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집은 장난감천국!

할머니집 시리즈 2탄

by 정희정

방학이면 우리는 늘 구미를 방문한다. 구미는 나의 고향이고, 내가 태어난 곳이다. 나의 친정집이다. 둘째 아이의 어린이집 방학기간에 맞추어 구미를 방문했다. 첫째 아이는 학교에 가지 못하고 매일 원격수업을 한다. 노트북과 많은 교과서들을 일일이 다 챙겼다. 온라인 수업을 들으면 어김없이 수업내용을 적어야 해서 배움노트도 챙겼다. 매주 금요일은 미술수업이 있는 날이다. 학교를 안 가니 집에서 모든걸 해야한다. 과학실험시간에는 물을 떠놓고 실험을 하기도 하고 미술시간에는 집에 있는 온갖 것들로 미술작품을 만들어야 한다. 학교에서 준비물을 챙겨주기도 하지만 극히 일부분이다. 엄마의 손이 필요하고 엄마의 도움이 아직은 필요하다. 영상만 보고 따라해야 해서 아이과제가 엄마과제가 된다. 아이 수준에서 조금 쉬운걸 했으면 하고 건의하기도 했지만, 그건 나만의 생각이었을까? 미술수업 하나를 하는데도 미술작품이 웬만한 수준이 되는 걸 원하는 학부모도 있다고 하니 .. 말다했다. 직장도 다니며 살림도 하고 육아를 하면서 아이온라인 학습도 봐주어야한다. 거기다가 매일 배움노트는 잘 적었는지 확인해야 하고, 심지어 국어, 수학 교과서를 풀거나 과제를 하는 날은 또 찍어서 올려야 한다. 모두 엄마가 도와줘야 가능한 일이다.


미술수업에는 색연필, 종이, 도화지, 기타 재료들이 필요하다. 그런 준비물도 혹시몰라 빠짐없이 챙겨넣었다. 큰 캐리어에는 나의 옷, 아이들 옷을 각자의 공간에 맞추어 켜켜이 챙겨넣었다. 첫째 아이가 유치원 다닐때 선물받은 무당벌레 캐리어는 아이의 책가방이다. 그곳에는 아이가 좋아하는 책들도 도배한다. 할머니집 가는 것을 놀러가는 것처럼 좋아하는 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책들을 하나둘 고르며 신이났다. 책 무게가 제일 무겁다. 하나둘 챙겨넣으면서 책 캐리어가 제일 무거워졌다. 간소화하려고 하지만, 옷, 기저귀, 책, 기타 생필품, 준비물들을 챙기고 보니 벌써 한 짐이다. 그렇게 우리는 할머니집 나들이를 시작했다.


미끄럼틀이 필요없는 할머니집

미끄럼틀 대신 할머니집 쇼파에서 슝슝~

우리집에는 미끄럼틀이 없다. 첫째 아이때는 중고로 미끄럼틀을 사기도 했다. 장난감도 여러가지를 사주곤 했다. 여러가지를 경험해보고 나중에 치우기도 하고 버리고 남을 주기도 했다. 여러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 장난감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의 가짓수만 남기고 다 정리했다. 한번 그런 과정을 거치고 나니 장난감이나 아이용품은 정말 일시적, 단기적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길게 쓰면 본적을 뽑고도 남는다. 그런데 미끄럼틀을 중고로 들였을 때 거실 한 복판이 미끄럼틀 차지였다. 물건이 많은 것을 좋아하진 않는데 미끄럼틀이 떡하니 거실 한구석을 다 차지하고 있으니 솔직히 나중에는 짐이 되었다. 자리를 차지하는 짐. 그래서 둘째 아이때는 굳이 미끄럼틀을 들이지 않았다. 대신 볼풀공이 있는 공간을 유독 좋아해서 그 공간은 아이들을 위해 남겨두었다.


할머니집에는 십년이 넘은 오래된 소파가 있다. 아이는 이 소파를 좋아했다. 갈색 소파는 빛이 바랬고 구석구석이 많이 헤졌다. 예전 고양이를 남동생이 데리고 와서 키운적이 있었는데, 밤마다 야옹 야옹 하며 울고 갈색소파를 벅벅 긁어대는 통에 한쪽 소파부분이 갈기갈기 흔적이 남았다. 여기저기 헤지고 상처가 난 소파지만, 아이에게는 최고의 놀이기구다.

소파위에서 콩콩 뛰고 소파 위 부분에 올라가서 누워있기도 한다. 소파위에 서서 파리채를 들고 벽에 걸린 액자를 툭툭 건드리고 장난을 친다. 소파위아래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재미있는가보다. 아이는 미끄럼틀을 타듯이 소파위를 굴러다녔다. 새로운 장난감 대신 소파위에서 매번 새로운 놀이방법을 터득하는 듯하다.


짐정리를 하다가 발견한 아주 오래된 (나의 학창시절) 색연필

짐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색색이 색연필. 할머니집 작은방에 한쪽 귀퉁이에는 족히 20년은 넘어보이는 서랍장이 있었다. 내가 어릴때? 학창시절부터 있었는 지 모른다. 열고 닫을때 끼이익 소리가 나고 잘 여닫히지가 않았다. 가루가 스르르 떨어지기도 했다. 그정도로 낡고 오래되었지만 아직까지 서랍장은 방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번 기회에 엄마에게 물어보았다. 서랍장을 정리하자고. 치우자고 말이다. (짐정리: 할머니집 시리즈 3탄 예정)

엄마는 흔쾌히 알겠다고 했다. 아빠도 남동생도 진작에 치우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짐이란 것이 그렇다. 커다란 서랍장이고 두명이상의 사람이 필요한데 짐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 자식들은 다 커서 독립하고 각자의 생활을 하는데 부모님의 집에 그대로 짐이 있다면, 그 또한 빠른시일내 정리해드리는 것이 맞다.


수거담당자를 검색해서 방문예약 접수를 했다. 방문하기 전에 서랍안에 있는 모든 짐들을 빼야 한다. 서랍 칸칸이 구겨져 있는 서류들, 각종 고지서들, 속옷, 오래된 예전 우리가 입던 옷들까지 싹다 비웠다. 그 속에 이 색색이 색연필이 있었다. 뒷면에는 내 남동생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새것 그대로인 색연필이다. 그당시에 2500원 했으면 당시에 꽤나 큰 금액이다. 그정도로 귀한 필기구, 색연필이었다. 내 아이와 나는 삼촌거라며 좋아했다. 삼촌의 색연필을 30년 가까이 지난 뒤 발견해내다니. 값진 성과였다.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는 물건이었다.

달력 뒷면은 예술품이 된다.

연습장이건 스케치북은 필요없어요. 달력뒷면이면 좋아요.

어딜 가나 달력이 하나쯤은 있다. 할머니집에는 글씨가 크게 박힌 달력이 있다. 2020년 올해를 아낌없이 보내었고 그 증거물인 달력이 있었다. 달력 뒤편은 깨끗하다. 올해의 12월 마지막날에 달력을 펼쳤다. 한해가 가고 또 한해가 오는 시기. 연말을 조용히 마무리하면서 또 새로운 한해를 맞이할 준비를 해본다. 짐 속에 꽁꽁 숨겨두었던 색연필이 새로운 빛을 맞이한 것 처럼, 쓱싹쓱삭 달력 뒷면 위에서 자유자재로 아이들의 미술활동이 시작되었다. 색연필과 형광펜, 크레파스만 있으면 늘 놀이감이 된다. 어느 여백이든 좋지만, 한해를 무사히 잘 보낸 달력의 뒷면이면 더욱 좋다.

무조건 새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버릴 것은 버리고 또 버리다가 우연히 찾게 된 옛 추억의 물건이 있었다. 헤지고 사용하기 힘든 오래된 물건을 정리하는 일, 그리고 그 속에서 지금 사용할 만한 좋은 물건을 드러나게 하는 일은 진정한 정리의 의미가 있다. 그래서 할머니집에 오면 예전 잊혀졌던 물건을 발견하고 아이는 그 물건들을 가지고 논다. 첫째 아이의 손때가 묻은 것들이 둘째 아이에게도 통한다. 그렇게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물건과 물건에 대한 정도 쌓이는 것이겠지.

아이에겐 모든 것이 장난감

오랜 빛 바랜 물건이 아이의 눈엔..

할머니집에는 사용하지 않는 물건도 있다. 전자제품의 리모콘도 그것이다. 아마도 예전에 사용하던 리모콘인데 여전히 서랍 안에 보관되어 있다. 둘째 아이는 거실을 돌아다니며 이것도 만지고 저것도 열어본다. 서랍을 열어보다가 리모콘도 찾아낸다. 사용하지 않지만 아이에게는 이 또한 장난감이 된다. 장난감 리모콘을 사는 것보다 사용하지 않는 리모콘으로 버튼도 눌러보는 것이 더 재미있는 건 당연하다. 숫자도 읽는 흉내를 낸다. 버튼 마다 적혀있는 1,2,3,4를 누르면서 알수없는 단어들로 숫자를 읽기도 한다. 서랍을 열었다 닫고 리모콘을 넣었다가 빼기도 한다. 리모콘 하나로 10분이 넘도록 20분이 넘도록 거실을 넘나들며 가지고 논다.

아이들은 새로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아이들 눈에는 매일이 새롭다. 나가는 길마다 새로운 풍경을 본다. 요즘처럼 바깥 나들이가 힘든 날, 집안 곳곳에서 새로운 것을 들여다보고 찾아낸다. '새 것'을 좋아하기보다 '새로 보는, 새롭게 맞이하게 되는' 것을 좋아한다.


그릇도 그렇다. 내가 보기엔 고풍스럽긴 하지만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그릇들을 가지고 혼자서 소꿉놀이를 줄기차게 한다. 땅콩 몇개 넣으면 가득찰 정도의 그릇을 가지고 여기 옮겼다가 저기로 옮긴다. 작은 귤을 담기도 하고, 딸기를 몇 개 올려놓으면 가지런히 들어 사뿐사뿐 걸음을 옮긴다. 그릇을 다루는 솜씨가 제법 조심스럽다. 섬세한 손길이 느껴질 정도다. 그릇 운반하기 놀이가 끝나면 그릇안에 땅콩을 넣어두고 이 컵에서 저 컵으로 옮겨담기도 한다. 깨지기 않는 단단한 재질이나, 종이컵이면 좋다. 땅콩, 콩류는 놀이하다가 먹을 수도 있어서 거부감이 줄어든다. 평소 콩을 잘 먹지 않는 아이들에게 더 좋은 놀이가 될수도 있다. 둘째 아이는 평소에는 검은콩을 잘 먹는 편이지만, 땅콩은 생소했다. 그릇 2~3개 사이에 땅콩을 옮겨담기 하면서 언니와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땅콩을 스스럼없이 먹는 모습을 보았다.

오래된 것도 새로운 것도 다 의미가 있다

할머니집엔 신기한 게 많아, 그치~?

평소 어질러졌던 할머니집 베란다를 정리하면서 통로가 생겼다. 열린 창문 틈 사이로 바깥 베란다를 본 둘째 아이는 베란다로 향했다. 신발을 신겼더니 다다다 달려간다. 다육이가 꽤 많이 있고, 베란다 끝 옷장에는 예전에 사용한 물건과 책등으로 가득차있었다. 옷장 안 좁은 틈새를 찾아들어가선 문을 닫고 열고를 반복한다.

커튼안으로 들어가서 꼭꼭 숨어라 숨바꼭질을 하기도 한다. 하얀색 커튼 뒤로 숨었다가 고개를 내민다. 거실은 놀이방이 되고 키즈카페가 된다. 평소 못 보던 물건들이라 새롭고 오래된 물건이라 또 새롭다. 이 물건 저 물건을 만져보고 탁자에 앉아도 본다.


단조로웠던 깔끔하던 집이 아이의 손길따라 어질러져도.. 허허. 하하. 깔깔

단정했던 할머니집에 아이들의 짐이 풀어진다. 연필꽂이에 가지런히 꽂혀있던 필기구는 모두 바깥으로 꺼내어져 있다. 할아버지 약을 만질까봐 따로 챙겨두어야 하고, 아이가 만질 수 있는 위험한 집기류들은 모두 할아버지방으로 옮겼다. 이제는 제법 조심할 줄 알고, 말귀를 알아들을 때지만 아이의 곁에서는 늘 안전을 생각한다. 할아버지, 할머니집의 온기를 느끼고 무한사랑을 받고 있다.


나에게 할머니집이 그랬듯이, 나의 아이들도 그런 존재다. 나의 친정집에서 내가 좋아하는 쌈, 비빔밥, 된장찌개를 원없이 먹었다. 입이 짧은 것인지 둘째 아이는 영 밥을 먹지를 않는다. 부모는 베이스캠프라고 한다. 힘껏 걸어가다가 문득 부모님이 생각이 난다. 어쩌면 힘이 부친시기에 절로 부모님 생각이 나는 것 같다. 그래서 부모 베이스캠프에 나는 들른 것이겠지. 나의 부모가 나에게 그랬듯이 내 아이들이 가는 길이 힘에 버겁고 쉴 곳이 필요할 때 돌아와 쉴 수 있게,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게 넓은 부모라는 베이스캠프가 되어야지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