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을 떠올리게 하는 그림책이 있다. 나는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 소나기가 한 여름날 시원하게 투둑탁탁 창문을 때리며 내리는 소리가 좋고, 잔잔하게 안개처럼 살며시 내리는 비도 좋아한다. 비가 내리고 잠시 멈추었을 때 희뿌연한 안개 사이로 보이는 풀잎들, 나뭇가지 들이 좋다. 그리고 숲을 거닐면서 맡아보는 비 오는 날 자연의 향기가 더 없이 참 좋다.
그림책의 표지는 앙증맞은 아기곰이 나온다. 노란색 우산을 들고 비가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는 아기곰이 더 없이 귀엽고 사랑스럽다. 노란색 우산에 노란색 장화를 신은 아기곰을 보니 예전 아이가 다섯 살 무렵이었을 때, 아침 등원길이 생각난다. 아이는 비오는 날을 좋아했고 우산과 장화를 좋아했다. 엄마와 함께 유치원 등원하는 길을 좋아했다. 그 날도 비가 내렸다.
귀염깜찍한 분홍색 우산을 들고 유치원 가방을 메고 엄마가 함께 길을 나선다. 조금 일찍 나온 시간이라 여유가 있다. 유치원 버스가 오는 거리까지 거닐던 시간들이 나풀나풀 낙엽처럼 소담히 추억에 담긴다. 유치원 버스를 타러 가는 길, 엄마와 함께 손을 잡고 걷기도 했고 비가 오는 날은 우산을 들고 바닥에 웅덩이를 만든 물을 찰박찰박 밟기도 했다. 아이가 좋아하는 타요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비 오는 날 노래가 있다.
“주룩주룩~ 비가 내리면 우비 입어요 ~ 주룩주룩 비가 내리면 멋진 우산도 쓰죠~”
비 오는 날 타요 노래를 따라부르며 참방참방 걸어가는 길, 뒤에 나뭇가지 더미가 있는 걸 모르고 뒤로 걷다가 그만 물웅덩이가 참방 빠지고 말았다. 비 오는 날 기분 좋게 노래도 부르고 엄마와 함께 유치원 가는 등원길에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되었다. 여벌의 옷으로 우선 갈아입도록 하고 유치원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도, 나도 비를 좋아하고 이 그림책 아기곰도 비를 좋아한다. 비가 내리는 늦은 오후 토독 토독, 하늘에서 비가 내린다. 창밖을 보던 아기곰은 저녁밥을 포슬포슬 짓는 엄마곰에서 잠시 나갔다온다고 말한다. 조금전까지 놀았던 들판이 비에 젖지 않을까 걱정되었나보다. 노란 우산을 들고 노란 장화를 신은 아기곰은 숲 속으로 향하는 길에 빗소리가 아기곰을 감싸안고 나뭇잎 위 빗방울들과 촉촉이 들판 곳곳에 스며드는 빗줄기를 보며 생동감을 느끼고 잔잔한 비오는 날의 풍경을 전한다. 연못에 구슬처럼 퐁퐁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고 비가 와서 촉촉해진 땅을 철퍽철퍽 소리가 나게 한걸음씩 걸어본다.
“비 오는 날은 맑은 날이랑 다른 냄새가 나.”
그랬다. 비 오는 날은 다른 냄새가 났다. 나도 그 냄새, 비오는 날의 그 향을 좋아한다. 땅이 비를 머금고 숲이 빗방울을 반긴다. 비가 들판을 적시고 산은 하얀 안개에 둘러싸여 저 멀리서 들려오는 구구 구구~ 산비둘기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 같다. 비 오는 날 숲을 구경하느라 시간이 늦어진 지금 아기곰은 엄마가 보고 싶다. 집으로 달려가니 엄마가 문 앞에서 아기곰을 기다리고 있다.
“비 오니까 춥지?”
따듯한 목욕물로 목욕을 하고 깨끗한 새 옷으로 갈아입고 엄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저녁밥을 먹는 아기곰.
“비 오는 날은 정말 즐거워요. 예쁘고 신기하고 촉촉한 비 냄새가 나요.”
비 오는 날 거리를 걸으면 신발은 비에 젖어 축축하고 우산을 써도 옷이 젖어버리고 몸이 으슬으슬 떨린다. 하지만 창 밖으로 내리는 토독토독 빗 소리가 좋고, 거리를 거닐면서 비 냄새를 맡는 것은 더 좋다. 비가 내리는 어느 날, 아이들과 우산을 쓰고 빗소리도 듣고 비 냄새를 맡으며 비 오는 바깥 풍경을 구경해봐야겠다.