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다리 자전거와 할아버지

할머니집 시리즈 1탄

by 정희정

바깥 나들이를 자제하는 요즘, 나의 두 아이들은 할머니집(나의 친정)에서 지낸다. 뛰어놀고 달리고 마음껏 소리지를 수 없지만, 할머니집에서의 생활도 나름 안정적으로 적응해가고 있다. 할머니집에는 오래된 물건들이 많다. 쇼파도, 테이블도 침대도


어릴 적 내가 갔던 할머니집에서 놀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바로 앞에 위치한 나의 할머니집은 한결같았고 그리운 곳이 되었다. 어린 시절 우리 삼남매는 할머니집에 자주 놀러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365일 세 아이를 돌보던 엄마에게 잠시나마 힐링의 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가끔 할머니, 할아버지가 투닥투닥 싸우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학교 바로 앞이라 학교 선생님이 단칸방에서 지내던 흐릿한 기억도 난다.


내가 태어나고 연년생으로 여동생이 태어났다. 할아버지가 그 시절 귀하고 귀했던 크레파스를 사주기도 하고 리어카를 밀고 끌어주기도 했다. 내 여동생은 할아버지가 리어카를 끌어준다는 소리에 할아버지가 힘들까봐 올라타지 않았다고 했다. 할아버지를 생각해서 안 탄것인데, 할아버지가 버럭 화를 냈었다고 그 당시를 회상하며 말하곤 했다. 할아버지는 키가 매우 컸다. 185는 족히 되었을 것이다. 그런 할아버지에게 키다리 아저씨 같은 높은 자전거가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때쯤, 나는 할아버지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할아버지 집에서 나와 넓다란(그때는 학교가 정말 엄청 넓어보였다) 학교를 가로지르고 냇가를 지나 논가를 향했다. 푸른 빛깔이 감도는 들판을 자전거와 함께 달렸다. 키높이 자전거를 탄 나는 우쭐했고 키가 굉장히 커진것 같았다. 신이 났고 재미있었다. 바람을 타고 쌩쌩 달리는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그때...

키다리 자전거가 휘청거리더니 아뿔싸. 가로지르는 둑 아래쪽 쌀들이 펼쳐져 있는 아래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대로 쳐박혔다고 표현해야 할까? 벼들이 무르익어 산들산들 흔들거리는 그 곳에 나는 자전거와 함께 그대로 곤두박질 치고 말았다. 키다리 자전거와 함께 말이다. 할아버지는 키가 굉장히 컸고 자전거도 키가 굉장히 컸다. 발을 내려도 땅에 닿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자전거가 타고 싶었고 자전거가 좋았다. 그래서 탔다. 그러다가 둑 아래쪽 벼들이 넘실거리는 그곳에 떨어졌다. 당황했고 많이 아프기도 했을 것이다.

벼들이 스폰지처럼 나를 폭신하게 받쳐주어서 그래서인지 덜 아팠던 기억이 난다. 만약 벼들이 없었더라면 큰 높이에서 자전거와 함께 떨어진 나는 많이 다쳤을 것이고 많이 아팠을 것이다.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내 동생들이 달려왔던 기억이 난다. 할머니, 할아버지 집을 생각하면 그때의 그 넓고 넓던 들판과 벼들과 할아버지, 할머니가 생각이 난다.


할머니집과 거의 맞닿아있던 학교는 초등학교 였다. 내 아버지도 그곳을 다녔다. 지금은 운영을 하지 않는 곳이 되었다. 농촌보다는 도시로 모두 나오고 아이들이 동네에 드물었다. 그시절 국민학교에서 나는 할머니집을 방문할 때면 내동생들과 늘 우르르 뛰어나가 놀곤 했다. 엄마는 할머니와 채소를 다듬고 나는 동생들과 떡갈나무처럼 굉장히 큰 나무들 아래애서 뛰어놀았다. 다양한 놀이기구도 많았고 보드라운 흙도 있었다. 모래 흙을 만지며 소꿈놀이도 했다. 그저 같이 놀아서 즐거웠다. 마음껏 놀다보면 불을때서 연기가 이는 할머니집에서 밥 먹으러 오라고 우리를 부르곤 했다. 잊은 듯하지만, 잊혀지지 않은 할머니집의 기억이 있다.


누구에게나 할머니집에 대한 추억이 있을 것이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명절 때마다, 그리고 자주 뵈러 갔었는데 독립을 하고 결혼을 하고 각자의 생활전선에서 생활하다보니 일년에 한번 보기가 힘든 것도 사실이다. 생각은 나지만 연락을 주저하게 되기도 한다. 지금은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도 문득 난다. 아니 자주 난다.

늘 명절때나 놀러갈때 배웅을 나오시던 두분은 허허허 껄껄껄 하며 우리를 마중해주었다. 차를 타고 인사를 나누고 차 뒤로 멀어져가는 두분의 모습이 지금도 눈 앞에 선하다. 할아버지는 키가 컸고 뒷짐을 지면서 허허허 하면서 인자한 웃음으로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할머니는 귀여운 인상의 작은 체구이지만 웃음이 예쁜 재미있는 할머니였다. 그런 두분은 우리가 차를 타고 멀어져갈 때까지 그렇게 바라보고 서 있었다.


곧 새해 명절이 되고 늘 혼자 계시는 할머니 생각이 난다. 연락드려야지 생각하고 연락을 드리면 된다. 이번주말에는 할머니에게 전화를 드려봐야겠다. 어느 날이라서가 아니라, 새해가 다가와서가 아니라 그냥 생각나서 전화드렸다고. 할머니 생각 많이 하고 있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해보련다. 틀니를 하고 있어 부드러운 간식으로 보내드려야지 생각한다. 영양갱, 한과, 두유.. 할머니가 좋아하는 걸로 보내드려야지.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어서 나의 부모님이 있고 내가 있다. 늘 한결처럼 웃음을 주시고 할머니집의 추억을 되새길 수 있어서 참 고맙고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