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수프
오늘은 고래에 대한 그림책을 준비했다. 아니 엄마에 대한 그림책일까? 제목만 들어서는 고래수프? 고래에 대한 이야기 인가? 고래 수프? 갈피를 잡기 어려운 제목이었다. 물감으로 은은하게 채색된 칼라에 빠알간색 엄마 고래가 있다. 자전거를 타는 엄마 고래, 수프를 끓이는 엄마 고래.
엄마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엄마 고래가 시장에 갑니다. 그리고 아기 고래들도 엄마를 따라 시장에 갑니다. 시장에는 구경할 것들이 많았다. 엄마를 따라서 시장에 간 아기 고래들은 맛있는 것도, 신기한 것들도 구경한다. 엄마와 함께 가는 길은 늘 즐겁다. 병아리가 엄마를 따르듯, 아기 고래들도 엄마를 따른다. 엄마의 눈으로 아이들은 세상을 맛본다. 엄마의 길을 따라 엄마의 눈으로 엄마가 만들어준 길을 따라간다.
엄마 고래는 언제나 맛없는 파만 산다. 시장에서 사 온 ‘파’를 재료로 엄마는 수프를 만든다. 배가 꼬르륵 배고픈 아기 고래들은 엄마가 만든 수프를 맛있게 먹는다. 엄마의 사랑이 들어간 정성이 가득한 수프를 말이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엄마 고래를 따라 시장에 간다. 시장에 가는 길은 언제나 즐거움이다. 엄마를 졸졸 따라가는 아기 고래들이 귀엽다. 조그마한 아기 고래들 눈에는 크게 사랑가득한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 크게만 보이는 엄마의 등이 이제는 조금씩 작게 느껴진다. 아기 고래들은 엄마 고래가 만든 수프를 먹고 자라고 성장한다. 커가는 아기 고래들에 비해 엄마 고래는 점점 작게 느껴진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엄마의 수프를 먹고 엄마의 숨소리를 듣고 엄마의 잠결 같은 자장가 노래를 들으며 아기 고래들은 행복한 꿈나라로 빠진다. 엄마의 소리, 엄마의 냄새, 엄마의 손길. 몸집이 커진 아기 고래들은 엄마 곁을 떠난다. 아기가 태어나고 엄마아빠의 사랑을 받고 자란다. 부모라는 우산 안에서 아이들은 안전하게 자라나고 성장한다. 엄마아빠 라는 존재는 그런 존재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품을 내어주는 일이다. 한 품, 두 품, 세 품..
얼굴을 내어주고 무릎을 내어준다. 젖을 내어주고 축 늘어질 지어정 내 품을 내어준다. 그것이 부모라는 엄마라는 존재다. 엄마와 함께 시장에 간 적이 있다. 엄마의 손을 잡고, 엄마의 등을 보고 아이들은 자란다. 엄마의 사랑을 느끼고 보고 듣고 느낀다. 나의 품을 내어 준다는 것은 나의 곁을 허락하는 일이며 장소를 공간을 기꺼이 내어주는 일이다. 나의 시간을 내어주는 일이다.
육아에는 적당히가 없다. 아기가 태어나고 둘째가 태어나고 몸이 피곤할 때쯤 적당히 해볼까?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젖을 먹일 때 허리 어깨 안 아픈 곳이 없었지만 적당히는 통하지 않았다. 그 이상을 그저 내 새끼를 위해 내 아이에게 나를 내어 주는 일, 바로 그거다. 한껏 품을 내어주는 시기를 지날 때쯤 아이는 자라고 큰다. 앉고 서고 걷고 달리며 성장한다. 그리고 키가 커지는 만큼 생각도 커지겠지. 너의 생각을 범하지 않도록 너의 생각을 존중해 주어야지.
한껏 품을 내어주는 시기가 지나면 간격을 거리를 내주어야 하는 시기가 온다. 십대가 되고 옳다 그르다 나의 생각 너의 생각을 고집하기보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너의 생각을 존중해주어야겠지. 무조건 안돼 라고 말하기 전에 너는 어떤 생각인지 왜 그런 생각을 한건지 어떤 방법이 좋을지 함께 생각해 보아야겠지. 너의 옹알이를 들어주고 눈을 맞추었던 시기가 있었다. 너와 말이 통할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너와 이야기를 하면서 다른 생각을 할 때도 있었다. 네가 학교에서 돌아와 종알종알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 이제 그만하지 생각한 적도 있었다. 엄마의 품이 작아서였을까? 내 속내가 작아서였을까.
이제라도 엄마는 너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려고 한다. 네가 처음으로 ‘엄마’ ‘아빠’라는 말을 하고 배운 것처럼 너의 작은 옹알이도 눈빛을 반짝이며 귀 기울인 것처럼 그렇게 엄마는 다시 너의 말에 귀 기울이려고 한다. 너에게 엄마는 전부이고 엄마의 눈이 나에게로 향할 때 가장 기뻐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엄마의 시큰둥한 반응을 너를 의기소침하게 만들기도 한다. 나의 품을 키우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필요하다.
엄마가 부모가 아이를 키우지만 아이는 부모를 마음의 품을 키운다
아이는 나를 키운다. 세상 물정 모르던 콧대만 높았던 아가씨였던 나를 엄마의 세계로 끌어들였다. 너를 낳고 키우며 나는 엄마로 성장해간다. 나만 생각했던 작은 속내가 너를 만나 품을 내어 주고 조금씩 넓어진다. 세상에 태어난 너와의 인연은 엄마에게 가장 소중한 인연이니까. 그렇게 나는 엄마가 되고 어제보다 더 나은 엄마가 되고 싶다.
엄마 수프에는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재료가 들어 있으니까요.
엄마 수프에는 가장 특별한 재료가 들어가 있다. 엄마가 만들어준 수프에는 엄마의 손맛, 정성과 사랑 그 이상의 것이 들어있다. 엄마와 함께 시장에 가고 엄마와 함께 눈을 맞추며 이야기하고 엄마의 손을 잡으며 온기를 느끼고 엄마와 종알종알 이야기하며 엄마의 목소리를 듣는다. 이 모든 것이 엄마의 수프에 녹아있다.
오늘 둘째 아이와 함께 어린이집에 갔다. 일을 하면서는 아이돌보미 선생님의 도움으로 등하원을 맡아주시지만 요즘 가끔 아이와 함께 어린이집에 걸어간다. 도보로 10분 정도의 거리지만 가는 걸음걸음에 발을 맞추고 땅바닥을 살피고 놀이터에 눈을 둔다. 걸어가는 동안 아이의 뒷모습을 지켜본다. 어린이집 앞에는 그네가 있는데 아이는 그곳을 좋아한다. 빨간색 그네는 조금더 길고 높이 오른다. 춘향아씨처럼 나풀거리는 치마를 입고 한들한들 그네를 탄다. 마스크를 끼고도 웃는 모습이 보인다. 한 번, 두 번, 세 번 .. 그렇게 그네를 타고 또 탄다. 바로 옆 조금 낮은 초록색 그네도 타본다. 엄마가 밀어달라고 손짓한다. 한번 더 또 한번 더 그렇게 여러번을 그네를 탄다.
5분, 10분이면 가는 거리가 10분 20분 걸린다. 그래도 상관없다. 아이와 함께 하는 지금 이 시간이 아이에게는 전부니까. 엄마에게는 단 5분 일지라도 아이에게 지금 이시간은, 엄마와 함께 하는 이 시간은 세상의 전부니까. 엄마는 아이에게 전부니까. 아이의 눈을 보고 아이는 엄마의 눈을 본다. 엄마가 웃으면 아이도 웃는다. 오늘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한껏 아이와의 시간을 즐긴다. 만끽한다.
요즘 부모라는 의미에 대해 생각이 많아진다. 지금의 이 사건은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에도 큰 경종을 울릴 것이다. 이미 중국이라는 나라에서도 안타까운 사연에 많은 메일과 연락이 오고 있다고 한다. 좋은 부모는 더 나은 부모가 되려고 하고 그렇지 않은 부모는 여전히 무관심하다. 핸드폰 하나를 사도 에어프라이기 하나를 사도 우리는 설명서를 읽고 작동방법이나 상세한 내용을 공부한다. 하물며 생명이라는 존재인 아기를 키우는 데 부모됨을 준비하고 공부하고 배워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부모됨이 준비되지 않았다면 아이를 키우면서 함께 배우고 아이와 함께 보다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보다 나은 부모가 되기 위해 공부하면 배우면 된다.
내가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나를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