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 국수
오늘은 산뜻한 여름냄새가 나는 책을 준비했다. 매번 표지를 보면서 읽으면서 써야지 한번 이야기를 적어봐야지 하면서 이제야 쓴다.
글 그림 백유연
표지부터가 여름여름 하다. 우와 여름이다~ 라는 쿨의 노래가사처럼, 여름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나는 여름이 참 좋다. 싱그럽고 풀소리 바람소리 산들거리는 나뭇잎들 아삭거리는 풀잎소리들에 귀를 맡기고 눈을 내어준다. 향기를 온 몸으로 맡고 여름철 한껏내리는 소나기 소리를 듣는다. 시원하게 내리는 빗줄기에 창문을 바라보고 있으면 웬지 모를 감성이 솟구치고는 했다. 나에게 여름은 그랬다.
무척이나 더운 여름날, 여기에 땀을 뻘뻘 흘리는 친구들이 나온다. 산에 가면 들에 가면 이름 모를 수많은 풀과 꽃과 나무들을 만난다. 토끼, 곰, 고라니 이 세친구가 물가의 돌멩이에 앉아 더위를 식히고 있다. 근처에 수많은 종류의 식물이 눈에 들어온다. 몽글몽글한 안개꽃, 아기자기한 풀잎, 싱그러운 여름날의 한철을 보는 듯하다.
그림책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겁다. 그때 다람쥐가 이들에게 다가와 이야기한다.
“얘들아, 멧돼지가 아파!”
친구 멧돼지가 어찌된 일인지 아무것도 먹지를 못하고 시름시름 아파서 누워만 있다. 친구들을 걱정하면서 그의 곁으로 다가간다. 열도 나고 콜록콜록 기침도 한다. 친구들은 생각한다. 멧돼지 친구를 위해서 무엇을 해줄까?
“시원한 음식을 만들어 주자”
더위에 지친 멧돼지를 위해 음식을 만들어주기로 한다. 산 속은 그야말로 보물단지다. 쭉쭉 길게 뻗은 시원스런 잎도 따고 산딸기? 블루베리처럼 열매가 달려있는 나무에서 열매도 똑똑 딴다. 시원스레 흐르는 졸졸 시냇물에서 물을 담고, 빨간색, 주황색, 노란색 예쁜 색감을 지닌 알록달록 꽃들도 따다 담는다.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에서 산에서 나무에서 얻은 다양한 재료와 열매들을 깨끗이 씻는다. 자 이제 멧돼지 친구를 위한 시원한 음식 만들기를 시작해볼까? 고라니는 시원스레 쭉쭉 뻗은 풀잎을 먹기 좋게 찢고 토끼는 장식할 꽃을 곱게 말린다. 다람쥐는 양념으로 쓰일 재료인 강아지풀 씨앗을 쏙쏙 골라내고 곰은 과일즙을 내서 음식에 곁들일 국물을 만들었다.
친구를 향한 마음이 예쁘게 담긴다. 아픈 친구를 위해 풀잎을 뜯고 나무열매를 모으고 물로 깨끗이 씻어 손질하고 예쁜 그릇에 소담스럽게 차려낸다. 음식을 준비하고 차려내는 과정을 보면서 음식은 정성이다 라는 말이 떠오른다. 남편을 위해 요리를 할 때도. 아이들을 위해 요리를 만들때도 정성이 들어간다. 무얼 해먹지? 어떤걸 해주면 잘 먹을까? 좋아할까? 생각하는 것부터 마트에서 이것저것 재료를 비교해가면서 장을 본다. 음식을 만들기 위해 재료를 손질하고 다듬었던 엄마의 손길, 할머니의 손길이 생각난다. 엄마와 할머니처럼 고차원적인 음식들은 못 만들어내지만 (사실 손질할 줄도 모르고) 그럼에도 아이들을 생각하며 햄을 자르고 감자를 썬다. 어느날은 콩나무 국을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콩나물을 씻고, 팔팔팔 끓인다. 간단하지만 너겟을 구울 때도 있고 우동을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가끔은 우동을 끓이기도 한다. 엄마 시절이나 할머니 시절에 비해서는 훨씬 더 간단해진 요리 들이지만, 지금을 살아가는 동안 아이들의 입맛에 맞추어서 그렇게 나는 또 적응해간다.
친구들의 정성으로 맛있게 차려진 음식을 건네 받은 멧돼지는 한 젓가락을 든다. 기운이 없어보이던 멧돼지는 한 입 꿀꺽 먹은 뒤 이렇게 말한다.
“와, 시원해. 정말 맛있어!”
풀잎 국수. 생소하지만 이 책을 보고 있으면 시원한 오이냉국도 떠오른다. 새콤새콤한 엄마의 오이냉국은 정말 맛있었다. 마음이 괜스레 우울하거나 몸이 안 좋은 날은 엄마가 차려주는 밥으로 위안이 되고는 했다. 맛있는 오뎅, 맛있는 떡볶이, 엄마가 해주는 것이면 다 좋았다. 엄마의 오징어 무국도 일품이었다. 셀수 없이 많은 엄마의 요리들이 있어 지금의 난 이렇게 건강하게 성장했다. 엄마의 레시피를 다 받을 순 없지만, 엄마음식을 좋아한 입맛은 그대로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들 해먹일걸 고르고 요리하면서 엄마생각이 난다. 엄마도 그랬겠지? 엄마도 이런 마음이었을 거야. 엄마도 우리를 생각하며 장을 보고 요리를 했을 거야. 매일 매일 뭘 해먹지? 생각했을 거야. 반찬이 몇가지 없다고 투정부릴 때도 있었는데, 엄마가 되어보니 알겠다. 단순한 반찬에도 단순한 요리에도 엄마의 정성이 엄마의 사랑이 묻어난다는 걸 말이다.
p.s. 작가 백유연님은 열병으로 고통받는 멧돼지 뉴스를 보고 안타까워 이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지금 이 순간에도 아픈 생명들이 있을 거예요. 말못하는 어린이들과 동물들에게 더 이상의 아픔이 없도록 따듯한 시선이 닿기를 바래봅니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고 귀하지 않은 생명은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