좋아합니다. 하던 습관대로 가던 길대로 가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저 역시 라떼를 좋아하니 늘상 라떼만을 주문하고는 하죠. 하지만 가끔씩은 다른 메뉴를 주문해보기도 합니다. 매일 차를 타고 다녔던 길을 딸아이와 함께 버스를 타고 가니 그 길또한 새로웠습니다. 어쩌다 마주친 새로운 길에 새로운 방향에 우리는 마음을 빼앗길지도 모릅니다. 글이 두렵다면 일단 조금씩이라도 써봅니다. 오늘 조금, 내일도 조금 이렇게 적어갑니다. 필요하다면 책쓰기 강의나 시중에 아주 잘 나와있는 책쓰기 관련 책들을 두루두루 읽어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저는 아직도 책쓰기, 초보작가 책쓰는 방법, 노하우 관련한 책들을 아주 많이, 여러번 구입하고 있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가는 굳이 꼭 말로 하지 않아도 내 글을 보면 알수 있습니다. 친구도 생길 수 있습니다. 요즘처럼 헛헛한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거나 수다를 떨거나 회포를 푸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조용한 시간에 글로 풀어내다보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또 나와 같은 길을 걸어가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혼자서 글 쓰는 일은 어렵습니다. 누군가와 함께 , 동지와 함께 글을 쓴다면 많은 것을 공유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매일 새로운 글을 쓰면서 오늘은 또 어떤 나? 새로운 나를 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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