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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단한 게 아니라 책이 대단한 거란다

도토리 마을의 서점

by 정희정

오늘은 나의 꿈이자, 나의 오래된 친구인 책을 소개하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다. 나카야 미와. 아기자기한 그림과 귀여운 캐릭터, 그리고 가볍지 만은 않은 삶의 의미와 철학이 그림책 속에 녹아있다. 도토리 시리즈는 특히 도토리의 종류와 특징을 알 수 있어 보는 재미가 더욱 쏠쏠하다. 아이와 함께 누워 그림책을 보고 읽어주던 시간은 나에게 매우 의미있고 보람되었다. 그 끈끈했던 시간 속에 도토리 시리즈가 있었고, 이 책을 보면서 나도.. 나도.. OO하고 싶다. 생각을 하고 꿈꾸게 되었다.


서점의 일상은 어떨까? 내가 꾸미고, 꾸리고 싶은 나만의 책방은 어떤 느낌일까? 서점의 아침은 바쁘다. 책을 진열하고 책꽂이를 정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매일 신간은 쏟아져 나오고 오래되거나 인기가 없는 책들을 정리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나의 집도 마찬가지다. 책장에 빼곡이 들어서있는 책들을 보며 자주 손이 가는 책도 있지만, 손이 가지 않는 책도 제법 있다. 3~4달에 한 번씩은 책을 솎아내어 주지만 그러지 못할 때도 많다. 책을 정리할 때는 한꺼번에 정리하는 게 좋다. 우선 책꽂이에 있는 책들을 모두 꺼낸다. (옷을 정리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첫째 아이를 부른다.


“하영아, 책 정리하자. 보고 싶은책은 이쪽, 안 보는 책은 (팔고 싶은 책은) 저쪽”


한 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아이는 단번에 착착 분리해낸다. 고민스러운 책은 일단 두기로 한다. 책정리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단번에 결정하기 쉬운 책이 있는 반면에 (옷도 마찬가지다) 볼까 말까? 필요할수도 있는데. 하는 책은 보류칸으로 이동한다. 책꽂이 중 한칸은 애매한 단계의 책들만 보관해둔다. 책에도 자리가 필요하다. 칸 마다 이름을 정해두면 더욱 좋다. 네임 스티커로 아이가 좋아하는 자두시리즈, 엉덩이 탐정, 카카오프렌즈, 역사 등등 이름을 적어 붙여두기도 했다. 정리해두기도 편하고 찾기도 편하다.

다시 도토리 마을의 서점으로 돌아온다. 부지런히 책들을 정리하고 나면 서점문을 열 시간이다. 동그란 안경을 쓴 누리가 ‘어서 오세요~’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아기자기한 서점의 모습이 보인다. 전면책장에 진열된 재미난 책들, 책꽂이에 가지런히 꽂혀있는 책들, 새로 나온 책도 볼 수 있다. 서점에서는 서로 좋아하는 책들을 이야기할 수 있고, 빙빙 돌아가는 회전책장 주변에는 꼬마손님들이 좋아하는 책을 고르고 책을 본다. 아이들 주변에는 엄마들이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엄마 등에 업힌 아기는 콜콜 잠을 자지만 이런 분위기를 매번 접할수록 갓난 아기들도 곧 책을 좋아하게 될 것이다.


이 서점의 점장님은 책을 참 많이 읽는데 새 책이 들어올 때마다 어떤 내용인지 살핀다. 엄마에게 꾸지람을 들은 꼬마손님이 울적해하는 모습을 보고 점장님은 하나의 책을 추천한다. 책의 주인공의 이야기를 보고 온 아이는 어느새 씩씩한 주인공처럼, 자신도 실수해도 괜찮다는 깨달음을 얻고 기분이 좋아진다. 손님들에게 적합한 책을 추천해준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동그란 안경을 쓴 누리와 자전거로 책을 배달하는 고나로가 말한다.


“점장님은 언제나 손님에게 딱 맞는 책을 골라 준다니까. 저도 나중에 점장님처럼 대단한 서점 직원이 되고 싶어요.”


이때 점장님이 의미있는 말을 한다.


“아니지, 내가 대단하게 아니라 책이 대단한 거란다.”


이 글을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대단한게 아니라 책이 대단한거라니. 교보문고를 탄생하게 한 신용호 회장님의 유명한 말이 있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세상에는 수도 없이 많고 많은 책들이 있다. 내 주변에도 책이 널리고 널려있다. 책을 읽기만 하는 바보가 아니라, 책을 보고 눈으로 읽고 가슴으로 와닿는 생각이 펼쳐질 때가 있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 때가 있다. 때로는 작가의 생각과는 다른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것이 당연한 것이리라. 책을 읽기만 하는 바보는 되지 말아야지 생각한다. 똑똑똑 책이 문을 두드린다. 눈에 와닿는 문구 하나하나가 마음에 새겨지면 가슴이 울린다. 가슴이 울리다가 울리다가 어떨때는 행동으로 나타날 때가 있다. 눈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행동으로 옮겨지는 단계는 결코 쉬운일은 아니다. 사람의 습관이란 참 무서운 것 같다. 한해가 지날수록 고집과 아집이 아로새겨 진다. 습관을 바꾸려면 더 좋은 습관을 조금씩 들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나쁜 습관을 없애기보단 좋은 습관을 조금씩 들여나가는 거다. 핸드폰을 하지 말아야지 가 아니라, 책을 조금씩 보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5분이라도 10분이라도. 잠자리에 들 때 핸드폰을 하고 싶을 때가 있지만 내려놓는다. 대신 자그마한 책을 든다. 누워서 보는 책이 찐이다.

도토리 서점의 점장님은 새로 나온 책들을 살피고, 또 그에 맞는 책을 추천해준다. 남에게 책을 추천하는 일을 하려면, 우선 책을 알아야 하고 책을 보는 사람의 성격, 성향이나 상황을 파악해야 가능할 것이다. 괜히 추천했다가 욕먹는 일이 없으려면 말이다. 각자가 원하는 스타일이 있다. 책도 마찬가지다. 나는 가벼운 류의 책을 좋아하고 자기계발 서적에 한동안 빠져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산문집이나 에세이류의 서적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아이들과 함께 책을 보면서 그림책은 영원한 내 친구다.

점장님은 서점을 찾은 상수리 할머니의 책 이야기를 듣고 얼른 찾아준다. 내가 원하던 책을 누군가 발견해주었을 때, 마침 그때 찾아주었을 때 얼마나 기쁜일인지 나도 안다. 문득 문득 서점에서 보았던 책들이 아.. 그때 살걸.. 하는 마음을 남길때가 있다. 일산의 알라딘 중고서점에 갔을 때도 그랬다. 꼭 사고싶어서가 아니라 책장에 꽂혀서 눈길이 가서 꺼내들었을 때, 이 책 참 괜찮다. 하는 책들이 있다. 그림책이었는데, 제목이 가물가물했다. 그러고보면 책과도 인연이라는게 있는 것 같다. 그때 그 순간에 내 눈에 들어온 책이 계속 생각이 난다. 한번 슬쩍 보았을 뿐인데 내 마음에 남는 무엇인가가 있다. 그래서 아.. 그때 살걸..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그후에 그 책이 인상에 남아 다시 갔다. 그때 그 자리에 그대로 꽂혀있기를 바라면서.. 그렇게 사온 책은 마음에 깊이 남는 것 같다.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눈에 찍어둔 책이 있으면 지금은 꼭 사진으로 남겨둔다. 꼭 지금 사지는 않지만 사진으로 남겨두면, 혹은 제목이라도 적어두면 나중에 생각이 날 때 찾아볼 수 있고 살 수도 있어서 좋다.


동그란 안경을 쓴 누리는 자신만의 재능을 뽐낸다. 구연동화는 누리의 일이고 어린이집처럼 아기자기한 방 안에서 꼬마친구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누리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도토리의 대모험 이야기를 귀로 들으며 아이들은 이내 바다를 상상하기 시작한다. 넓고 넓은 푸른 바다에서 주인공은 파도를 만나고 깊은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순간 교실에도 정전이 일어나고 깜깜해져서 당황한 아이들은 울음을 터뜨린다. 누리는 아이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깜깜해서 글자가 보이지 않지만, 이미 책의 내용을 알고 있어서 다음 이야기를 떠올리며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울음을 터뜨렸던 아이들은 이내 누리의 이야기에 울음을 멈추고 아, 바다 속이라 깜깜하구나. 바닷 속 물고기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치 내가 바닷속에 있는것처럼 상상하기 시작한다. 그림책 속의 이야기에 빠져든 아이들은 마치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며 함께 모험을 즐긴다.


도토리 시리즈는 특히 ‘일’과 관련된 에피소드와 이야기들을 아이들의 시선으로, 그리고 부모의 시선으로 함께 바라볼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엄마아빠가 일을 하는 동안, 아이들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지내고, 엄마아빠가 어떤 일을 하는지, 또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하는 지 다양하게 살펴볼 수 있다.

마지막에 쓰여진 작가의 말이 인상깊다. ‘일’이란 바깥에서 몸을 움직여 돈을 버는 것 뿐만 아니라, 내가 아닌 ‘누군가를’위해서 일하는 모든 것이 일이라고 말한다. 가정을 지키고 형광등을 갈아끼우고 어린이집을 데려다주고 또 누군가를 위해 이야기를 풀어내는 일. 매일 해야할 일은 가을철 낙엽처럼 쌓이고 쌓인다. 오늘 나는 어떤 일을 했을까. 또 어떤 일을 하게 될까. 내일은. 모레는. 우리는 어쩌면 알게 모르게 매일매일 누군가를 위해 의미있는 일을 조금씩 하고 있는 지 모른다. 겉으로 표시나지는 않지만, 누군가를 생각하며 작은 일을 하나씩 하나씩 쌓아나간다. 오늘도 작지만 누군가를 위한 행복을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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